좋아하는 것 4번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눈이 쌓여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형형색색의 세상이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하얀 눈발으로 뒤덮여 간다. 그리고 비로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눈을 지배하고 있는 색은 오직 하얀색 뿐이다. 눈이 내린 날엔 세상은 단순하다. 겉표면도, 색깔도. 포근하고 하얗다.
눈 내린 다음 날 아침이면 기분이 좋다. 왜 기분이 좋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기분이 좋으면 됐지.' 하고 넘어간 날들이 많았는데, 며칠 전 눈이 많이 내리고 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눈이 내리고 나면, 모나고 거친 세상을 눈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덮어버리기 때문이었다. 현실을 잠깐이나마 잊을 수 있는 순간이 된다.
눈 위를 걸으면 눈은 뽀도독 뽀도독, 소리내며 온전히 날 받아주고 있다. 그러나 눈싸움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눈도 뭉치면 꽤나 단단하고 맞으면 아프다는 것을. 어찌 보면 눈은 외유내강의 대표 명사다.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존재해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녹이며 위로받는 것이었다.
나도 눈 같은 사람(눈사람?)이 되어야지, 속으로 다짐한다. 차갑지만 따뜻한, 부드럽지만 단단한. 그런 사람이 되어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서로가 위로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면 모난 세상이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눈이 귀찮을 수도 있다. 군대에 있을 땐 나조차도 그랬으니까. 그치만 더 이상은 내게 눈이 귀찮은 존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겨울이 되면 눈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사그라들지 않도록.
여러분이 위로받는 존재는 어떤 것이 있나요?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