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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 넘은 여자들 Mar 24. 2024

하늘이 내려주는 헬퍼

최지영

사진: UnsplashNeil Thomas


매일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우며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쉰다. 

"오늘도 정말 바쁘게 살았다" 

회사일, 사업, 아이들의 학교 행사와 숙제 등, 이 세상의 모든 엄마처럼 나 역시 해야 할 일도, 챙겨야 할 것도 참 많다.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가는 일상이지만 정신 건강을 위해 '미타임'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운동, 저녁약속, 저녁이나 술자리등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도 꼭 만드는데, 이럴 때 안심하고 나갈 수 있는 큰 이유는 헬퍼의 도움 덕분이다.


홍콩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외국인 헬퍼 제도가 있다. 

주로 필리핀, 인도네시아등의 국가에서 온 이민 노동자들이 참여하며 요리, 아이들 돌보기, 노인 돌보기 등 모든 가사를 돕는다.

홍콩 정부에서 정해 놓은 최저 임금이 있는데 물론 사람마다 월급은 다르게  받지만, 최저 한 달에 백만 원 정도의 월급으로 일주일에 6일 일을 한다. 


나는 종종 남편 없이는 살아도 헬퍼 없이는 못 산다는 농담을 하곤 하는데 100% 농담은 아닌 것이 요리, 도시락 준비, 청소, 빨래, 아이들 등하교 픽업 등 하루 일과 중 8할을 헬퍼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헬퍼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만들어 주는 덕분에 아침에 30분이나 더 잘 수 있다.

첫째 아이는 혼자 스쿨버스를 타러 나가고, 나는 7시 반에 둘째 아이를 집 앞 스쿨버스 정류장에 데려다주고 출근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그리고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헬퍼는 집 안 청소와 저녁 장보기, 아이들의 오후 간식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3~4시가 되면 집에 오는데, 학원을 가는 날에는 헬퍼가 아이들 등하원을 맡아준다. 

헬퍼가 차려준 저녁을 먹고 8시가 되면 헬퍼도 아이들도 하루 일과가 끝난다.


홍콩 엄마들은 헬퍼는 하늘이 내려주는 거라고 말한다. 특히나 워킹맘들이라면 얼마나 좋은 헬퍼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나의 경우는 친한 친구가 홍콩을 떠나면서 소개해준 헬퍼를 만났다. 요리도 잘하고, 특히 아이들에게 다정한 편이라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 헬퍼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도 에피소드가 많았다. 


아이들이 어릴 땐 내가 출장이 잦아 친정어머니가 홍콩에 지내시며 아이들을 봐주셨다. 내가 없이 아이들과 헬퍼만 있는 게 좀 불안하기도 해서 어머니가 와서 봐주시면 안심이 될 것 같아서였는데, 헬퍼 입장에서는 자기의 일을 일일이 감시하는 것 같은 한국 할머니가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초기에는 깔끔한 한국 할머니의 깐깐한 기준을 맞추기 힘들어해서 헬퍼와 친정 엄마의 마찰이 잦았다. 


위생 관념이 다른 깔끔한 친정엄마와 헬퍼의 기준을 중재하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냄비는 왜 항상 깨끗하게 닦아야 하는 건지, 속옷이나 수건 등의 빨래는 가끔 왜 삶아야 하는 건지 헬퍼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기에 일을 하면서도 뾰로통하게 입이 나와있었고, 친정 엄마 입장에서는 손이 야무지지 않은 헬퍼가 마음에 안 드셨다. 

헬퍼는 헬퍼대로 친정 엄마에게 불만이었고, 엄마는 손짓 발짓으로 시키다 결국은 답답하신 본인이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게 되어 이를 지켜보는 나도 답답했다. 




헬퍼는 2년 계약이 기본이고 2년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게 되는데 나는 계약기간 2년이 끝나기 전 헬퍼를 해고한 이력이 세 번이나 있다. 


한 헬퍼는 나의 물건과 음식을 매일 조금씩 훔쳐서 계약을 파기했는데 그걸 알게 된 계기에 대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지금 11살인 첫째가 두 살 무렵이었다. 그 당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모든 가방을 다 뒤지던 버릇이 있던 아이는 일요일 아침에 나가려고 준비를 마치고 잠시 화장실에 간 헬퍼의 가방을 다 뒤집어엎어 거실 바닥에 헤쳐놓았다.  거기서 나의 작은 소지품, 화장품, 심지어는 아이를 주려고 사둔 오가닉 음식 재료들을 덜어 포장해 둔 봉지가 나와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그 흩어진 물건들을 보고 나와 헬퍼 둘 다 서로 마주 보며 잠시 정적이.. 


또 다른 헬퍼는 꼭 낮잠을 자야 하는데, 하필 대낮부터 잠옷을 입고 소파에서 자는 바람에  방에서 일하던 남편이 민망해서 거실에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한 번은 매우 화가 난 경험이 있었다.  첫째가 아직 말을 못 하고 내가 출장이 잦아 거실에 홈캠을 설치해 놓았다. 평소 바빠서 홈캠을 잘 안 보는데 그날따라 한번 켜 본 홈캠의 모습.  헬퍼가 마사지 체어를 이용하며 앉아있고 아이가 기어서 근처로 가자 발로 세게 밀어버려 아이가 구르며 넘어진 것이었다. 이 헬퍼는 그날 돌아오자마자 해고했다.  


이렇게 여러 에피소드를 겪고 다른 헬퍼를 만났는데 이 헬퍼와는 다행히 사이가 좋았다. 어느 날 이 헬퍼가 나에게 " 너 헬퍼 사이에서 별명이 뭔지 아니?" 물어보더니, 웃으며 내 별명이 터미네이터라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계약해지 (terminate)를 잘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는 것이었다. 이 헬퍼는 지금 캐나다로 이민을 해 가족들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가끔 커피를 들고 공원에 앉아있는 셀피를 보내기도 한다. 내가 이 헬퍼와 헤어지기 전 커피를 같이 마시며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한 얘기가 캐나다에 가서 꼭 자기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만들며 살라는 것이었다.  이 사진은 그 화답의 의미이기에 이 사진을 보며 마음이 몽글해지는 느낌이 든다. 




홍콩은 헬퍼제도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만 이것도 좋은 헬퍼를 만나고 그 헬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잘 이용할 수 있겠다. 좋은 헬퍼를 만나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내가 합당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못해준다면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도 지금은 다행히 좋은 헬퍼를 만나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람도 좋고, 아이들도 잘 따라서 매우 감사하다. 남편과 나도 헬퍼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같이 사는 공간이지만 헬퍼에게는 일터이기에 자신만의 공간이나 시간을 존중해 주고 가끔 헬퍼와 같이 나가 저녁 식사도 하며 팀워크를 다진다.  헬퍼도 고향에 가족들이 있어서 우리가 여행을 일주일 이상 갈 때마다 헬퍼도 자기의 고향으로 보내준다.  정책상으로는 계약 기간이 끝나는 2년에 한 번만 가면 되지만 (2년에 한 번은 너무 긴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헬퍼는 1년에 두 번 이상은 고향에 일주일 이상 방문할 기회가 있다. 헬퍼도 이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있고, 또 고향에 간다는 기대감으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일하는 선순환이 되는 듯하다. 


헬퍼와 같이 지내며, 특히 같이 한 공간에서 살며 나도 좋은 고용주가 되는 것에 대해 하루하루 많이 배운다. 회사에서 겪지 못한 다른 종류의 리더십이다. 

일요일은 헬퍼가 없는 날이라, 청소하고 밥을 해야 하는 일요일마다 또 헬퍼의 고마움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홍콩에는 온 마을의 역할을 해주는 헬퍼가 있는 셈이다. 


#헬퍼구하기 / #헬퍼와 잘 지내기 /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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