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경
'선 넘은 여자들'을 출간하고, 걸그룹(!)은 아니지만 유닛으로 나누어 몇 번 북토크에 참가할 기회들이 있었는데, 지난 목요일 밤에는 '책 읽는 쥬리'라는 인스타그램 기반의 북클럽 모임에 저자 여러 명이 참가해 북토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저자 반 독자 반이었던 모임!!! LOL
그렇지만 정말 너무나 좋은 경험이었다.
1. 우선 책을 같이 쓴 저자들도 홍콩과 싱가포르에 흩어져 있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이들도 있는데, 각자의 책을 쓰게 된 계기와 그 경험이 어떻게 나의 현재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듣는 것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2. 북클럽 참여 하시는 층이 훨씬 젊을 줄 알았는데, 대략 저자들 나이 또래 (물론 저자들 연령대 폭이 넓긴 하다.)였고, 북클럽장님 말씀에 따르면 워킹맘이 많으시다고 한다. 이 분들도 책을 읽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글도 쓰시고 계시고 있다 하신다.
3. 이날 참가하신 분 중 12년 동안 경력 단절이셨다가 일터에 복귀하게 되신 한 분이 계셨는데, 같이 뭉클한 마음이었다. 아이가 자라도록 온 힘을 쏟아 돌보고 지원하는 일의 가치를 분명히 알지만, 그 삶에서 '나'는 곧잘 뒷전이 되기 마련이니까. 일터에서 그림자로서의 역할을 꽤 오래 수행한 적이 있는 나는 그 명암의 무게가 어떤 것인 지 알 것 같다.
4. 소감을 나누어 주신 다른 한 분은 연배가 살짝 나보다 위일 것 같은 분이었는데, 지금 인생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에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사는 것의 중요함을 말씀 주셨다. (아쉽게도 정확한 문구가 기억이 안 난다.. 무지 울림이 있었는데.) 그러면서 40대인 우리가 부럽다고 하셨다. ㅎㅎ (저... 곧 50인데요..)
북클럽 참가하시는 분들이 어쩜 다 이렇게 중년이실까 생각하다가,
그리고 밤새 잠이 안 와서 임윤찬과 키신의 라프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듣다가 든 생각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간의 유한함과 가치를 알게 되고, 그래서 한 순간 한 순간이 소중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중년인 우리는 한순간도 함부로 쓸 수가 없다.
임윤찬의 압도적인 명징함과 스피드와 다채로움.. 은 경이롭지만,
키신의 느릿느릿한 템포는 또 다른 울림이 있다.
키신이 그 느릿느릿한 템포에 다다를 때까지,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을지 생각하니 아찔하다.
얼마 전 임윤찬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손민수 님이 홍콩에 방문해 공연해 주신 덕에 현장에서 연주를 듣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그분의 연주를 들으면서, 아 이분도 어렸을 때부터 영재라느니 신동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자라셨겠지.. 임윤찬처럼. 그런데, 불과 20세도 안 된 젊은이가 어마어마한 기량을 뽐내며 혜성처럼 등장하는 것을 목도하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 어렵다는 리스트의 trandescental etude 전곡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한 채로 일휠피지로 쳐내려 가는 것을 보며, 아 이분에게는 어제의 나를 뛰어넘는 것이, 끝없이 정진하는 것이 목표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민수 님처럼, 키신처럼, 어제의 나보다 일보 정진하기 위해 한 순간 순간을 아껴가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중년의 사람들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축된 시간의 힘은 드러나고야 만다.
BGM:
1. 임윤찬
https://youtu.be/DPJL488cfRw?si=_eIlKlNRlyCG3UQJ
2. 키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