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한권독후감 20240101 <헬로 베이비>
[20240101] 김의경, <헬로 베이비>, 은행나무, 2023년.
스포가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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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이 문제라는 얘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익히 들어왔던 것 같다. 최근 들어서는 누구나 저출생이 이 나라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여기며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 입방아를 찧기 바쁘다. 원인과 대책은 오리무중이지만 확실한 건 작금의 많은 한국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를 낳길 꺼리고 있다는 점이다.
김의경의 소설 <헬로 베이비>는 이러한 반(反)출생의 시대에서 아이 낳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다뤘다. 소설의 제목인 헬로 베이비는 난임병원에 다니는 여섯 명의 여성들이 만든 모임의 이름이다. 나이, 직업, 경제적 상황 등 각기 다른 환경에 살아 아마도 난임이라는 공통점이 없었다면 만날 일이 드물었을 이들의 단톡방에 가장 나이가 많고 시험관 시술 포기를 선언한 정효가 출산 소식을 갑작스럽게 전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소설은 모임에 속한 6인 각자의 시선과 또 이미 세 아이의 엄마로 이들과 거의 관계가 없는 인물 1인의 시선으로 구성돼있다.
2년째 아이디어 구상 중인 소설가 남편과 살면서 본인 역시 작가를 꿈꾸는 44세 문정은 계속 배아의 착상에 실패하자 부부의 삶 역시 "둘 다 착상 실패 중인 글쟁이 부부(19쪽)"라고 자조한다. 난임 치료 후 한 번에 임신에 성공한 뒤 유산 위험이 있으니 당장 입원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하고 직장 일처리를 마무리한 뒤에야 입원해 결국 유산을 경험한 문정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헬로 베이비'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태권도 사범으로 건강을 자랑하는 남편의 폐쇄성 무정자증(배출관이 막혀서 정자가 나오지 않는 증상. 고환 자체에서 정자를 채취해야 한다) 때문에 냉동 정자가 담긴 질소탱크를 그야말로 애 다루듯 조심하며 산부인과로 옮기는 38세 지은은 3년째 난임병원을 다니는 회사 선배를 비난하는 사내게시판에 달린 "도태 정자 휠체어 태워서 꼭 번식시켜야 하냐. 그냥 도태되게 두라고", "줌마되면 다 저렇게 뻔뻔해지는거냐" 등의 댓글을 보고 "자신이 저격당한 것처럼 수치(60쪽)"감을 느끼곤 회사를 그만뒀다. 지은은 배아 이식 때마다 배아의 이름을 짓고 남들과 달리 훗날 태어날 아이에게 배아를 이식한 날부터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37세의 수의사 소라는 2년 동안 52개의 난자를 냉동했다. 동물병원이 안정되고 나서 아이를 낳고픈 소라에게 난소 기능이 저하되기 전의 건강한 난자를 냉동했다가 이후 해당 난자로 임신을 시도할 수 있는 난자 냉동은 소라를 위한 문명의 이기였다. 동네 언니인 문정을 통해 헬로 베이비 모임에 참여하게 된 소라는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86쪽)"때문이라고 답한다.
아홉 번에 걸친 시험관 시술 실패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위한 노력도, 관심도 없는 남편이 원망스러운 44세 혜경은 맘카페에 남편 험담을 올리고는 "이혼하삼. 벌써 그런데 애 낳으면 어떻겠음?"이라는 댓글에 ""이혼 전문 변호사에게 훈수 두네"라고 중얼(97쪽)"거린다. 남편의 정자 문제임에도 고목나무에 열매가 달린 꿈을 꿨다는 시어머니의 고목나무 운운은 "아직은 은근히 타오르는, 남편을 향한 혜경의 사랑에 물을 끼얹어(104쪽)" 버리곤 한다. 혜경은 열 개가 넘는 근종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으며 부산의 스타 난임전문의를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잔혹한 현장을 들릴 때마다 혹여나 배아에 영향이 가지 않을까 우려하는 37세 은하는 경찰이라는 직업 특성상 흉흉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걷잡을 수 없이 쓸쓸해(121쪽)"지곤 하는데 그런 쓸쓸함 때문에 아이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건강한 남편의 정자와 달리 자궁이 조금 뒤쪽으로 굽어 있는 '후굴'인 은하는 착상혈(수정란이 자궁내막에 파고들 때 나오는 피로 생리할 시기에 나오기에 생리혈과 구분하는 것이 관건)을 확인하며 하루빨리 아이가 들어서 난임병원에 발길을 끊고 싶을 뿐이다. 은하는 산부인과에서 신생아가 사라졌다는 소식에 이른 시각에 출근길에 나선다.
정효의 윗집에 거주하는 40세 설주는 이 소설의 화자 중 유일한 엄마다. 시시때때로 아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아랫집 여자인 정효를 향해 아이를 낳는 고통을 "상쇄할 만큼의 충만함 기쁨이 (육아에) 있다는 것을 저 여자는 알까(136쪽)"라고 생각하며 측은함을 느낀다. 설주는 아기는 중국어와 같다면 배워두면 충분히 유익하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줄 거라는 걸 알지만 굳이 내게는 필요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동창에게 "그래도 중국어를 한번 배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훈계조로 얘기하고는 동창회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뭐? 중국어? 아기는 중국어가 아니야. 중국어가 될 수 없어. 아기는!(138쪽)"이라고 외친다. 직장에 다니며 아이들을 시터에 맡겼지만 몰래 숨겨둔 녹음기에는 욕설이 들렸고 CCTV에는 손을 들어올려 때릴 듯이 위협하는 시터의 눈치를 보며 구석에서 조용히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왔다. 결국 설주는 퇴사하고 아이들을 돌보기로 결심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육아 감옥에 설주를 가둔 건 남편도, 회사도 아니었다. 형체도 실체도 없는 불안이라는 괴물(147쪽)"은 설주를 육아에 감금했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반년 만에 마주한 아랫집 여자가 아기를 품에 안고 집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설주는 아랫집 여자와 육아라는 공통점 아래 친분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장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화자인 46세 정효는 부잣집 맏며느리로 난임병원의 모든 의사를 만나봤을 정도로 오랜 기간 난임 치료를 받다 44세에 시험관 시술을 통해 처음으로 태아가 10주나 뱃속에 들어섰지만 그 아이마저 심정지로 유산했다. 다음에는 진짜 아기가 찾아올 거라는 간호사의 위로에 정효는 "그럼 이번 아기는 가짜란 말이에요? 그럼 그 소리는 뭐였죠? 가짜 심장 소리였나요?(164쪽)"라고 소리치고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시어머니에게는 "그만 좀 하세요. 아직 배 속에 있어요. 다 들어요(165쪽)"라며 눈물을 보인다. 알밤이, 튼튼이, 촛불이, 눈송이 등 네 번이나 아기 이름을 짓고 그들의 심장소리를 느꼈지만 끝내 아이를 갖지 못한 정효는 "그동안 믿고 의지했던 의료진이 혹시 자신에게 사기를 친 게 아닌가(168쪽)"하는 생각까지 이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폐경을 진단받은 정효에게 갑작스레 임신 증상이 느껴진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정효의 시각이다. 정효는 자신의 임신을 확신하며 산부인과를 방문하지만 의사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상상임신이라고 진단한다. 진단 직후 "무언가에 이끌리듯(191쪽)" 신생아실로 간 정효는 간호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우는 아이를 보며 "우리 콩닥이, 여기 있었구나(192쪽)"라고 말한 뒤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향한다. 모임에 출산 소식을 알리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은하를 제외한 헬로 베이비 모임의 5인이 정효의 집에서 모인다. 모인지 얼마 안 돼 은하를 포함해 경찰 두 명이 정효의 집을 찾는다. 은하의 설명에 정효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자초지종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리고 정효를 위로하지만 정효는 왜 갑자기 동생들이 이러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 와중에 정효가 데려온 아이가 울음소리가 도통 멈추질 않자 윗집을 방문한 설주는 경찰과 헬로 베이비 멤버들 사이를 뚫고 정효의 집에 들어서서는 "아기가 울잖아요. 부모가 뭘 했든 아기는 잘못이 없어요(198쪽)"라며 능숙하게 아이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린다. 소설은 은하가 정효를 경찰서에 데려가고 정효가 모임 단톡방에 은하가 올린, '콩닥이'가 다른 여성의 품 안에 있는 사진을 보면서 "정효의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200쪽)"하며 끝난다.
소설의 플롯은 간단하다. 난임에 따른 각자의 고충을 여러 인물들이 얘기할 뿐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정효의 '납치'는 놀라운 반전이라고 부르기엔 무난하게 예측이 가능한 사건이다. 이들의 연대 역시 감동적이긴 하나 난임이라는 공통점에 따른 것으로 초월적이라기보단 다분히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난임 여성들이 겪는 날 것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 있다. 난임병원과 그 치료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물론, 인물들의 복합적인 심리묘사 또한 실제로 난임병원을 다녔던 작가 본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일 테다. 훌륭한 묘사와 더불어 흡인력 있는 문장 역시 독자의 몰입을 돕는다. 소설을 읽다 보면 새로운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과 물음과 마주하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여성과 엄마를 분리하는 시각이 새로운 디폴트로 자리매김하는 작금에 모성에 관한 이야기, 그것도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모성에 관한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향한 사랑은 관계에서 비롯하고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는 말 그대로 생래적이다. 인간이 태어나 처음 맞닥뜨리는 사랑을 폄하한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논할 수 있겠는가.
작가의 말에서 김의경은 "누군가 왜 아기를 낳으려 하느냐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힌다. 그냥 '만나고 싶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만나게 된다면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고 싶다(203쪽)"라며 자신이 창조한 우주와의 조우를 고대한다. 아마 작가를 포함한 이들은 이번 새해 소망으로 같은 내용을 빌었을 것이다. 숫자 몇 개와 %라는 기호 하나로 표현되는 냉혹한 합리성의 세계를 넘어서 기적을 바랄 이들에게 이 소설은 기적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렇기에 이 소설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