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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Jan 12. 2024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류이치사카모토의 마지막 말

하루한권독후감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20240110] 류이치 사카모토, 황국영 역,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위즈덤하우스, 2023.


작년 3월 28일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 대해선 이름만 몇 번 들은 유명한 음악가에 진보적 성향의 사회운동에 참여한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그의 음악도 유명한 몇 곡만 들으면 '아 이게 저 사람 곡이었구나'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사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기가 쉽진 않았다. 좀 더 책에 몰입하기 위해 책에 저자의 곡이나 저자가 언급하는 곡이 있으면 그걸 찾아 들으면서 읽기도 했다. 다 읽은 지금은 읽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저자가 잡지 《신초》의 2022년 7월호부터 2023년 2월호까지 총 8회 연재된 내용을 책으로 낸 것으로 지난 2009년 출간한 첫 자서전인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이후의 내용을 담은 자서전으로 볼 수 있다. 첫 자서전 역시 잡지에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한다. 자서전이지만 첫 자서전을 출간한 2009년 이후의 내용 위주인지라 그의 삶을 알고 싶다면 첫 자서전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경어체로 쓰인 이 책의 흐름은 매우 일직선이다. 직장암으로 수술을 받아 "어떻게 된 일인지 눈을 뜬 순간 '지금 이곳은 한국의 병원이다'라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서울도 아닌 한국 지방 도시의 병원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섬망증상을 느꼈던 2021년을 회고하는 첫 장을 제외하면 이후에는 2009년 이후로 20XX년 X월 무얼 했고 거기서 누굴 만났고 무얼 느꼈는지에 대한 내용이 시간의 흐름대로 등장한다.


의외로 한국에 관한 얘기가 자주 등장해 신기했다. 밴드 새소년이나 BTS의 슈가를 만난 내용이나 마지막 앨범 표지를 부탁하면서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한 부탁이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책에서 내내 존경심을 표하는 화가 이우환에 대한 내용 등 한국인과 관련한 내용도 많았고 시장에서 튀김을 파는 노점상을 보고 무심결에 "덴푸라네"라고 말했다가 "당신네들 부모가 들여와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질책을 맞고는 "억압한 사람들은 금방 잊지만, 억압 당한 사람들은 세대가 바뀌어도 잊지 못하는 법"임을 깨닫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남한산성>의 음악을 맡은 저자는 "이것이 청나라가 막 시작되었을 때의 이야기이니,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를 그린 영화 〈마지막 황제〉와 쌍을 이루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한국인인지라 이런 내용이 반가웠다.


한편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특히 '쓰나미 피아노'에 대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쓰나미로 인해 흙탕물을 뒤집어쓴 피아노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미야자키 현 나토리 시까지 직접 보러 간 저자는 '쓰나미 피아노'에서 "완전히 흐트러진 조율의 현이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취 있는 소리"를 느끼곤 "역설적으로 말하면 쓰나미라는 자연의 힘에 의해 인간의 에고가 파괴되어, 비로소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그 피아노를 인수해 설치 작품 〈IS YOUR TIME〉을 만들고 2017년 발매한 앨범 《async》에 소리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 《async》 앨범에 대해 "'여기에서 얻은 것만큼은 절대 잃고 싶지 않아, 다음에는 이 성취의 연장선에 있는 더 높은 산으로 향할거야'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에선 계속 정진하는 경외심과 함께 죄책감이 들었다. 거장이라고 불릴 만한 성취를 이룬 사람도 안주하지 않고 이렇게 더 높은 경지를 향해 나아가는데 나는 성취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티끌만도 못한 결실에 너무 만족하고 안주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죄책감이었다. 평소 '내가 만족하고 살면 그게 최고 아니겠나'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저자의 이런 생각을 마주하니 암만해도 내 삶의 시간보다는 저자의 시간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 탓에, 내 수명을 깎아서라도 저자가 좀 더 사는 쪽이 세계에 더 가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쓸 데 없는 상상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직장암으로 인한 시한부 선고 직후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피아노 솔로 공연을 진행했던 걸 회고하며 "그래도 수술 후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돌이켜 보면 그때가 해낼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이라며 "어떻게 보면 그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절망적 정신 상태를 견뎌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서도 '평생 일 없이 놀고 먹고 살면 좋겠다'는 게 소원인 나지만 역시 아무래도 사람은 일에서 기운을 얻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단순히 재화를 벌기 위한 일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시한부 선고 이후 자식들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검토한다. 이 책의 집필에 대해서도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 이후의 활동을 돌아보며 살아 있는 동안 이 연재를 위한 구술 필기를 마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말한다.


사회활동에 활발하기로 유명한 저자는 아프리카 빈국을 위한 '주빌리 2000'에 참여한 것에 대해 "저는 그날 이후 '만약 내가 정말 유명해 팔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설령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환경에 관한 운동도, 지진 재해 후 활동도 이런 신념의 힘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번 연결되면 쉽게는 그만둘 수 없죠"라고 말한다. 역시 이런 마음가짐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원하는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온몸을 불살라 투쟁하는 사람들은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존경받을 만한 이들이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더 나은 사회를 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위선과 모순에 맞닥뜨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포기의 이유, 절망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부끄럽지 않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얘기다. 더 나은 사회에 대한 신념이야말로 기실 사람들마다 그 양태가 무궁무진해 이만저만한 갈등을 촉발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저 '그렇게 뭉뚱그려 생각하는 게 편하다'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도피가 아닐까도 싶다. 그럼에도 오늘날은 이런 비판투성이에 나이브한 얘기라도 귀한 시절이다.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다>의 편집자 스즈키 마사후미가 저자를 대신해 작성한 에필로그를 보면 저자는 암이 전이된 간의 고름을 빼기 위한 관을 여러 개 꽂고 산소호흡용 튜브를 낀 상태로도 영화를 보며 책을 읽으며 메이지 신궁을 재개발하려는 도쿄도지사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고 친우들이 사용할 음원을 제공하는 등 저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러나,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있었다".


죽기 3일 전까지도 도호쿠 지방의 청소년들을 위해 창설한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의 감독으로서 원격으로 지도를 했고 자신의 장례식에 쓰일 노래 목록을 직접 정하며 죽기 하루 전에도 그해 7월에 열릴 전시회와 관련한 원격 회의를 진행한 저자에 대해 스즈키는 "언제가 마지막일지는 알지 못했을지언정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사카모토 씨는 마지막 남은 목숨의 에너지를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그렇지 않은 일들을 위해 아낌없이 쏟아낸 것 아닐까. 아니, 오히려 그것이 생명의 유지를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한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의 마지막 말은 "그래도 남들의 세 배는 살았어"였다고 한다. 책의 본문은 "Ars longa, vita brevis"라는 "예술을 길고, 인생은 짧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짧은 인생이지만 남들의 세 배를 살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스즈키는 저자가 7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나 그 삶의 농밀함은 210세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우리가 '사카모토'가 되자"고 역설한다. 저자가 된다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그저 열심히 살면 그걸로 족할까. 그의 음악을 난생 몇 시간째 들으며 그의 인생을 담은 책을 읽고도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지만 하나 단언할 수 있는 점은 그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삶과 생각에 대해 한 번쯤 읽어 보는 게 좋다는 것이다. 오늘 밤은 누우면 왠지 생각이 많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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