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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Jan 14. 2024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지킬은 결코 선하지 않다

하루한권독후감 20240112 <지킬 박사와 하이드>

[20240112]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김세미 역, <지킬 박사와 하이드>, 문예출판사, 2009.


제아무리 문학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테고 대강 어떤 내용인지도 알고 있을 테다. 소설의 제목 자체가 이중인격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나도 대강 내용은 알고 있으나 어린 시절 만화로 한 번 본 게 전부였다. 돌이켜보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도 초등학생때 보고 똥겜 리뷰러인 AVGN의 관련 게임 리뷰 영상도 여러번 봤던 기억이 있는데 정작 원작 소설은 이번에 처음 읽는 거였다.


책을 읽기 전 난 당연히 소설이 지킬의 1인칭 시점에서 쓰였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소설은 지킬의 친구인 어터슨이라는 변호사의 시점에서 쓰였다. 어터슨은 하이드와 관련된 사건들을 접하고 하이드를 직접 마주하며 그에 대한 의구심을 품다가 끝내 그가 지킬의 저택에서 숨진 걸 발견한다. 그리고 지킬이 남긴 편지를 통해 하이드가 사실 지킬임을 알게 된다.


생각해보면 지금이야 모두가 헨리 지킬과 에드워드 하이드가 동일 인물임을 알고 있지만 당시 이 소설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하이드가 누구인지 어터슨과 함께 추리하면서 지킬이 남긴 편지를 흥미롭게 읽어나갔을 테다. 물론 결말을 암시하는 장치들도 많기에 이미 그 이전에 두 인물이 동일인물인 걸 눈치챈 사람도 아마 적잖았을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반전이 있는 흥미진진한 소설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1885년 이 소설이 출판되고 6개월 동안 4만 부가 팔렸다. 생활에 쪼달리던 스티븐슨이 "파산할 지경이었는데, 지킬 덕분에 살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인기 덕분인지 아니면 인간의 악성을 다룬 내용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둘 다 때문이지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설교를 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설교의 대상이 될 정도로 소설에 등장하는 하이드는 인간의 악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린 여자아이를 무참히 발로 밟아버리고 지나가는 노인을 무자비하게 지팡이로 때려 죽인다. 살인의 이유는 없다. 하이드에 대해 지킬은 "모든 행동과 생각은 자기중심적이었고, 어떻게든 남을 괴롭히고 싶은 짐승 같은 욕망으로 기쁨을 느꼈으며, 심장이 돌로 되어 있는 것처럼 냉혹하고 가차없었다"고 묘사한다.


그런데 지킬이 "좀 더 고귀한 정신으로 내 발견에 접근했더라면, 관대하고 경건한 향상심으로 실험을 했더라면 결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나는 죽음과 탄생에 대한 고뇌로 악마가 되는 대신 천사 쪽으로 한 발 내디딜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약 자체에는 악마적인 것이나 신성한 것을 구별하는 효과가 없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좀 의아하다. 저렇게도 악마적인 하이드의 인격을 나타내게 만드는 약이 어째서 악마와 천사를 구별하는 효과가 없다며 단언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일까.


이는, 많은 독자가 놓치는 부분이기도 한데, 기실 지킬은 약을 만들기 이전에도 "인간은 본래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두 개의 존재라는 믿음"을 지닌 채 이중생활을 남몰래 영위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지킬의 편지의 맨 앞부분에는 "나의 결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점은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지킬의 고백이 담겨 있다. 지킬은 "다른 사람들 몰래 쾌락에 빠져들게 되었다"며 "나는 이미 이중생활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고 토로한다. 보통의 사람들 모두 나름의 이중생활을 지니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지킬의 경우 "인간의 이중적인 성격을 나누고 화해시키는 선과 악의 영역 사이에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깊은 골이 파여 있었고 그 구별이 엄격했다"고 설명할 만큼 남들보다 훨씬 깊이 이중생활에 빠져들었다. 그런 지킬이었기에 약을 먹고 나타난 하이드는 어디까지나 '지킬의 악성'이었지 '인간 보편의 악성'은 아니었고 그 사실을 알기에 지킬 역시 스스로를 자책한 것이었다.


이후 지킬은 하이드가 저지르는 악행에 "일종의 두려움"을 느끼고 "아연실색"했으나 "교활하게도 어느새 양심의 가책도 느슨해"지고 만다. 그는 "어쨌든 나쁜 짓을 저지른 것은 하이드였으므로 결국 나쁜 것은 하이드뿐이며 지킬은 나쁘지 않았다. 지킬은 외관상 훌륭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자위하고 때때로 하이드의 악행을 나름대로 보상하면서 "지킬의 양심은 위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양심의 가책 없이 하이드로서의 쾌락을 즐기던 지킬은 어느 날 약을 먹지 않고도 하이드로 변하고 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문하며 "거울에 비친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한 순간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버"릴 정도로 식겁한 지킬, 아니 하이드는 곧이어 지킬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얼마 안 가 하이드에서 지킬의 모습으로 돌아온 지킬은 "더 나은 본성을 서서히 잃어버리고, 두 번째의 나이자 악한 본성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닫고 "어쩐지 이 두 개의 인격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 지킬은 결국 지킬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비록 하이드가 사용하던 집과 옷가지를 그대로 놔두긴 했지만 두 달 동안 그는 "어느 때보다도 절제된 생활을 했고 그에 따른 양심의 만족을 즐거이 받아들"인 채 지냈다.


하지만 경각심이 사라지고 양심의 만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어느 날 지킬은 자유를 갈망하는 하이드의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약을 제조해 또다시 하이드로 변하고 만다. 곧바로 살인을 저지른 하이드에 대해 지킬은 "아무것도 아닌 도발에 그런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다손 치더라도 그 범인이 도덕적인 분별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하느님 앞에서는 무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며 반성은커녕 그를 변호한다. 양심이 무뎌지다 못해 점차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의 소멸은 지킬이 신에게 참회를 하는 대목에서도 엿보인다. "감사와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린 지킬은 "간절한 기원을 드리는 내내 내가 저지른 추악한 범죄가 나의 영혼을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참회를 하고 나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행동으로 인한 문제는 해결되었다"며 "나는 선한 인격에만 머무르게 될 것이다. 아, 내 마음은 그런 생각으로 한없이 기뻐졌다!"며 환희를 표한다.


하지만 지킬이 망각하고 있는 점이 있다. 바로 지킬 자신이 고백했듯 약을 만들기 이전, 즉 하이드라는 인격이 발현되기 이전의 지킬은 결코 '선한 인격'이 아닌, 이중생활을 즐기는 선악이 공존한 인물이었다. 지킬은 신에게 기도를 올릴 때조차 느낀 자신의 악성을 제대로 마주해 바라볼 생각이 없이 그저 기도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제멋대로 여겼다. 이는 그가 지킬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두 달 동안 '양심의 만족'을 느꼈을 뿐, 하이드로서의 악행에서 비롯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것, 하이드의 잘못은 지킬의 잘못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지킬은 자신의 악성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친 적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영영 지킬로 돌아오지 못한 채 하이드로 죽음을 맞게 된다. 지킬은 계속해서 지킬로 돌아오고자 약을 제조하지만 실패한다. 계속된 실패에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처음으로 샀던 소금에 불순물이 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 미지의 불순물이 약에 효능을 주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처음에 대량으로 만들었던 가루약에 사용한 소금의 불순물로 인해 약의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미지의 불순물'은 그의 타락한 양심인 것처럼 보인다.


지킬의 양심이 점차 무뎌지는 서술들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하이드는 남들이 모르는 자신의 악행일 수도 있고 혹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던 과거일 수도 있다. 나를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은 크든 작든 그러한 악행이나 그릇된 과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악행과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모습과 행동이 다르다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고 애써 정당화하며 그로 인한 반성과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노력하지는 않는가. 물론 그것은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라고 많이들 얘기하지만 그것과 일상은 과연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설령 불완전한 인간인만큼 양립이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고전에 걸맞게 고전적인 교훈을 불러일으키지만 역시나 고전이 그렇듯이 고전적인 교훈 역시 많은 성찰을 가져다 준다.


한편 문예출판사의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스티븐슨의 다른 단편소설인 <병 속의 악마>도 수록돼 있다. 이 소설은 스티븐슨이 하와이의 독자를 대상으로 쓴 소설로 다분히 우화적인 내용이자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욕망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지만 지킬과 달리 이 소설의 주인공 케아웨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끝내 행복을 맞이한다. 그 차이는 케아웨의 곁에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함으로써 성찰의 계기가 되는 아내 코쿠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의 뉘우침에는 뉘우치는 개인뿐만이 아닌 그 개인을 아끼는 타인의 존재도 필수라는 것을 스티븐슨은 이 소설로 알려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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