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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Jun 02. 2024

실습이라는 관문

    졸업의 한 관문으로 한 학기 동안 실습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이번 학기에 그걸 하기로 한다. 


    대만 국적의 학생은 해외실습을 하거나, 우리 학과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중국어를 가르치는 실습을 해야 한다. 학과에서 인정하는 기관은 초중고의 국제학교이거나 대학이 운영하는 랭귀지스쿨 등이다. 외국인 학생에게는 이 관문이 좀 관대해서, 대학부의 중국어과 수업을 한 학기 동안 참관하는 것으로 간단히 통과할 수 있다.


    어느 방법으로 실습 관문을 통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로빈이 자기 실습자리를 구하면서, 내 자리도 함께 물어왔다. 타오위엔(桃園)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베트남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다. 

    "로빈, 내 중국어 실력으로 누굴 가르칠 수 있을까?"

    "네 실력이면 충분해. 자신감을 가져."

    "기초가 하나도 없는 애들이면 모르겠지만, 중국어 이미 좀 하는 애들은 버겁지 않을까?"

    "그럼 내가 맡은 반이랑 바꿔줄게." 

    사랑스러운 로빈은 일자리도 구해오고, 또 반도 내게 양보해 준다. 


    '나, 드디어 중국어로 돈벌이하는 거야? 왓싸이!'


    이걸로 한편 돈을 벌면서, 한편 실습 관문을 통과할 수 있겠구나 하고 잠깐은 행복해했다. 하지만, 근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다가 문득 학교 위치가 어딘가 찾아보고서는 '뜨억!'하고 만다. 멀어도 너무 멀다. 8시에 시작하는 수업을 위해 새벽 6시에 출발해야 되는 거리다. 

    '그러면 5시에는 일어나야 된다는 거잖아?'

    일자리를 물어다 준 로빈에게 정말 미안했지만꼭두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져서, 구두약속을 번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냥 얌전히 대학부 중국어 수업을 참관하는 것으로 실습 관문을 통과하기로 한다. 

    

    내가 참관해야 하는 수업은 중국어학과에 입학한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중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개설된 수업이다. 가끔 모르는 단어들도 등장하지만, 기본적으로 하품이 나오는 수준이다. 물론 중국어 연습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중국어로 논문을 읽고 쓰는 수준의 중국어를 하는 나에게 단어 하나, 문법 하나를 가지고 따지고 드는 수업은 정말 매력이 없었다.  

    수업 참관이 지루해서 참을 수 없어지자, 베트남 학생 가르치는 걸 선택했어야 했다고 속으로 좀 후회를 했다.  타오위안의 대학까지 2시간여 차를 타고 가는 과정을 귀찮은 일로 느끼지만 않았더라도, 나는 이번 학기에 아주 도전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터다. 한편 돈을 벌면서, 한 학기 실습해야 한다는 졸업 조건을 통과하고, 중국어 교사 경력도 쌓고. 

    수업 참관을 위해 일주일에 3일이나 학교에 가야 하고, 총 8시간을 멍청하게 앉아 버텨야 한다는 것이 어찌 낭비처럼 느껴지는지...... 멍청하게 앉아있지 않고 내 할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그건 또 수업 참관을 온 학생의 자세가 이니여서, 참관을 허락해 준 선생님께 예의가 아닌지라. 열심히 듣는 척하면서, 멍을 때리는 것밖에, 달리 뭘 할 수가 없다. 


    '도전정신을 발휘했었어야 했어!'

 

    PS: 4학기 동안 하루종일 하는 학술토론회나 워크숍에 이틀 참석하거나, 한두 시간짜리 강연을 6회 들어야 한다는 졸업 관문을 충족하기 위해, 타오위안에 있는 한 대학에서 실시하는 학술토론회에 참석했다가 깨닫는데, 타오위안은 너무 멀다. 그 일은 안하는게 맞았던 것 같다.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타이베이역에서 비행장까지 지하철로 사오십분 걸리는 것만 생각하고 뭐 그 정도쯤이야하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단 타이베이역까지 가는데 한 삼십 분 걸리지. 타오위안에 도착해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또 몇십 분 걸리지. 그러면 정말 2시간이다. 

    하루, 네다섯 시간 일하기 위해 길거리에 왕복 4시간을 쓴다? 뿌화수안(不划算[bù huásuàn], 수지가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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