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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Apr 21. 2024

집단심리상담

    다른 대학이 어떤지는 사실 모르지만, 우리 학교가 그러면 다른 학교도 그럴 것인데. 대만의 대학은 자체적으로 심리상담실을 갖추고 있고 심리상당사가 여럿 근무한다. 학생들이 심리상담을 받고 싶으면 온라인 학교 행정 시스템에 들어가서 신청을 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가끔 한 번씩 신청을 한다. 


    심리상담을 처음으로 받게 된 계기는 이렇다. 한 아가씨가 우리 세어 하우스에 이사 들어왔는데, 이 아가씨가 우울증 증세가 좀 있었다. 졸업 논문 스트레스로 몇 날 며칠 울기도 했다.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다가 학교에서 공짜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니, 중국어 연습하는 셈 치고 한번 해보세요." 그녀가 권했다.

    "어, 그거 괜찮겠는데?" 

    중국어 연습을 할 거라고 갔던 첫 번째 상담에서 나는 펑펑 울고 나왔다. 한 번의 상담은 매주 한 시간씩 6번 진행되는데, 매주 울었다. 울고 나면 기분이 후련해졌다. 그래서 또 신청하고 또 신청하다보니 석박사 공부를 하는 동안 벌써 3세트 18회를 받았다. 


    이렇게 여러 번 심리상담을 받았더니, 학교 측에서 이런저런 집단상담이 있다는 안내 메일을 보내왔다. "공예 웰빙 : 예술을 통한 적응과 자기 관리" 프로그램이 있는데 원하면 언제까지 신청을 하라는 것이다. 영어 메일이었는데, 나는 그저 ART라는 단어만 보고 '앗싸!'하고 신청하기로 한다. 재미있을 것 같잖아!


    이 집단상담은 신청만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고, 상담사가 신청자들을 하나하나 만나 면담을 한 후에 이 상담을 받게 할지 말지를 정했다. 나는 너무 멀쩡해 보이지 않기 위해 조금 앓는 소리를 했다. 

    "제가 있죠, 학교 상담을 여러 차례 받아 봤거든요. 어떤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지만, 어떤 문제들은 접근도 안 된 것 같아요. 날이 가면 갈수록 내 속을 말하는 게 어려워지지 뭐예요. 예술을 통한 집단상담은 말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게 아니라서, 뭔지 모르겠지만 나를 답답하게 누르고 있는 어떤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해보고 싶어요."

    이 집단 상담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나처럼 영어가 안 되는 사람은 아예 참가할 자격이 안되었다. 하지만 내가 처량을 떨고 나자 상담사가 그럼 일단 참가해 보고 소통이 안 돼서 못 할 것 같으면 그만두는 걸로 하잖다. 

    원래는 6명으로 진행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첫날 가보니 7명이 왔다. 상담사는 내가 중도에 그만둘 것이라고 생각해서 1명을 더 뽑은 것 같다. 영어는 잘 안 들렸지만, 그냥 이런저런 느낌을 받는 것만으로도 좋아 나는 이 상담을 계속할 생각이다. 


    집단상담에 한 십분쯤 일찍 갔더니, 한 키 큰 아가씨가 나를 아는 척한다. 

    "날 어떻게 알아요? 난 자기를 본 적이 없는데....."

    "학술토론회에서 발표하는 걸 봤어요. 세계화어회에서도 발표하셨고, 대만대에서도 발표하셨잖아요."

    "와! 날 기억해 줘서 고마워요."

    "발표하신 논문들이 다 대단하다 싶던걸요."

    "아녜요, 기말보고서로 대충 쓴 걸 투고했는데 운이 좋아서 통과한 거예요."

    "잘 써서 된 거겠죠."

    "아녜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못 봤어요? 세계화어 학술토론회에서 질문받았는데, 대답 못하는 거?"

    그녀는 내가 천교수의 문법수업 첫 시간에 청강을 갔던 것까지 기억했다. 


    그녀의 이름은 '뇌물을 주다'는 중국어 단어 '회이루(賄賂, huìlù)'와 발음이 똑같다. 그녀는 말레이시아 사람인데 대한항공에서 승무원으로 7년간 근무를 했더란다. 여차여차한 계기로 지금은 교수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나는 그녀를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쯤으로 봤는데, 마흔이란다. 내가 내 나이를 말하자, 내가 그녀의 나이에 놀랐듯이 그녀도 내 나이에 놀라준다.

    "30대 중반쯤으로 봤어요." 그녀의 말이다.

    "내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을 믿었거든요? 이 나이가 되고 나니까 이제 안 믿겨요." 내가 답한다.


    집단상담을 신청한 학생이 나와 훼이루를 제외하고는 다 남성이다. 메튜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고 컴퓨터정보학을 공부하고 있다. 졸업 후에도 대만에서 살 작정이다. 리차드는 미국 사람인데, 상해에서 오랫동안 살다와서 대만에 온 지는 1년밖에 안되었지만 중국어를 잘한다. 메모는 생긴 것은 인도사람처럼 생겼고, 그가 만들어낸 미술 작품은 아프리카 케냐 사람들이 걸치는 화려한 옷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실은 콜롬비아 사람이다. 멧는 게으른 것인가, 소극적인 것인가? 자기소개도 대충 하더니, 미술 활동으로 뭘 만들어 내는데도 애가 열성이 없다. 넓은 도화지를 조그마하게 오려서는 작은 사진 네댓 장을 드문드문 붙이고 말았다. 죠수아는 '좀 여성스럽다'를 제외하면 웃음이 많고 말이 많은 게 정상인보다 더 정상적으로 보인다.


    “의외네요. 나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이 신청할 줄은 몰랐어요.” 회이루의 말이다. 회이루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남자의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상담을 자기 손으로 신청했다? 난 좀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감히 추측하는데, 저 다섯 영혼 중에 적어도 넷은 동성애자이거나 양성애자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다섯 번의 상담이 남아 있으니, 내 추측을 확인할 기회가 있을지도.


    첫 시간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잡지를 마구 넘겨보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장면을 찢어낸다. 큰 하얀 도화지 한 장과 방금 찢어낸 잡지를 이용해 자기가 만들고 싶은 아무 작품이나 만든다. 그리고, 그 작품에 대해 이름을 달고, 이 작품이 말을 할 수 있으면 내게 뭐라고 말할 것 같은지, 만들 때 어떤 느낌이었으며, 지금 자기 삶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했다.

    미술 작품을 만들면서 발견하는데, 나는 머릿속에 계속 ‘예쁘게! 예쁘게!’를 읊고 있었다. 내가 예쁘지 않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의 발현인가? 

  갖가지 파란색과 얼룩말과 예쁜 건물 사진을 갖다 붙인 내 작품을 설명하면서, '내 머릿속 어디에 이런 생각이 들어 있었던 거야?'하고 스스로 놀란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파란색은 내가 좋아하는 색이에요. 자유를 표현하는 색이죠. 얼룩말도 자유를 표현하죠. 얼룩말은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동물이거든요."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죠수아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지금 자유가 부족한가요?"

    "아뇨, 난 엄청 자유로와요." 

    훼이루는 꽃과 식물 사진을 죄다 가져다 붙였는데, 그녀의 자기 해석 '자연 속에서 쉬고 싶다'였다. 그러니까, 현재를 표현한 게 아니라 갈망을 표현한 거였다. 그녀는 나와 인사를 나눌 때 첫마디가 '너무 피곤해서 가볍게 쉬는 차원에서 상담을 신청했다'였다. 그러니, 작품도 '나는 자유로와!'의 현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을 드러낸 것일까? 마음 내키는 대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유를 갈망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느 경지의 자유를 원하는 거지? 이게 만족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벌써 다음 집단상담 시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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