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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Apr 05. 2024

후루룩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멋진 아침

  상업 중국어 수업에서 한국 기업에 관해 발표를 해야 했다. 


  이 수업은 중급 수준의 외국인 학생을 몇 명 불러와서 앉혀놓고,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효과적인 교수방법을 써서 정말로 상업 중국어 수업을 실시하고, 피드백을 받는 식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천교수는 몇 해 진행해 본 결과 외국인 연구생이 수업시연을 하는 데는 좀 한계가 있어 보인다면서, 모국어자만 이 과정을 실시하고 외국인 연구생에게는 그 수업을 보고 참관록을 쓰며 배움을 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공평성을 위해 외국인 연구생도 뭔가를 발표해야 하니 자기 나라 기업을 소개하는 발표를 하란다.

  나는 기업에 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 발표가 상당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서 천교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뭘 어떻게 발표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방황스러운 것이다. 

  삼성기업의 발전 역사를 찔끔찔끔 건드리다가, 형제간의 재산분쟁을 조금 생각해 보다가, 각 정권과의 모종의 결탁에 조금 관심을 보여보다가, 노조가 없는 유일한 기업이라고 한국 기업의 어두운 면을 발표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완전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다, 매체수업의 기말보고서 개요 작성 준비로 바빠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 다시 기업발표숙제를 펼쳐 들었다. 신기하게도, 어떤 아우트라인으로 어떤 내용을 발표해야 할지가 너무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단박에 4개의 목차를 정하고, 거기에 어떤 세부적인 내용을 넣을지 윤곽을 다 잡았다. 

  1장은 '숫자로 본 삼성'으로 정하고, 각종 조사에서 삼성이 이름을 올린 자료들로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세계적 위상부터 자랑하고 들어간다. 2장은 '삼성이 만든 기적'으로 정하고, 가전제품에서 금성을 따라잡은 신화와 누구도 성공할 거라고 보지 않았던 반도체에서 세계적 두각을 이뤄낸 신화를 말한다. 3장은 삼성의 발전과정을 시대별 지도자 3인을 중심으로 조금 언급한다. 그리고 4장에서 교수님이 우리에게 발표하길 원했던 주제, 삼성의 사회 공헌 노력을 넣기로 한다. 

  보통 기업 소개라고 하면 그 기업의 발전 역사로부터 시작할 텐데, 이건 좀 재미가 없잖아? 나는 내가 잡은 목차가 청중들의 흥미를 끌만한 매력적인 목차 같아 자못 뿌듯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담.'


  이런 아침이 좋다. 몇 날 며칠을 노력해도 갈피가 잡히지 않던 것이 아침 한두 시간 만에 환해지는 이런 느낌! 


  무슨 문제든 그냥 머릿속에 넣어두면 나도 모르는 사이 뇌 속에서 저 혼자 발효되어 문득 답이 찾아지는 걸 아는가? 이건 나의 주장이 아니고 뇌과학이다. 우리는 그래서, 지금은 생각이 안 닿더라도 고민은 하되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왜냐면 시간만 좀 주면 뇌가 알아서 내가 자는 사이에, 내가 멍을 때릴 때, 혼자 궁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 내게 그랬듯이, '여기 있어'하고 답을 척 내주는 것이다. 

  나는 내가 너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답을 찾아내는 '뇌과학'을 정말 사랑한다!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게는 정말 적합한, 정말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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