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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r 28. 2024

사실 그녀는 더 친절하게 안내해 줄 수 있었다

  우리 학과 사무실의 행정직원 슈에니는 일이 많다는 핑계로 늘 불쾌한 얼굴을 하고 늘 사람을 사납게 대한다. 사실 '일이 많다'를 핑계로 대는지 어떤지, 나는 모른다. 그녀의 불친절함에 대해 불평을 토로하면 사람들이 그런다, "그녀는 업무가 너무 많아서 힘들어서 그래, 네가 이해해"라고. 그래서 그런 줄 안다. 


  내 박사 졸업관문에는 학술토론회에 참가하여 최소 2편의 논문 발표하기라는 관문이 있다. 나는 막 2번의 발표를 마쳤기 때문에 발표증명서를 이메일로 보내며, 이러면 다 끝난 거야 하고 슈에니에게 물어봤다. 하루가 지나고서 답메일이 왔는데, 네가 이 관문을 통과하려면 <1. 논문 전문>, <2. 논문심사통과증명>, <3. 논문발표증명>이 필요하고 그걸 내 지도교수 포함해서 5명의 교수님이 심사해서 통과해야만 통과하는 것이란다. 


  '발표증명'은 학술토론회에서 발표하는 그날 바로 발급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없었고, '논문심사통과증명'은 어떻게 발급받는 것인지 모르겠다. 

  '불친절한 슈에니에게 쩔쩔매며 다시 물어보고 싶지 않아.'

  팡쉐이가 벌써 3번 발표를 했고 슈에니를 찾아간 적이 있다고 했으니 분명 알 것이다. 

  "팡쉐이, <논문심사통과증명>은 누가 발급해 주는 거야?"

  "네 논문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통보받았던 이메일을 캡처해서 증명으로 써도 되고, 학술토론회 일정표에 네 이름이 올라가 있을 거잖아, 그걸 증명으로 제출해도 돼."

  '이렇게 간단해?' 

  이런 걸 슈에니는 왜 말해주지 않는 거래?


  나는 '논문심사통과증명'이라는 것이 '발표증명서'처럼 학술토론회를 개최한 주최 측이 정식으로 발급해 주는 서류인 줄 알았다. 내가 팡쉐이에게 물어보고서야 알아내기 전에 슈에니가 미리 이야기해 주면 일이 얼마나 간단하냔 말이지. 

  슈에니는 항상 좀 이런 식이다. '너, 뭔 서류 갖춰와' 하면서, 그 서류를 어디서 발급받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몰라서 헤매고 헤매다 방법을 몰라서 다시 그녀에게 물어서야,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달갑지 않게 위에서 아래를 깔아보는 기분으로 겨우 가르쳐준다. 

  묻기 전에 미리 가르쳐주면 학생들이 여러 번 찾아오지 않아서 자기도 수월할 텐데, 뭘 알려주는 일에 왜 그렇게 인색하게 구는지 모르겠다. 슈에니는 마치 모든 학생들이 자기를 향해 이건 어떻게 해요 저건 어떻게 해요 하고 쩔쩔매며 사정하는 모양새를 즐기는 듯하다. '나, 아니면 아무도 몰라' 하면서.

  이헝은 슈에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슈에니가 마음씨가 나쁜 것은 아니야. 일이 너무 많아서 힘이 들어서 좀 불친절한 건 사실이지만. 네가 그녀가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 주고 들어가면, 그녀 너한테 무한히 친절해져."   

  나는 그녀가 자기가 행정을 꿰차고 있다는 것을 뭔 권력 삼아 학생들을 바보취급하고, 심지어는 교수들 위에까지 군림하려는 모양새가 영 마땅찮다. 


  팡쉐이가 학술토론회에 3번 참가하고 슈에니를 찾아갔을 때, 슈에니는 팡쉐이를 하찮아하며 이랬다.

  "학술지에 논문이 실려야 해. 학술토론회에서 발표한 건 안 쳐줘."

  우리 학번이 학기 초 설명회를 들을 때, 분명 올해부터는 학술지에 논문 한편을 싣거나, 학술토론회에서 2번 발표하거나 하면 된다고 설명을 들었더랬다. 

  "학과 주임교수가 분명히 된다고 했었잖아. 슈에니는 왜 안된다고 하는 거야?" 내가 흥분해서 말했다. 슈에니를 향해서 흥분한 것은 아니고, 이 소식을 전해준 루어삔을 향해서.

  "학과 졸업 규정에 몇 조항에 그렇게 되어 있대."


  슈에니의 말대로 고분고분 따르고 싶지 않은 나는 학과 홈페이지에 들어가 내 학번의 졸업 규정을 찾았다. 제7조에 분명히 적혀있기를 학술지에 실린 논문이나, 학술토론회에 발표한 논문이라고 되어 있다. 제7조를 쫙 복사해서 학과주임교수에게 보냈다, 슈에니에게가 아니라. 

  "교수님, 우리 학번 졸업규정에 이렇게 되어 있는데, 슈에니는 왜 안된다는 거죠?"

  며칠 후에야 슈에니가 착각을 했다며, 팡쉐이의 것을 인정해 줬다는 후문을 들었다.


  사실, 제7조에는 그 종류가 뭐가 되었든 논문 1편이라고 되어 있다. 학술토론회에서 발표했을 때는 2편이라고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다. 뭐, 하지만 더 따지지 않기로 한다. 


  슈에니가 항상 일이 많은 것은 그녀 탓이다. 한 번에 자세히 안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찔끔찔끔 명령하듯이 이거 해오라 저거 해오라 하고는, 학생들이 절절매며 그녀를 찾아가 사정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슈에니 그게 뭐 파워라고 그렇게 누리고 싶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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