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일기(1)

우울을 마주하다.

by 유현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부터였다.


소속되어 있던 곳에서 나옴과 동시에 믿었던 사람의 배신. 그냥 다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도,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도.


그런데 내 안의 응어리가 자꾸자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말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책의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 과거를 반추하게 됐다. 책을 눈앞에 두고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읽어봐도 내용이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꾸만 과거의 일들이 나를 붙잡았다. 소속되어 있던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재밌었던 추억, 그리고 내가 그 집단에서 나올 당시의 장면이 내 머릿속에 스냅샷처럼 저장되어 자꾸 떠올랐다. 계속 반추했다. '내가 그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을까,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순 없었나' 하고 끊임없이 후회하고 자책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정신상태로 공부를 했으니 학기가 끝나고 성적이 안 좋게 나왔을 땐 그냥 받아들였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과거에 대한 반추와 미리에 대한 걱정, 그리고 감정의 소용돌이 상태에 있던 나는 내가 상황을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반추하고 후회하는 것도 일시적인 거겠지, 난 지금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야,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없던 일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질 거야, 하고 생각했다. 공부도 다 내가 집중력이, 의지가 부족해서 그랬던 거야, 더 열심히 하면 나아질 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울증의 또 다른 증상들이 나타났다.


자꾸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사회부적응자가 된 것 같은 기분. 사람들과 눈도 잘 못 마주치겠고, 의사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하나도 모르겠고, 사람들은 재밌다고 막 웃는데 나는 하나도 웃음이 나지 않고. 그냥 다 웃으니까 나도 억지로 미소 짓는 느낌. 웃는 게 벅찼다. 웃는 일이 버거웠다. 웃는 일이 점점 사라졌다. 얼마 전까지도 흥미가 느껴지던 일들이 재미가 없어졌다.


종강 뒤에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 계속 누워있었다.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가 싫었다. 어쩌다 움직이게 되면 정말 느릿느릿 행동했다. 무기력했고 잠이 쏟아졌다.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계속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에 자꾸 억압되는 것 같았다.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멀리 떠나고만 싶었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고 싶었다.

아무에게서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나를 지치게 하는 모든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