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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딘 Apr 10. 2024

도둑질이란 게 이렇게 쉬워요

"야, 너 일루 와 봐!"


 골목 한쪽 끝에서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제가 선 쪽을 바라보던 문방구 아저씨는, 뜨끔했던 제가 몸을 돌리자마자 바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뻘짓'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허튼짓'을 뜻하는 서남 방언으로 수고스럽지만 아무 성과가 없는 일, 곧 헛수고를 뜻한답니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얻은 거 없이 시간만 버렸을 때, 흔히 '뻘짓 했다' 하죠.


 짧고 굵게 살다 불꽃처럼 산화하길 바랐건만, 의도치 않게 마흔여섯 개가 넘는 긴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지그재그 왔다 갔다 그 여정이 가관이군요. 거창하게 '뻘짓의 연대기'라 부풀려도 손색이 없겠다 싶습니다. 물론 연예인도, 셀러브리티도 아닌 흔해빠진 아저씨의 뻘짓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다만 위안은 좀 되지 않겠습니까. '나만 바보짓하는 게 아니구나'하는 차원에서 말이죠.


 초등학교 시절 영양가 없는 짓 참 많이도 하고 다녔지만, 굳이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이 기억이 떠오릅니다. '도둑질'. 구체적으론 문방구에서 장난감을 훔치는 거였죠. 정확하진 않지만 연구까지 해가며 제법 훔쳤으니, 남학생들의 치기 어린 장난 수준은 넘었었죠.


 모든 게 그렇듯 시작은 우연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방구 앞에서 어떤 아이를 봤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한 반에 60명씩 13반이었습니다. 서울 강북의 어느 못 사는 동네 학교였으니, 아이들이 바글바글 오죽 많았겠습니까. 학교를 마치면 아이들이 개떼처럼 몰려나와 문방구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중국의 메뚜기떼가 무섭다던데, 그 시절 이 '저글링 떼'도 못지 않았습니다. 문방구 앞 매대에 늘어놓은 갖은 장난감과 군것질 꺼리들을 게걸스럽게 해치웠었죠. 당시 문방구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는 계산을 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초등학교 3, 4학년 아이들이 일제히 몰려나와 찢어질듯한 목소리로 악악 거리는데, 정신을 차리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았을까요. 계산을 한다기보다, 차라리 돈을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날도 매대 앞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돈이라곤 10원 한 장 없던 저는 친구들에게 군것질 꺼리를 얻어먹곤 했거든요. 어서 빨리 사라,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던 중에 늘어놓은 매대 한쪽 끝으로 '문제의 아이'가 보였습니다. 4학년 남자애였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한참 동안 매대를 쳐다보고만 있더군요. '쟤도 돈이 없나 보다'하고 시선을 거두려는 찰나, 얘가 갑자기 상자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대로 뒤돌아 가는 겁니다. 어? 계산은? 의문을 품는 게 이상할 정도로, 아무 망설임 없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걸어가더군요. 뒷모습만큼은 누가 뭐래도 이미 계산을 마친 아이였죠. 바로 문방구 주인아줌마를 쳐다봤는데, 눈치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더군요. 여전히 아기새처럼 주둥이를 내밀어 대는 아이들을 상대하느라 분주하기만 했죠.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본 도둑질이었거든요. 한편으론 '이거다!' 싶었습니다. 저거면 돈이 없어도 먹을 걸 사 먹을 수 있겠다 싶었죠. 당시 저희 집은 한마디로 '대략 난감' 상태였습니다. 그때는 가난한 집들이 대부분 그랬지만, 단독주택 한쪽 구석을 막은 대략 6평짜리 방 하나에 성인 셋에 아이 셋까지 도합 6명이 지냈습니다. 수입이라곤 할머니가 공공근로로 벌어오는 푼돈이 전부였으니, 서열상 꼴찌인 제게 100원짜리 하나 떨어지기 쉽지 않았죠. 무능하고 무책임한 두 아들에 손주들까지 줄줄이 달려있었으니, '빨리 죽어야지' 늘 노래를 불렀던 할머니의 심정이 이제는 좀 이해가 갑니다.


[ image created by bing creator ]


 사나흘 지났을까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저는 직접 실행해 나섰습니다. 집과 하굣길 중간에 있던 또 다른 문방구를 먹잇감(?)으로 정했죠. 그곳은 50원짜리 뽑기로 하교 시간마다 난리통이 되던 곳이었죠. 번호만 맞으면 큼지막한 거북선 사탕도 탈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 늘 인기만점이었습니다. 뽑기 기구가 가게 안쪽에 있었던 터라, 저는 가게 바깥에 진열된 장난감을 노렸습니다. 말이 좋아 진열이지 직사각형 상자들을 차곡차곡 올려놓은 수준이었죠. 가게 바깥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가는 걸 잠시 지켜보던 저는, 주인아저씨가 뽑기 판에 정신이 팔린 걸 보자마자, 바로 장난감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곤 뒤돌아 걸어갔죠. '문제의 아이'가 했던 방식과 똑같이, 너무나도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공이었습니다.


 심장이 두 방망이질 치고, 뒤에서 뭔가가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기분이었지만,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집 앞 골목길에 다달아서야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텅 빈 방안, 손에 든 장난감을 보고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안도감과 쾌감이 몰려왔습니다. '도둑질이 이렇게 쉬운 거구나' 싶었습니다. 한편으론 숨겨진 비법을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돈 한 푼 없이도 원하는 뭔가를 가질 수 있는, 요술램프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소도둑이 바늘도둑이 된다는 속담, 100 퍼센트 맞습니다. 첫 도벽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점점 간이 배 밖으로 나오더군요. 100원짜리 프라모델에서 시작한 제 도둑질은 점점 덩치를 키웠습니다. 500원짜리 장난감은 물론 꽤나 값나가던 비행기, 탱크, 군함 프라모델까지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좀도둑에 시달렸던 문방구 주인들은 쉬 빼내갈 수 없도록 빡빡하게 장난감을 끼웠지만, 어느 각도로 빼야 빠르게 뽑아내는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저를 따라잡을 순 없었죠. 나중에는 얼마나 대범해졌는지, 가게 안에서 장난감을 빼오기도 했습니다. 주인이 등 뒤에 있고 아이들이 다 보는데서 말이죠. 하도 좀도둑질을 당하니까 주인들이 비싼 장난감들을 가게 안으로 옮긴 거였죠. 이미 능숙한 좀도둑이 돼버린 저에겐 그래봐야 소용없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마법 같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잖아요. 엉뚱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집에서 먼저 눈치를 챘습니다. 돈 한 푼 없는 동생에게 자꾸 새로운 장난감이 생기는 게 이상했던 누나가, 단도직입적으로 묻더군요. 훔친 거 아니냐고요. 할머니한테 혼날까 봐 아니라고 버럭 화를 냈지만, 숨겨놨던 장난감을 꺼내놓으며 추궁하는 누나를 당해낼 순 없었죠. 어떻게 빠져나갈지 머리를 짜내던 찰나, 둘째 누나가 의외의 제안을 해왔습니다.


'내 거도 훔쳐다 주면 안 이를게.'


 그도 가난한 집의 불쌍한 소녀였던 거죠. 가지고 싶은 게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옳커니, 바로 '오케이'를 외친 저는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섰습니다. '이번 기회에 내 실력을 보여주겠어'하는 오기도 작용했죠.


 영화를 보면 클라이맥스에선 꼭 비가 오잖아요? 비까진 아니었지만 그날은 먹구름 가득한 우중충한 날이었습니다. 학교 앞에 도착했지만 시간이 늦었는지 문방구는 영 한산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주인의 의심 가득한 눈빛이 레이저처럼 날아와 꽂혔죠. 경험상 이래선 기술(?)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불량식품을 좀 보는척하다가, 옆길로 꺾어져서 조금 떨어진 다른 문방구를 노렸습니다. 오호라, 그곳엔 때마침 주인이 자리를 비우고 없었습니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저는 주인이 없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바로 선반에 진열된 장난감을 잡았습니다. 얼마나 단단하게 끼워놨던지 빼내는데 꽤나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장난감을 빼내자마자 저는 문방구 옆으로난 골목길로 바로 꺾어져 걸었습니다. 그대로 골목길을 빠져나가기만 하면 성공이었죠.


 '아참, 누나 거.' 골목길을 3분의 1쯤 지났을까요, 그때 누나 거도 훔쳐야 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절반의 성공밖에는 안 됐죠. 누나가 자기 거 없다고 이를지도 몰랐고요. 골목 중간 모르는 집 문 앞에 훔친 장난감을 내려놓고는 문방구를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몇 걸음 걸었을까요, 문방구 쪽 골목 끝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쑥 하고 내밀었습니다. 문방구 주인아저씨였습니다.


"야, 너 일루 와 봐!"


 아저씨 얼굴을 보고 뜨끔했던 제가 휙 몸을 돌리자, 그가 바로 고함을 질렀습니다.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더군요. 그리곤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걸렸을 때의 상황은 한 번도 연습한 적 없었거든요. 뚜벅뚜벅 걸어오던 아저씨는 저를 지나쳐 가더니, 제가 숨겨놓은 장난감을 찾아 손에 들었습니다. 그리곤 제 귀를 붙잡아 문방구로 끌고 갔습니다. '이 도둑노무 새끼, 잘 걸렸다'를 반복하시면서요.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었죠. 경찰을 부르겠다, 너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이냐, 이번이 몇 번째냐, 집은 어디냐, 엄마 불러라, 폭풍 질문을 쏟아내던 아저씨는, 처음이라며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어대는 저를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경찰을 기다리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습니다. 사실 경찰서는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미친 짓이었다 싶습니다. 경찰서 옆 문방구를 노리다니요.


 '처음이라니까 봐주는 거야. 나한테 학교, 반, 번호 다 있으니까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


 10분쯤 붙잡아뒀을까요, 뜻밖에도 아저씨는 그대로 저를 놓아줬습니다. 경찰도 없고, 감옥도 없고, 할머니도 없고, 아이들의 놀림도 없었죠. 처벌을 기다리며 상상했던 모든 불행들이 안개처럼 흩어졌습니다. 속아준 건지, 좋은 마음에 용서한 건지, 이래저래 엮기는 게 귀찮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촉법소년이라 어차피 훈방이란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고요. 이유야 어떻든 고마웠습니다. 분명 제가 잘못한 게 맞는데, 용서해 준거잖아요. 혼나야 하는 게 맞는데, 혼내지 않았잖아요.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느새 해는 져 사방이 어둑해졌더군요. 걸어오는 내내 훌쩍거리며 다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도둑질따위 하지 않겠다고요.

 



 살아오며 그런 '칭찬 아닌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삐뚤어지지 않고 잘 컸다고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급격하게 난장판이 된 집안을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의 뻘짓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이후 단 한 번도 남의 물건에 손댄 적 없었고, 심지어 남의 몫을 빼앗는 일 자체에 흥미를 못 느꼈거든요. 게임이라면 뭐든 다 좋아했지만 화투도, 포커도, 그렇게 좋아하는 당구조차 '내기 게임(죽빵)'이라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남들 다하는 주식이나 코인 투자도 이상하게 매력을 못 느꼈죠. '모든 꽃이 온실에서 피는 건 아니다', '내게 주어진 것 누리다 가면 그뿐'이라 확신하게 된 기저에, 그 시절의 경험이 녹아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 삶이 어떤 '경계'를 그어준 경험이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딱히 얻은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던 건 또 아니군요.


 그때 문방구 주인아저씨가 독한 맘먹고 진짜 경찰에 넘겼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래도 맘 잡고 올바르게 컸을까요? 아니면 '별거 아니네'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삐뚤어졌을까요. 알 수 없죠. 역사뿐 아니라, 개인의 시간에서도 가정이란 무의미하니까요. 어찌 됐거나 삐뚤어지지 않고 세금 꼬박꼬박 내는 나라의 일꾼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자랐으니, 아저씨의 선택은 옳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때는 빨리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늦게나마 하고 싶군요. 들으실 순 없겠지만, 아저씨,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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