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종점입니다.삶은 계속 이어질 테지만, 내어놓을 요리가 더는 없네요. 조명을 끄고 무대 밑으로 내려갈 시간이다 싶습니다.
글을 이어오는 내내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당장이라도 마침표를 찍고 싶은 유혹 말입니다. 시리즈가 6편 정도 진행됐을때쯤 직감했거든요. '이 시리즈는 망했다'는 걸요.
고수들의 '눈이 즐거운 글'을 읽으니 알겠더군요. 제 글에 뭐가 없는지를요. '재미'도, '궁금증'도, '아름다움'도, 하물며 이렇다 할 '정보'도 없었죠.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은 Nobody의 '인생 넋두리'로 절정 고수들의 '아레테'와 비벼보려 했으니, 하룻강아지의 호기가 지나쳤다 싶습니다. 매번 50회도 안 되는 조회수는 제 오만을 나무라는 회초리질 같았죠.
저작권 이슈로 홧김에 지워버린 첫 번째 브런치 북처럼, 이 시리즈도 대충 접고 싶었습니다. 가성비를 철칙으로 삼는 엔지니어로서, 이런 낭비를 지켜볼 순 없으니까요. 시원스레 손절하고 '깔쌈한' 새 시리즈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제 가능성을 서둘러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밟히더군요. 처음부터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브런처(bruncher) 분들이요. 재미도 없고 길기만 한 제 넋두리를, 매회 찾아와 귀 기울여주시는 분들이요. 객석에 관객이 있는데 저 편하자고 무대를 닫는다면, 그건 예의가 아니죠. 그들이 굳이 찾아와 '좋아요'를 눌러주실 때마다, 제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괜찮아, 내가 듣고 있잖아. 계속해!"
그 소리가 저를 살아나게 만들더군요. 그 소리가 다시 펜을 잡도록 등 떠밀더군요. 좌절이란 안갯속에서 꾸역꾸역 발을 내밀도록 거들어 주더군요. 실패는, 패배는 이미 확정됐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손을 잡아 주더군요.
덕분에 이 자리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매달도 없고 환호도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지만, 완주를 해냈다는 뿌듯함만은 충만한, 이 마지막 계단 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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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감사드립니다.
김이안님 감사드립니다.
언더독님 감사드립니다.
초맹님 감사드립니다.
청년 클레어님 감사드립니다.
머신러너님 감사드립니다.
피운님 감사드립니다.
피터팬님 감사드립니다.
SEHO님 감사드립니다.
이상훈님 감사드립니다.
이찬란님 감사드립니다.
해조음님 감사드립니다.
마틸다 하나씨님 감사드립니다.
무당벌레님 감사드립니다.
온벼리님 감사드립니다.
무연고님 감사드립니다.
청연님 감사드립니다.
딸그림 아빠글님 감사드립니다.
작박가님 감사드립니다.
초동급부님 감사드립니다.
그밖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등 쓸데없는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요. 지나간 뻘짓의 기억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게 해주셔서요. 비록 패배하는 경기긴 했지만, 끝내 기록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요. 아무것도 아닌 시리즈 하나 완성했다고 이러는 게 좀 오버스럽기도 하지만, 꼭 이렇게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가며 감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본디 신세 짓고는 못 사는 성격이거든요.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데미안 중
또 하나의 껍질을 깼다고 생각합니다. 별 실속 없는 뻘짓이었을지언정, 완성했기에 가능한 거라 믿습니다. 이 뻘짓이 또 어떤 세계에 닿을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당장은 아무런 변화도 없을 확률이 크죠. 다만 '삶은 우연과 변수와 아이러니의 집적물'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다른 얼굴이 되어 제게 돌아올 거라 믿습니다. 전투는 졌지만 전쟁은 이겼노라, 그때 여러분께 다시 보고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