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퇴직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하곤 제가 말했습니다. 옆 책상에서 열심히 전기기사 문제를 풀던 선배가 고개를 들어 화면을 봤죠.
"부동산도 좀 있고 주식도 꽤나 한다더니, 결국 나갔구먼."
"나가서 뭐 하실 게 있는 거겠죠?"
"하긴 뭘 해. 나이 오십 너머 나가면 그냥 '김씨 아저씨' 되는 거지. 너도 그렇게 되기 싫으면 쉬는 시간이라고 놀지 말고, 나처럼 전기기사 자격증이나 공부해 둬. 그나마 아파트 전기실에서는 찾으니까."
선배가 볼펜으로 문제집을 콕콕 찍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문제를 푸나 들여다보는데, '띵' 핸드폰 알람이 울렸습니다. 1,830원이 입금 됐다는 문자였죠.
요즘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지필고사를 본답니다. 쪽지 시험이야 늘 보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보는 거죠. 생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험을 본 아이들은, 상당수가 후유증에 시달린답니다. 본인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라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늘 그런 칭찬을 듣고 자랐는데, 냉정한 현실을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거죠.
부모는 그런 아이들의 괴리감을 섬세한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더군요. 자칫 실망이 커지면 '질풍노도'의 시기인 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크게 엇나갈 수 있다면서요. 이래저래 부모는 참 어려운 직업이다 싶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는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좌절감을 경험한 적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요즘도 매주 겪고 있죠. 그 시작은 감히 '대문호(大文豪)'를 탐하던 뻘짓 때문이었는데, 역시나 아주 의미 없는 짓만은 아니었습니다. 따져보니 그게 불과 6개월 전의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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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을 믿는 능력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 물리학자 김상욱
이른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갑자기 저 한마디가 현실로 확 와닿았습니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보도블록, 줄줄이 늘어선 가로수, 인도를 구분 짓는 펜스, 8차선 도로, 치솟은 아파트들, 깜빡이는 신호등까지, 뭐 하나 인간이 만들지 않은 게 없더군요. 자연은 결코 그런 것들을 빚어내지 않았죠. 인간이 상상이란 도구를 사용해 자연에는 없는 것들을 '실재'하게 만든 거죠. 그렇게 인간들은 스스로 만든 '가짜(시뮬라르크) 공간'속에서 가짜 희로애락을 겪는구나 싶었습니다.
옳타쿠나, 이걸 책으로 쓰자! 당시 어려워지는 회사 때문에 회사를 나가면 뭘 해야 하나 한창 고민 중이었는데, 어쩌면 이게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걸작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고 믿었습니다. 자고로 사람이 급해지면 오판을 하게 마련이죠.
극 ISTJ 답게 다 살펴보고 꼼꼼히 계획하지 않으면 뭐에 덤벼들지 않는 편인데, 이때는 목차만 대충 잡고 바로 책 쓰기에 돌입했습니다. 예전에 역술가가 제 인생에 3번의 기회가 온다고 했었는데, 이번이 그 한 번이 아닐까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면서요.
시간 날 때마다 하루에 서 너 시간씩 책을 썼습니다. 교대근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속도가 처지거나 벽에 막히면 책을 내고 주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저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습니다. 책을 가슴에 부여안고 당당히 사표를 내는 모습도 떠올렸죠. 저를 바라보는 저 부러움에 가득 찬 시선들이란. 상상만으로도 짜릿했죠.
그렇게 김칫국을 거하게 들이켜가며 약 6개월 만에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퇴고가 많이 필요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의도했던 바는 잘 담겼다 싶더군요. 그래, 퇴고를 하는 한편으로 이제 구체적인 출간 방법을 찾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본격적으로 출간 방법을 검색해 보니 '투고'라는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더군요.웹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실패담'이 폭우처럼 쏟아졌습니다. 투고로 책을 냈다는 사람은 매주 나오는 로또 당첨자보다 드물더군요. 물론 내 돈으로 책을 내는 자가 출판이나, 텀블벅처럼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한 방법도 있었지만,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왠지 실력으로 승부하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것 같아서요. 왠지 내 책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투고의 산'을 넘을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제발 이런 원고는 투고하지 말아 주세요' 같은 책들을 찾아 읽으며, 투고 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설득력 있는 출간기획서 쓰는 법 등에 대해 익혔습니다.원고를 쓰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내 글을 포장하는 일은 훨씬 어렵더군요. 전자는 독자를 염두하는 정도면 충분했지만, 후자는 이미 고급차가 있는 고객에게 새 SUV를 파는 일과 같았으니까요. 그만큼 어렵고 확률 낮은 시도였죠. 출간 기획서 4페이지를 작성하는데만 한 달 가까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출간 기획서를 써보니 알겠더군요. 저는 순서부터 틀렸다는 사실을요. 투고로 출간하려면 이른바 '훅이 있는 컨셉(기획)'과 '적절한 타겟팅'이 핵심이더군요. 이 단계의 경쟁력이 출판사로부터 검증이 돼야, 비로소 디테일로 들어가는 거였죠.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 다 늘어놓고 거꾸로 거기서 '이런 점이 경쟁력이 있다' 주장해야 했으니, 일이 매끄럽게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수요가 많은 분야도 아닌 인문학 책을 말이죠. 모르니 용감했다고 말할 밖에요.
처음엔 원망부터 나오더군요. '이런 식이니 늘 뻔한 책들만 나오지!' 라며 출판계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죠. 카프카의 말처럼 '얼어붙은 호수를 깨는 도끼 같은 책'이 못 나오는 건, 상업성만 앞세우는 출판사들 때문이라며 혼자 열을 올렸죠. 제 책이 그 정도 수준은 아닐지라도 말이죠.
하지만 '역대급 최악'을 매년 갱신하는 출판 시장의 현실을 듣자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더군요. 큰 출판사의 경우 매력적인 컨셉을 갖춘 책들이 줄줄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고, 작은 출판사의 경우 책 한번 잘 못 내면 회사의 명운이 달라져버리니, 검증도 안된 습작에 귀한 자원을 낭비할 순 없었죠. 유명인이나 SNS 인플루언서들의 책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죠. 누구든 살아남는 게 먼저니까요. '전업작가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4단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말리겠다'던 한 편집자 출신 작가의 한마디가 가슴깊이 와닿았습니다.
아, 한숨이 나오더군요. 왜 이런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 스스로가 한심스러웠습니다. 알았다면 6개월을 쏟아붓지 않았을 테고, 아니 쏟아붓더라도 타깃에 좀 더 섬세하게 겨냥된 글을 썼을 텐데 말이죠. 고생은 죽어라 했는데 죽도 밥도 안된 상황이었습니다. 글만 훌륭하면 만사형통이라는 6, 70년대나 통했을 마인드로 승부하려 했던 제가 싫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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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라도 찍자라는 심정으로 보낸 투고는 역시나 '우리 출판사와 맞지 않는다'는 뻔한 답장으로 돌아왔습니다. 25번째 반려 답장을 받고는 투고를 멈췄습니다. 읽기나 했을까 싶지만, 읽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경쟁력이 없다는 의미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누구는 200군데 까지도 보내봤다지만 그 정도까지는 하고 싶지 않더군요. 제가 생각보다 맷집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그래,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먼저 '지명도'를 높이기로요. 당장 책 못 낸다고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할 자격'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팔로워들이 어느 정도 쌓이면 기회가 생기지 않겠냐는 판단이었죠. 이리저리 기웃거려 본 끝에, 결국 브런치라는 '글쟁이들의 무림(武林)'에 들어서게 됐죠.
글에 대한 '근자감'으로 충만했던 터라, 처음엔 금세 목적을 이룰 줄 알았습니다. 이 무림을 만만하게 본 거죠. 사내 게시판에서는 '좀 친다'는 이야기를 제법 들었기에, 글만 올리면 사람들이 바로 열광하리라 자신했습니다. 그게 '하룻강아지의 착각'이란 걸 깨닫는 데는 채 몇 주 걸리지 않더군요.
브런치는 게임으로 치면 '고인물'들이 넘쳐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미 성숙해 버린 플랫폼인 만큼 '선점 효과'가 굳어져 있었죠. 새 글을 올려도 관심받을 수 있는 시간은 채 몇 분이 안 되더군요. 게다가 글의 질(質)도 달랐습니다. 고수들이 쓰는 어떤 글은 아름다웠고, 어떤 글은 유창했고, 어떤 글은 배꼽을 잡을 만큼 재미있더군요. 전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좋아요 몇 개 받지 못한 글조차 아까울 정도로 훌륭했죠. 그에 비하면 제 글은 '아는 척', '배운 척'으로 도배된 '눈이 안 가는 글'에 불과하더군요.
자연스럽게 제 글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저절로 '자기 객관화'가 시작된 거죠. 제 글이 뭐가 부족할까, 어떤 면을 보강해야 할까, 어떤 주제를 다뤄야 한 사람에게라도 더 닿을까 고민하게 되더군요. 작가들이 낸 글쓰기 책을 찾아 읽으며 좋은 글이란 어떤 글인지, 내 글이 어떤 면에서 떨어지는지, 어떤 지점에서 글을 시작해야 하는지, 기준부터 다시 잡게 되었습니다.고수들이 선보이는 절정의 기량을 우러러보며, 비로소 눈이 뜨인 겁니다.
'프로의 눈' 말이죠.
이제는 어떤 글이 '팔리는 글'인지 알 것 같습니다.Nobody에 불과한 아마추어가 '글을 팔려면'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하는지 어렴풋이 보이더군요. 에세이란 장르가 Nobody에겐 적절한 시작점이 아니란 사실도 알 게 되었죠. 제 글에서 무엇을 덜어내야 하고,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 무엇을 써야 하고, 무엇을 멈춰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감을 잡았다 싶습니다. 물론 제대로 구사하려면 부던한 연습이 뛰따라야겠지만, 최소한 올라서야 할 언덕이 어딘지는 보인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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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실패는 분명 결실을 맺지 못한 뻘짓이었죠. 쏟아부은 정성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깝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아마추어의 환상을 버리게 됐죠. 독자를 염두하며 글을 쓴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꼰대의 화법' 안에 갇혀있던 저도 발견하게 됐고요.만약 초심자의 행운으로 출간까지 성공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그 지점이 시작이자 끝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자신의 글에 매료된 나르시스트처럼 굴었겠죠. 필연적으로 실패했을 테고 '세상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 뒤늦게 꼴불견을 떨었을 겁니다.
더는 글을 아마추어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써보다 안되면 다른 거 하지' 따위의 안이한 마음 같은 건 없습니다. 글쓰기로 '내 인생 하반기를 헤쳐나가겠노라' 단단히 마음먹었죠. 실패 덕에 제 수준을 알게 됐고, 뭘 단련해야 할지 파악했고,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배웠기 때문입니다. 꼭 출판시장이 아니더라도, 글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걸, 이 '자성(自省)의 시간'속에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더 영리하게 접근할 생각입니다. '말할 자격'을 얻기 전까지는 철저히 청자중심으로, '스토리' 중심으로 접근해 볼 생각입니다. 이 시리즈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연습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에세이는 아닐 것 같습니다.
엊그제 사내 게시판을 보는데 명예퇴직 명단이 올라왔더군요. 정년이 꽤나 남은, 같이 근무했던 선배의 이름도 보였습니다. 쉬는 시간, 그 짧은 틈을 타 전기기사 공부에 열중하는 또 다른 선배에게 말했습니다.
"선배, OOO선배가 나갔네요."
"부동산도 좀 있고 주식도 꽤나 한다더니, 결국 나갔구먼."
선배가 화면을 보며 대답했습니다.
"나가서 뭐 하실 게 있는 거겠죠?"
"하긴 뭘 해. 나이 오십 너머 나가면 그냥 '김씨 아저씨' 되는 거지. 너도 그렇게 되기 싫으면 쉬는 시간이라고 놀지 말고, 나처럼 전기기사 자격증이나 공부해 둬. 그나마 아파트 전기실에서는 찾으니까."
선배가 볼펜으로 문제집을 콕콕 찍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문제를 푸나 들여다보는데, '띵' 핸드폰 알람이 울렸습니다. 1,830원이 입금 됐다는 문자였습니다. 브런치 응원으로 받은, 글로 번 제 인생 첫 수입이었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또 들어간 노력을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더군요.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믹스커피나 마시려는데, '공부나 하라니까 또 어디 가냐'며 선배가 나무라더군요. 그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