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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수영 Nov 15. 2024

가까운 죽음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자주 생각한다. 수철이가 차에 치여 죽었던 꿈 이후로 시작된 이 생각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아버지의 신음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그 동력을 얻고, 할아버지 산소에 찾아뵙자는 할머니와의 실랑이가 길어질 때마다 아로새겨진다. 그렇게, 내일의 미명이 당연한 만큼 내일의 부재도 당연해진다. 수철이를 생각하면 애틋하고, 아버지를 떠올리면 가엾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그려보면, 소외된 늙은 소녀를 마주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가늠할 수 없는 억겁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나의 뿌리를 금방이라도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다. 할머니를 잃으면 내 존재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렇다.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바래져 가는 게 싫어서, 정작 할머니는 쓰지도 않는 동네 시암을 빡빡 닦아봐도, 그렇게 영원한 부채에 씻김굿을 아무리 해봐도 변하지 않는다. 앞서 말한 가정은 자명한 진실이어서 그렇다. 할머니가 없으면 나도 없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저 손주가 낯선 이들과의 거리를 좁힐 때, 자기가 한 일 중에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 자랑할 때도, 저 멀리 사는 나의 유일한 사랑은 제 존재를 양껏 내어준다. 앙상한 가지를 키우는 것도, 시든 열매를 먹이는 것도 거친 땅에 굳게 자리 잡은 뿌리다. 그 여인은 이미 나에게 전부를 주었다. 그렇게 오늘도 성실히 나승대는 나의 눈물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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