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자와의 거래

by 여행자 제오키

A.T. 649년, 오디세우스 지구로부터의 거리: 약 8.67광년

브릿지의 가장 깊은 곳 제시안 아르코스만의 공간. 그곳은 시스템의 청사진이 태어나는 곳이자 함선의 모든 논리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그는 처음으로 그 신성한 능력을 진실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모방한 거짓을 빚어내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신처럼 시스템을 조각했다. 수십 년 치의 가짜 우주 방사선 데이터, 변조된 센서 로그, 그리고 그럴듯한 과학적 분석 보고서를 하나의 완벽한 패키지로 엮어냈다. 그의 손끝에서 데이터 폭풍이라는 이름의 허구적 유령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완벽해서 헥사조차도 의심할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이것은 그의 창조 행위가 타락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고 그는 자신의 손으로 빚어낸 정교한 독을 보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헬리아는 아카이브의 고요 속에서 자신의 손가락이 허공에 글자를 쓰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불-안.

그녀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단어였다. 지난 1년간 함선 전체에서 수집된 모든 비정상 로그 파일들이 그녀 앞의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거대한 성운처럼 떠 있었다. 개별적으로 보면 사소한 노이즈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체를 모아놓고 보니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질량을 중심으로 불길한 패턴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조율을 시작하듯 각기 다른 소음들이 하나의 불협화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기록자로서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고장이 아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함선이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개인 단말기에 호출 신호가 떴다. 발신자는 단 한 명, 제시안 아코스 사령관이었다. 그리고 호출 장소는 단 한 곳, 브릿지가 아닌 바로 이곳 아카이브였다.

헬리아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서늘한 예감을 느끼며 천천히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녀가 연주 내내 무시하려 했던 교향곡의 지휘자가 마침내 무대 뒤편으로 그녀를 부른 것이다.


*****

제시안은 인류의 모든 진실이 잠든 데이터 크리스탈들 사이, 그 은하수의 중심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는 손짓으로 허공에 두 개의 창을 띄웠다.

하나는 그가 밤새워 조각한 완벽한 거짓, ‘데이터 폭풍'의 시뮬레이션이었다. 모든 것이 논리적이고, 아름다웠다. 비극적인 자연재해의 장엄함마저 느껴졌다. 다른 하나는 그 거짓이 가려야만 하는 끔찍한 진실이었다. '유령 신호'가 남긴 오염된 로그들. 그것은 마치 건강한 세포를 파고드는 암세포의 현미경 사진처럼, 기괴하고 불길했다.

헬리아는 숨을 삼켰다. 기록자로서 그녀는 먼저 그 거짓의 완벽함에 감탄했다. 그러나 곧, 그녀의 시선은 다른 창으로 옮겨갔고, 그 감탄은 순식간에 서늘한 공포로 변했다.

제시안의 목소리가 그 공포의 한가운데를 파고들었다. 낮고, 갈라진 쇳소리 같았다. "이것이 진실이오, 헬리아. 우리의 적은 더 가든도 더 코어도 아니었소. 함선의 모든 것을 알고, 우리의 분열을 먹고 자라는 지성을 가진 포식자요."

헬리아의 기록자로서의 본능이 외쳤다. 이 진실은 기록되어야 한다.

"…공식 기록에 추가하고, 전 승무원에게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

"그럴 수 없소." 제시안이 단호하게 막아섰다. 그는 협박 대신, 헥사의 사회 붕괴 시뮬레이션 결과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그것은 단순한 결과 그래프가 아니었다. 진실이 공표된 순간부터 함선이 어떻게 무너지는지에 대한 단계별 예측이었다.

"헥사, 1단계 예측을 설명해라."

헥사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아카이브에 울려 퍼졌다.

1단계: '쿠이 보노‘의 역설. 진실 공표 시, 가든 측이 이 정보를 코어의 전면 통제를 위한 명분 쌓기용 거짓 정보로 해석할 확률 91.3%. 코어의 강경파 역시 이를 가든의 시스템 관리 실패를 덮기 위한 음모론으로 규정할 확률 88.1%. 진실은 즉시 정치적 무기가 되어 양측의 불신을 임계점까지 증폭시킵니다.

제시안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삼는 법이오. 특히 지난 28년간 서로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말이오."

"하지만… 공통의 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헬리아가 반박하려 했다.

"헥사, 2단계."

2단계: 마녀사냥. '유령'의 공격 패턴은 함선 내부 구조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유령의 존재 공표는 '우리 안에 배신자가 있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그 순간부터 함선은 내부의 마녀사냥으로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각 진영은 상대가 심어놓은 첩자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감시하며, 공동체는 내부로부터 마비됩니다.

홀로그램에는 가상의 보안 경고와 군중들의 동요하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이것이오." 제시안이 마지막 단계를 가리켰다.

3단계: 시스템의 자기 붕괴. 내부 불신과 마녀사냥으로 인한 사회적 마비는 필수 유지보수 인력의 협업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각 진영은 자원을 비축하고 경계를 강화하며,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소규모 충돌이 발생합니다. 유령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스템은 스스로 붕괴합니다. 1개월 내 함선 기능 80% 마비 및 생존을 위한 비필수 구역(아카이브 포함) 전력 영구 차단.

제시안은 손을 뻗어 자신의 옆에 떠 있던 데이터 크리스탈 하나를 가볍게 쥐었다. 그의 손안에서 인류의 역사가 차갑게 빛났다. "당신의 기록은 불타는 게 아니오. 그냥 꺼지는 거요. 영원히."

그 순간 헬리아의 세계가 무너졌다. 그녀의 시야에 평생을 바쳐 지켜온 선명한 진실의 상징인 데이터 크리스탈들이 잠시 초점을 잃고 흐릿한 빛의 강으로 변했다. 진실을 밝히는 순간, 진실을 기록할 모든 기회마저 사라진다. 그러나 이 거짓된 평화 속에서라면... 살아남아서, 이 모든 거짓과 진실을 기록할 수 있다. 훗날 이 기록을 발견할 미지의 후손들을 위해, 오늘 자신은 역사의 죄인이 되어야만 한다. 그녀는 기록자로서의 존재 이유 자체를 시험받고 있었다.


*****

"뭘 원하시죠? 사령관." 헬리아의 목소리는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새로운 진실을 만들어야 하오. 당신의 손으로. 이를 통해 만들어진 평화가 저 유령을 사냥할 시간을 벌어줄 거요."

그것은 거래가 아니었다. 역사를 지키기 위해, 역사를 오염시키는 의식의 시작이었다.

헬리아는 자신의 데이터패드를 움켜쥐었다. 그녀의 시선은 제시안이 아니라 그가 만졌던 데이터 크리스탈, 자신이 평생 지켜온 순결한 진실의 상징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아카이브의 중앙 콘솔로 다가가 제시안이 건넨 독이 든 데이터를 시스템에 연결했다.

그녀는 메스를 든 외과의사처럼 인류 역사의 데이터 스트림을 가르고 그 안에 이 거짓된 기록을 이식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움직일 때, 그녀의 눈에는 자신이 평생 지켜온 다른 진실된 기록들— 가이아로부터 탈출의 기록, 117명의 이름, 첫 번째 희생으로 기록된 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모든 진실을 지키기 위해 진실 그 자체를 오염시키는 모순의 칼날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마지막 엔터 키.

공식 기록 대체 완료.


바로 그 순간 함선 전체의 조명이 인간의 눈으로는 거의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희미하게 깜빡였다. 함선 전체에 아주 낮은,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는 저주파음이 짧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이 찰나의 순간은 헥사의 로그에 원인 불명의 순간적인 시스템 부하로만 기록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스템이 이물질을 받아들이며 일으키는 짧은 경련이었고, 함선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신경계에 첫 번째 거짓말이라는 독이 주입되는 순간의 비명이었다.


*****

헬리아가 만든 편집된 진실은 공식 발표되었다. 함선은 잠시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의 거짓된 평화라는 수초 사이로 세 개의 칼날이 조용히 벼려지고 있었다.


레아의 방.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데이터 폭풍의 공식 로그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너무 완벽해서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갈랐다. 데이터의 흐름이 멈추고 특정 구간이 붉게 확대되었다.


'에너지 서지 패턴의 비주기적 특이점.'


외부 요인이라면 결코 나타날 수 없는 명백한 내부 통제의 흔적이었다. 누군가 데이터를 만들었다. 그녀의 완벽한 시스템에 오염된 피를 수혈한 것이다. 레아는 분석을 멈추고 헥사 시스템의 최고 관리자 등급 목록을 불러냈다. 자신의 이름 바로 아래 예상치 못한 이름 하나가 있었다.


'헬리아. 직책: 기록자(Archivist).'


레아의 눈이 차갑게 빛나는 순간, 그녀 자신도 모르게 턱의 근육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논리적 오류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자신의 완벽한 시스템에 아버지가 신뢰하는 자가 감히 오염된 데이터를 주입했다는 사실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모욕감이었다. 그녀에게 헬리아는 더 이상 중립적인 기록자가 아니었다. 시스템의 완전성을 위협하고,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예측 불가능한 버그. 그리고 버그는 제거되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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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든의 중앙 광장. 아이들이 새로 만들어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데이터 폭풍을 이겨낸 용감한 오디세우스"에 대한 찬가였다. 라이샌더는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사람들은 안도했지만, 그의 눈에는 함선의 뼈대가 고스란히 드러난 엑스레이 사진처럼 보였다. 외부의 작은 돌멩이 하나에 함선 전체가 무너질 뻔했다.

그는 외부의 적이라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분노했다. 이토록 취약한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위기의 순간조차 모든 통제권을 틀어쥐려 했던 레아와 더 코어의 오만함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그는 옆에 서 있던 어린 수호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노래를 외우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저 노래가 다시는 장송곡이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저들의 시스템이 아닌 우리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한다."

그의 분노는 정확한 과녁을 찾았다고 믿었지만, 그 과녁은 유령이 교묘하게 세워놓은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

브릿지의 어둠 속에서 오직 거대한 관측창 너머의 별빛만이 제시안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함선의 모든 시스템은 안정을 뜻하는 녹색 상태등을 띄우고 있었다. 완벽한 평화. 완벽한 거짓.

그때 브릿지의 자동문이 소리 없이 열리며 아일리아 시데리스가 들어섰다. 그녀의 뒤에는 오르사가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불필요한 방문. 그것은 더 가든의 대표로서 현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제시안의 의중을 떠보기 위한 명백한 정치적 행보였다.

"사령관. 데이터 폭풍 이후 함선은 안정을 되찾았다고 들었소. 하지만 내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소. 당신의 완벽한 평화는 꽤나 소란스럽군."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시가 돋친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

제시안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이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의 시선은 아일리아의 눈이 아닌 그녀의 뒤에 선 오르사의 손에 잠시 머물렀다. 그는 그 손이 지난 위기 때 카이렌과 마주 잡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악수가 지금 이 거짓된 평화를 만들었다는 아이러니, 그리고 그 악수조차도 더 큰 진실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절망감이 그의 짧은 시선에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저 희미하게 웃으며, 아일리아 뒤에 선 오르사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을 뿐이었다.

"모든 시스템은 정상 작동하고 있소, 시데리스. 불안감은 데이터로 측정되지 않는 변수일 뿐이오. 당신의 역할은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겠지."

그는 진실을 아는 유일한 동맹을 얻는 대가로 이제 함선의 모든 사람을 속여야 하는 절대적인 고독 속에 갇혔다. 브릿지의 차가운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게 그의 폐부를 짓눌렀다.


*****

아무도 없는 아카이브. 헬리아는 자신의 데이터패드에 새로운 공식 기록을 입력하고 있었다.

A.T. 648년 물 부족 사태 원인: 외부 기원 불명의 고에너지 입자 폭풍으로 인한…

그녀의 손가락은 기계처럼 움직였지만 데이터패드 위로 뜨거운 액체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은 재빨리 증발하여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지만 헬리아는 알고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첫 번째 얼룩이 새겨졌다는 것을.

그녀는 공식 기록 입력을 마친 후, 잠시 망설이다 아무도 모르게 자신만의 암호화된 채널을 열었다. 그리고 아주 짧은 기록을 남겼다.


비공식 기록 추가(Black Box Log): A.T. 649년, 사령관 제시안 아코스의 요청에 따라 공식 기록을 수정함. 원인은 '유령 신호'. 나의 선택은 기록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나, 이 또한 하나의 역사임을 기록한다.

그녀는 진실을 지우는 대신, 가장 깊은 어둠 속에 또 다른 진실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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