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이 울렸다. 2년 전 함께 운동장 데이트를 했던 소녀 ㅈ이다.(2년 전 글:https://brunch.co.kr/@breeze95/12) 낙엽이 떨어진 운동장을 걸으며 조곤조곤 고민을 이야기하던 소녀. “제가 요즘 소설을 쓰고 있는데 잘 안 풀려요. 이야기가 자꾸 산으로 가요.”라고 말하던 소녀. 그때가 열넷이었으니 이제 열여섯이 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메시지 창을 열었다.
여전히 소설가라는 꿈을 꾸고 있고,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창작 콘텐츠 플랫폼에서 소설 연재를 시작했다는 소식과 함께 자신의 글을 꼭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메시지에서 소녀의 떨림이 느껴졌다.
사실 ㅈ과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ㅈ의 담임을 하고 다음 해에 다른 지역의 학교로 이동했다. 소녀와 함께 한 시간은 1년이었고, 코로나로 인해 그마저도 온전히 함께할 수 없었다. 마스크를 쓴 채 격주로 띄엄띄엄 등교를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담임은 정신이 없었고 그럼에도 시간은 가고 아이들은 커갔다. 아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없었고, 스치듯 지나간 시간이었다. 담임으로서 가장 아쉬움이 남는 해였다. 그래서 ㅈ의 연락은 뜻밖의 반가움이었다.
2년 전 운동장 데이트 신청을 받겠다고 했을 때 ㅈ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찾아왔다. 소녀는 함께 운동장을 걸으며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매일 소설을 쓰고 있는데 언젠가 꼭 선생인 나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꿈을 이야기하는 소녀의 붉은 두 볼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워서 꼬집어줄까 하다가 대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렇게 3년 동안 계속 소설을 써왔나 보다. 혼자서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좇았나 보다. 그리고 가끔은 낙엽이 바스락거리던 운동장에서의 다짐과 약속을 떠올렸나 보다.
소녀가 보내준 링크를 클릭해서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ㅈ의 세상을 읽어 내려가며 가슴이 뭉클했다. 가을날 낙엽이 흩날리던 운동장을 밟았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운동장 구석구석에다가 걸음걸음 꼭꼭 ㅈ의 꿈을 심었다. 몰랐는데 그 꿈이 자라고 있다. 그걸 볼 수 있는 나는 꽤 행복한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