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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쌀알 권지연 Jul 16. 2023

아, 소년이여

시리와 빅스비의 랩 배틀




 방과후, 시리와 빅스비의 랩 배틀이 시작되었다. 열다섯 소년 ㅁ과 ㄹ이 휴대폰을 들고 흥미진진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소년 ㅁ은 아이폰을 들고 있고, 소년 ㄹ은 갤럭시를 들고 있다. 아이폰 인공지능 비서의 이름은 시리이고, 갤럭시 인공지능 비서의 이름은 빅스비이다. 시리와 빅스비의 랩 배틀, 그 뜨거운 한 판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기이한 대결을 주시했다. 소년 ㅁ이 ‘시리야 랩 해줘’라고 하자 시리가 랩을 한다. 아나운서 같은 목소리로 선량한 랩을 뱉어냈다. 이에 질세라 소년 ㄹ이 ‘하이 빅스비, 랩 해줘’라고 하자 빅스비 역시 랩을 시작한다. 쿵작거리며 80년대 뉴욕에 온 느낌의 올드스쿨 랩을 뱉어낸다. 공부밖에 모르던 친구가 갑자기 랩에 빠진 것 같은, 혼자서만 진지한 랩이었다. 내가 당장 랩을 하면 저런 랩을 할 것 같다. 누가 이겼다고 할 수 없는 웃긴 승부였다.      



 삶 곳곳에 AI가 스며들고 있다. 전자기기에 말을 거는 일이 어색하지가 않다. 그리고 간혹 AI의 너무나도 AI스러운 답변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감정이 배제된 다소 엉뚱한 답변들, 혹은 지나치게 정답 같은 답변들 말이다. 미래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 인공지능은 지식이나 정보를 알려주는 데는 탁월하나, 감정을 나누는 존재로 여겨지진 않는다. 감정 언어를 사용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느낌은 받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영혼 없는 답변을 듣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반에는 인간 AI가 있다. 시리에게 랩을 시키는 열다섯 소년 ㅁ은 별명이 AI이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ㅁ의 별명이 AI인 것에 격하게 공감을 하고, 나도 처음 그 별명을 들었을 때 곧바로 수긍했다. 별명을 지은 이가 누구일까. 참 안성맞춤 별명을 지어주었다.      



 일단 소년 ㅁ은 AI처럼 뭐든 잘한다. 마치 로봇이 명령어대로 실행하듯 공부도 잘하고, 체육도 잘하고, 미술도 잘하고, 누가 정답 버튼을 누른 것처럼 질문을 던지면 딱 정답을 이야기한다. 태어나서 수학이 어렵다고 느껴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고, 용모도 단정하다. 그리고... 공감을 잘 못한다. 소년 ㅁ은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은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언젠가 소년 ㅁ과 대화를 할 때였다. 솔직히 자기는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은 되지 않지만,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감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답을 한다고 했다. 소년 ㅁ 나름의 빅데이터가 존재하는 걸까. 너도 너대로 애쓰며 살고 있구나 생각되었다.      



 소년은 몰랐겠지만 사실 소년이 그럴듯한 대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일상에서 본인이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눈이 똥그래진다. 그리고 버벅거린다. 지금 이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고민하는 순간을 자주 들킨다. 그 순간을 나는 버퍼링이 걸렸다고 표현한다. ㅁ은 참 솔직한 것 같다고 말하며 웃자, 역시나 버벅거리며 쳐다보았다. 저 녀석 또 버퍼링 걸렸네.. 나는 검지손가락으로 소년의 손등을 꾹 눌렀다. 지금은 같이 웃거나 대답할 타이밍이라고 버튼을 누르듯 손등을 꾹 눌러 알려주자,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런데 열다섯 소년들 중에는 소년 ㅁ과 같은 아이들이 꽤 많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는 AI 같은 면모를 갖추고 있다. 꽃 피는 오월에 꽃 사진을 찍으러 나가자고 했을 때, 소년들이 물었다. “왜요?” 국어 시간에 시집을 펼쳐 들고 시를 낭송해 주었을 때도 물었다. “뭔 소리예요?” 슬픔에 대해서나 그리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 때, 소년들은 몇 초의 정적이 흐른 후, 다시 말해 잠시 버퍼링 상태로 버벅거리다가, 짐짓 이해하는 척을 했다.      



 주로 그렇게 이해하는 척을 한다. 나는 그 순간이 재미있어서 종종 일부러 그들이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던지곤 한다. 눈도 귀도 없이 살고 싶어서 장래희망에 지렁이라고 적은 아이, 목청 없이도 울음 우는 지렁이처럼 울고 있는 한 아이의 이야기나(남호섭, 꿈), 어제도 오늘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의 마음이라든가(김소월, 먼 후일),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 없는 마음(정지용, 호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바라보는 이의 마음(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역시 똥그란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거나, 버벅 거리다가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데 AI 소년이 어쩐지 요즘 들어 자주 고장이 난다. 종종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실없이 웃기도 하고, 가끔 실수도 하고, 수다쟁이처럼 수다를 떨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책도 주로 달달한 내용의 책들이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요즘 AI가 고장 난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호르몬의 영향인 걸까. AI의 진화인 걸까. 어찌 되었든 담임으로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소년 AI는 지금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완전한 타자로 존재하던 세계가 조금씩 내게로, 내 안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양과 질서, 세계 안에서의 배려와 존중, 나 아닌 누군가의 아픔과 그리움, 슬픔과 사랑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자라난다.      



 공감하는 마음은 슬픔을 기다려주고, 인간을 덜 외롭게 한다. 그리고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데워준다. 학교 폭력도 너의 아픔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공감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잔인함조차 옳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마음은 나와 세계를 이어준다. 부모님, 친구, 선생님, 의미 있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나,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공감의 마음이 자라난다. 열다섯의 세계가 확장된다.      



 오늘 학교도서관 행사로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이 도서관을 찾았다. 나는 올해 도서관 업무를 맡았고, 오늘의 행사 주관자도 당연히 나였다. 도서관을 찾은 손님(?)들에게 이런저런 먹거리를 제공하느라 분주했고, 잠시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소년 ㅁ이 슬며시 다가와서 물었다. ‘선생님은 뭐 좀 드셨어요..?’ 못 먹었다고 말하자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AI가 지금 내 처지를 공감해 주는 걸까. 슬며시 감동이 밀려왔다. 따뜻하고 말랑하다. 다들 요즘 AI가 고장 난 것 같다고 하더니 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네가 고장 나서 어쩐지 나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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