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땅에 내려왔다. 예언된 메시아였다. 그러나 그는 목수의 아들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초라한 탄생도 모자라 집도 없이 3년간 떠돌며 진리란 걸 설파하다가 인간들에 의해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땅에 와야 했으며 인간의 손에 반드시 죽어야만 했던 신. 그는 진짜 메시아였을까.
전능한 신이 인간 위에 군림해 불의한 자들을 지옥에 떨어트리고 자신의 백성들로 지상천국을 이루어 줄 것을 기대했던 인간들의 바람은 무참히 무너졌다. 그리고 인간들은 지금껏 신은 없는 것처럼 살고 있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신의 죽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더 믿기 힘든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신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 그리고 그가 언젠가 다시 인간의 땅으로 내려올 것이다. 그날은 아무도 모른다. '이걸 믿는다고? 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갖고 살면 그럴 수 있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 역시 거기서부터 출발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이 인간의 폭력에 맞서지 않고 끝내 극한의 고통 속에서 죽어야 했던 사건이 왜 전 인류를 향한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을까. 보이는 삶 너머에서 온 이 이야기는 신과 함께 3년을 동행했으며, 그의 죽음과 부활을 목도한 혹은 믿게 된 인간들이 자신의 삶을 바쳐 지켜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신이 그랬던 것처럼 인간들의 손에 기꺼이 죽임을 당했다. '신을 믿은 대가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싶기도 한 이 비극적 사건이 지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신이 말하는 구원의 대가는 간단하지만 간단하지 않으며, 가능하지만 한편 불가능하다. 신의 죽음과 그 부활을 믿는 것.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 내겐 천 년을 넘게 살아도 안 될일 같았다. 사는 게 고단할 땐 소원을 빌면 들어줄까 싶어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가 않아 답답하기도 했다. 신이 공중에 나타나 '내가 신이다. 나를 믿으면 천국 간다.'라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신은 침묵할 뿐이었다.
어쩌다 이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듣게 되어 나도 모르게 신자가 되었으나 거기까지는 부모의 영향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음... 노력한다고 믿어지는 게 아니었다. 믿을만해야 믿지. 그러나 돌이켜보니 신은 내내 나와 함께 있었다. 나의 실패와 슬픔, 분노 그 모든 상황에. 어쨌든 함께 말이다.
내 삶에 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