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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Apr 26. 2024

월요병, 퇴사로 없애다

: 주말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어  


얼마 전까지 다였던 직장에서 나는 몇 년간 아침 8시 출근, 10시 퇴근을 반복했다. 주말에도 적어도 하루는 출근하고 명절 연휴에도 가족 모임을 끝낸 뒤 직장으로 오기 일쑤였다. 마감일을 지키느라 잔뜩 긴장하는 시기에는, 급작스러운 사건으로 시간을 내야 할 일이 생길까 두려워 ‘지인의 경조사 소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내가 무섭기도, 불쌍하기도 했다. 바깥에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주말에도 일단 집을 나서고 보는 E형인 나도, 일요일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차분해져야 했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다스리는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월요병을 없애기 위해 일요일에 출근하는 방법은, 슬프지만 정말 효과가 있기도 했다. 월요일만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증상은, 퇴사와 함께 말끔히 사라졌다.       


퇴사 후 그동안 미뤄두었던 몸 고치기를 위해 이곳저곳 병원에 다니고 있지만, 적어도 하나의 병은 싹 고친 셈이다. 월요병! 모두가 나처럼 퇴사를 통해 일요일 저녁의 답답한 증상을 치유할 수는 없고, 나 역시 이렇게 요일 구분이 따로 없는 백수 생활을 오래 계속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절실했던 시간인 주말을 잘 보내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내가 통제하기 어렵지만 주말의 시간은 내가 결정하기 상대적으로 쉽다. 그래서 내 의지와 계획이 더 크게 작용한다. 물론 주말에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려면 회사로부터 불시에 호출이나 업무 주문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하고, 아프거나 어려서 내 돌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족이 없다는 조건을 전제로 하지만 말이다. 주어진 시간에 무엇을 할지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 해야 할 일을 언제 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즉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컨트롤당하는 데 익숙해져서 막상 내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날이 오기 전에, 나는 이 고민을 더 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남이 가지고 있던 내 시간을 찾아오기 위해서. 


주말의 가치     


성경의 창세기에도 천지창조 후 하루를 쉬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하던 일을 그치고 쉬는 것은 오래전부터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졌나 보다. 그런데 시계침에 따라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시간 대비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최고의 과제로 여기는 현대 사회에서는, 주말의 휴식마저도 다음 주에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물론 주말이 다음 일을 하기 위한 체력과 정신을 회복하는 의미도 있지만, 오로지 본업을 중심에 두고 주말도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과연 옳을까? 게다가 나는 내 직업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일을 내 정체성의 전부로 만들지 않으려면 주말이 필요하다. 굳이 본캐와 부캐를 나눠 부캐를 살리려는 맘이 아니더라도, 주말은 본업이 아닌 것으로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드는 시간이 된다.     

'구본창의 항해' 서울시립미술관, 2024.1.5.

주말은 나를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 몇 해 전 난생처음으로 버킷리스트라는 걸 우연히 적어보게 되었다. 리스트의 꽤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평일에 미술관 가기’가 있었는데, 사람 많은 주말을 피해 평일에 한가로이 전시를 감상하고 싶다는 열망이 담겨 있었던 거다. 나는 당장 며칠 후에 실천에 옮겼다. 까짓 거 반차 내고 가면 그만이지. 그 이후로 미술관 가기는 내 본격적인 취미가 되었다, 평일은 어려우니 주말마다 전시회를 찾았다. 미술관 가기라는 취미가 언뜻 듣기에 상당히 한가롭다 보니 가끔 ‘좋겠다, 여유 있어서’라는 반응을 접할 때도 있었다. 내심 서운했다. 나는 바쁘지 않아서 미술관에 가는 게 아니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것이었으니까. 방탄소년단의 RM도 미술관에 자주 가는 것으로 유명한데, 정확하게 나와 같은 이유로 선택한 취미라는 걸 알고 반가웠다. 그가 박물관에 가고 식물을 키우고 자전거를 타는 것은 ‘미치지 않기 위한 싸움’이라고 했다지. 맞다. 나도 미치기 않기 위해서 미술관에 간다.      


주말은 사소해 보이는 것들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한다. 직업의 성공에 모든 걸 바치는 세계에서, 사소한 시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의 가치가 얼마나 이해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스웨터의 보풀을 떼고, 집 주변을 산책하고, 가벼운 운동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는다면 우리의 시간은 몇 배로 즐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시간으로 채워진 것이니, 자신의 시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건 꽤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이지 뭔가.    

  

어쩌면 퇴사의 가장 큰 목적은‘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사소해 보이는 시간의 가치를 위해, 매일을 주말처럼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종종 시간 이야기나 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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