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아니면 과로라는 극단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라는 덕담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성취 불가능한 희망사항이다. 현실은 어딜 봐도 “많이 일하고 적게 버는” 사람 투성이다. 욕심 없이 적게 일하고 적당히 벌어서 소박하게 쓰며 살고 싶다는 희망을 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겠지만, 그런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동경은 ‘백수’ 아니면 ‘과로’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주어진 사회에서 길을 잃고 만다. 그토록 원하는 취업에 성공하고 나면 과로의 덫에 빠지고, 그게 싫어 박차고 나온다면 기본적인 생계도 어려운 상황에서, ‘욕심부리지 말고 일을 줄이자’는 다짐은 허무하다. 우리 대부분은 욕심이 많아서 일을 많이 하는 게 아니다.
공동체 주거에 관한 연구에서 한 인터뷰이는 공동체 주택 안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입주자들 각자 직장 일이 너무 바빠 집에 와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중요한 것은 잘 알지만, 집에 와서 이웃들과 만나 무언가를 해볼 시간도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로가 건강에 해롭다는 건, 굳이 의학적 근거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고, 과로사의 사례도 적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주당 근무시간이 52~60시간에 이르면 관상동맥질환(내 얘기!) 발병 가능성이 1.5배 이상으로 커지고, 주당 근무시간이 60시간이 넘으면 사고 발생의 가능성이 급격히 증가한다고 한다.(김인아, “오래 일하는 당신”, 우리는 왜 이런 시간을 견디고 있는가, 노동시간센터 기획, 2015, 코난북스)
과로-피로-타인의 과로로 이어지는 악순환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일터는 쉽지 않은 수준의 체력을 기준으로 한다. 심각한 지병이 있지 않더라도 쉬이 피곤해지는 ‘저질 체력’ 소유자에게 직장이 요구하는 일의 강도와 시간을 쉽게 해내기 버겁다. 사실 저질 체력의 기준도 무엇인지 모호하다. 한국의 일터에서 노동시간은 강철 체력을 가졌거나 만성피로에 시달리거나, 둘 중의 하나를 가져야 따라갈 수 있는 지경이다. 노동의 시간표는 체력뿐만 아니라 시간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짜여 있다. 자기 시간을 오로지 직장의 필요에 맞춰 내줄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일터에 적당한 사람으로 선호된다.
장 보러 다녀올 시간이 모자라 새벽배송으로 받은 먹거리로 끼니를 해결하고, 그 새벽배송을 위해 다른 노동자들이 밤새 일하고.... 이렇게 기괴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나의 노동시간 확보를 위해 타인의 과로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시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첫 번째로 떠오르는 건 역시 노동시간이었다. 마침 오늘은 노동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