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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J Jul 11. 2024

모닝 루틴과 나이트 리츄얼

여는 아침과 닫는 밤

굿 모닝     


나는 여태 내가 아침형 인간인 줄 알았다. 춡퇴근 하는 생활을 끝내고 나서 깨달은 건, 알고 보니 나도 늦잠을 좋아하고, 이불 밑에서 모바일폰을 보다가 느지막이 일어나는 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 그저 이른 출근 시간에 나를 맞춰왔던 것뿐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동료가 말했다. “그래서, 늦게 일어나는 게 아침 7시라고요? 그럼 아침형 인간 맞아요!” 그렇다면 그동안은 새벽형 인간이었던 걸 수도 있겠다.    

 

아침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자기 계발 열풍이 불 때마다 자주 거론되었던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다. 바쁜 일상에서 그나마 확보가능한 시간대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하루의 시작은 중요하다. 좋은 상태로 첫 단추를 끼우는 시간이니까. 좇기는 아침 대신 느긋한 아침을 보낼 수 있다면 비록 나머지 하루가 빡빡한 스케줄로 이어지더라도 급하지 않게 맑은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계발과 관련한 아침의 신화가 성취를 궁극적 목표로 두고 있다면, ‘느긋한 아침’은 평화와 여유를 위한 것이랄까.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집안의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시키고, 물을 한 잔 마신다. 그리곤 체중계 위에 올라선다. 환기를 시키면서 밤과 아침의 공기를 바꾸고, 몸무게를 재면서 어제의 결과로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카카오, 오늘 뉴스 알려줘’라고 다정하게 주문해서 요약된 뉴스를 듣고, 이어서 클래식 에프엠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다. 그리곤 바로 식사 준비를 한다. 아침을 거르지 않는 건 특별히 건강을 위해 결심한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프고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게 한 상 차린 아침이 아니라 아주 간단한 요깃거리면 되기 때문에, 식탁 위에 그릇이 3개 이상이 되는 일이 없다. 원데이 클래스에서 배운 대로 드립커피를 만드는 게 그다음 일과다.       


커피를 마시면서 메모지에다 오늘 날짜를 적고 하루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한 단어 또는 한 문구로 적는다. 논문을 쓰는 날이면 ‘분석력 최고’, 여러 사람과 만나는 날이면 ‘너른 마음’...... 이런 식으로. 그리곤 잠들기 전까지 마쳐야 하는 투두리스트를 써내려 가는데, 그 내용은 아주 사소하다. ‘약 먹기’처럼 단 몇 초만에 할 수 있는 일도 적어놓고 하나씩 해낼 때마다 동그라미 치는 재미를 느낀다.      


요즘 새로 시작한 루틴은 아침의 글쓰기다. 예전에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에서 제안한 글쓰기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백지에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는 것이었는데, 혼자 또는 그룹으로 함께하는 붐이 일기도 했다. 나는 마음에 우울감이 찾아왔던 시절에 혼자 그 방식을 약식으로나마 실천했던 적이 있는데, 힘을 되찾는 데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종이 위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거나 적어 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 것이다. 지금은 좀 다른 목적, 그러니까 하루를 글쓰기로 열어서 집중력을 높이고 차분하게 일과를 시작하고 싶어서 아침마다 노트북을 연다. 며칠 해보니 역시 잘 한 결심이다 싶다. 노트북에 전원을 연결하고 파일을 열기까지가 마치 헬스클럽 문 앞에 가기까지의 단계처럼 세상 제일 귀찮고 어려운 일이었는데, 모닝 루틴으로 정했더니 좀 쉽게 되는 것 같다.

           

굿 나잇     


밤에는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일기를 쓰고 잠에 드는 순서로 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지만,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지킬 것만 같은 이 쉬워 보이는 밤의 루틴이 나에겐 정말 어려웠다. 화장도 안 지우고 쓰러져 자길 몇 년, 어떤 날은 옷을 갈아입다 말고 외출용 상의와 잠옷 하의를 입은 채 잠이 들기도 했다. 출퇴근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면서 이런 고단함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새벽에 잠을 깨는 불면증은 여전히 문제였다. 일기를 쓰게 된 것도 어쩌면 기록의 의미보다는 하루의 마무리를 정식으로 하고 싶어서였다.      


일기를 쓴 지는 몇 년 되었다. 위클리 다이어리의 좁은 칸에 간단하기 몇 마디 쓰는 일이지만 하루를 반듯하게 마무리하는 리츄얼이다. 한 줄을 겨우 남기던 처음과는 달리, 요즘은 네다섯 줄을 써서 일기장 한 칸을 꽉 채운다. 특별히 쓸만한 이야깃거리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밤 시간에 생긴 여유 때문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일기장에 아무 감상이나 쓰는 일기에 불과하지만 어떤 하루도 쓸모없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불안도 글로 쓰다 보면 좀 안정되고 짜증도 적어가다 보면 줄어드는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매일 이런 밤을 맞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게으름과 피곤함이 한도를 초과했다거나, 계획된 일정을 다 마무리 못한 찝찝한 기분이 든다면, 그런 날은 미련을 버리고 그냥 잠자리에 일찍 든다. 망친 하루는 빨리 접어야 한다.       


하루의 처음과 끝을 잘 보내면 하루 전부가 좋아질 것 같아서,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나가고 싶어서, 느긋한 아침과 평화로운 밤을 꼭 즐기려고 한다. ‘여는 아침’과 ‘닫는 밤’을 내 취향대로 잘 꾸리는 건 참으로 중요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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