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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변 Mar 04. 2024

돌고래인간 명문대 입학 실패여행(현장검증 편)

돌고래인간이 도대체 잘하는 게 모야? 자기 이해를 찾아 떠나는 여행 3

돌고래의 IQ는 80-90 수준이다. 나는 돌고래인간이다. 물론 지금은 돌고래인간을 대변하는 돌변(돌고래변호사의 줄임말)이 됐다. 어릴 적 무엇을 배워도 남들보다 느렸다. 열정과 투지는 대단해서 20년 이상 계속 노력했다.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던 "자기 이해 여행기"를 적는다. 오늘은 명문대 입학을 노렸던 비밀도서관의 열공 스토리를 꺼내본다.




비밀독의 추억


우리 고등학교는 고1 때부터 야간 자율학습에 특화된 비밀독서실이 있었다. 친구들끼리 줄여서 "비밀독"이라 편하게 불렀다. 비밀독에서는 11시까지는 의무적으로 야자를 했고 새벽 1시까지 가능했다. 주말 학습도 가능한 365일 편의점식 독서실. 물론 철저한 신원검증을 통과해야 입실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조용한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풍수전문가가 됐다. 비밀독이 입시성공의 부적인 것처럼 무속인 같은 위엄으로 유혹한다.

"명문대 간 선배들 전부 이곳 출신이다"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 하지 않는가? 철없는 고딩들은 대학진학이라는 꿈과 엉덩이력 사이의 간극이 남극과 북극처럼 멀다는 것을 잊는다. 입실만 하면 엉덩이가 쪼개져도 고통을 못 느끼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할 것이라 착각한다. 비밀독 입실에 구두계약을 맺은 학생들은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자신의 혀를 원망하게 된다.


독서실 정원은 40명. 이것이 웬일? 그 신비로운 세계에 기적적으로 돌변이 포함됐다. 사실 어릴 때부터 혀를 잘 놀렸다. 혀에 모터를 한 번 달면 고출력 회전수로 웅변을 했는데, 비밀독 입실 면접 때 터보출력이 나왔다.


비밀독에 입실한 첫날. 경건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사립독서실 못지않은 높은 개인 책상. 높은 회색 책상의 위용에 무릎을 꿇었다. 360도 뚫려있는 누리끼리한 학급 책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곳은 개인스탠드를 켜고 공부하는 곳이라 어두웠다. 24번 책상에 배정받고 형광등 램프 스위치를 더듬었다. 강한 빛이 책상을 비추었다. 동시에 스탠드 램프의 지니가 "무슨 대학 가고 싶니? 소원을 말해라" 물어보는 착각에 빠진다. 지니에게 Y대 경영학과를 목표로 한다고 선포했다. 입실만으로 명문대 가는 줄 알았다.


입실은 마음대로지만 퇴실은 마음대로 안 되는 비밀독. 면학을 위한 집단분위기를 강조하는 조폭스타일이다. 신중히 입실하지 않으면 오징어 게임처럼 갇혀버린다. 험상궂은 교무주임 선생님이 퇴근 이후에도 수시로 현장을 급습했다. 그때 자리가 비워져 있는 학생은 10분 내로 복귀하지 않으면 야구방망이로 맞는다. 오징어가 될 때까지.



돌변이 돌고래인간이었다는 현장검증


고등학교 1학년의 열정남 돌변은 자신의 지능(IQ)이 낮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공부가 적성에 안 맞고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지만 꾸역꾸역 참아가며 공부했다. "학생이 돈을 벌게 아니면 공부밖에 없다" 생각했다.


모의고사 문제집을 자주 풀었는데 어려운 문제는 해답을 보아도 이해 안 될 때가 많았다. 돌고래인간의 한계를 느꼈고 화도 났다. 친구에게 설명을 듣고 혼자 2시간 동안 고민해도 이해가 안 간다. 결국 화를 못 참고 내 뒤통수를 연신 후두려 팬다. 팍! 팍! 그 소리는 인간의 존엄을 패대기치는 강력범죄의 ASMR. 공소시효가 지난 당시의 현장검증을 위해 수사에 착수한다. 현장검증을 위해 비밀독의 증인들을 소개한다.



<비밀독의 등장인물 4명 소개>


기원

모기같이 얇은 목소리에 곱상한 외모. 공부, 축구, 잠밖에 모르는 3위 일체의 수도사.  

"잠을 8시간 이상 안 자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하는 수면전문가. 판다처럼 오래 잘 수 있다.

교육열 충만하신 어머니가 수면문제로 담임선생님과 고민 상담함. 축구와 수면시간 외에는 열공모드.

SKY 공대 진학. 현재 연락두절.


태평

수학여행 장기자랑 때 갑자기 무대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기분파 모범생. 전국 논술대회 최우수상 수상자. 글쓰기 천재로 펜만 잡으면 이름처럼 천하태평. 장래희망 방송국 PD. SKY 신방과 진학.


준표
3년 반장 역임의 똘똘이 이미지. 키가 엄청 작지만 춤과 운동을 잘 함. 첫인상이 강렬했는데, 수학문제 풀다가 브레이크 댄스 윈드밀을 추고 일어서서 다시 수학문제를 풀던 놈. 서울 상위권대학 경제학과 수석졸업.


대현

내신성적 전교 1등. 전교 상위권 학생들의 과목별 점수를 모두 기록하는 성적통계청. 방송 3사 총선 출구 조사 보다 대현이시험 직후 출구조사가 더 정확함. 통계의 목적은 본인이 전교 1등인지 확인하는 의도였지만, 선의의 경쟁을 했던 긍정적인 친구. 명문대 경영학과 진학.



돌변의 학습량과 시간은 최상위권이었다.

기원이 처럼 공부를 잘하길 바랐고 그의 모든 것을 따라 했다. 문제집도 같은 것으로 사고 시간계획표까지 복사했다. 미친 스토커 수준. 그래도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돌변이 너무 추종하니 기원이는 스토킹이라 오해했다. 날 귀찮아했지만,  받아줬다.

판다 기원이는 피곤할 때마다 비밀독 책상에서 엎드려 잤다. 깊이 자면 최소 30분 이상이었다. 그가 축구를 할 때도 잠을 청할 때도 나는 공부했다. 학습시간이 결코 기원이보다 부족하지 않았다.


"기원아~ 나의 스토킹 때문에 우리가 연락이 끊긴 걸까? 그때는 미안했어"


준표와는 3년 가까이 주말에도 함께 공부했다. 우리는 대학입학이 감옥탈출이라 생각하며 절친처럼 의지했다. 몰래 공부할 시간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 같이 붙어있었다. 준표는 고3 이후로 모의고사 성적이 꾸준히 올랐고 좋은 대학에 진학했다. 반면 돌변은 막혀버린 천장처럼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고3 때는 천장을 높여보려고 언어영역에 집중하다가 천장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참고로 준표는 절대 자신의 공부량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준표에 비해서 태도나 공부량에서 밀리지 않았다.


반에서 1등인 태평이와는 고1 때 짝이었다. 담임선생님께 부탁드려서 공부가장 잘하는 짝을 매칭해 달라고 했다. 태평이는 학교나 학원보다는 집에서의 자율학습을 선호했다. 그래도 우수한 성적의 학생인 만큼 당연히 비밀독에서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방송반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고 외부 행사도 다녔다. 나는 서클활동도 했고 외부행사도 없이 오직 공부했다. 태평이는 기초도 탄탄하고 머리가 좋으니 내가 더 Input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신성적 1등 대현이와 비교해 본다. 잘생긴 대현이는 사교적이다. 말재주가 좋아서일까? 이성에 일찍 눈을 떴다. 대현이는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두 살 터울의 "김양"을 짝사랑했다. 물론 고3 때는 공부만 했지만, 이전에는 김양에게 연애편지도 쓰고 몰래몰래 비밀독을 빠져나갔다. 대현이가 비밀독에서 무단 이탈 했을 때도 나는 거의 공부를 했다.



현장검증 결과를 공개한다.

돌변은 최상위권 친구들 이상으로 시간을 갈아 넣어서 공부했다. 물론 고3 때는 친구들 모두가 최선을 다했지만, 고교 3년을 통틀어 보면 돌변의 노력은 상상 초월이었다. 친구들은 대체로 고3으로 갈수록 학습 페이스를 올렸다면, 돌변은 고1 때부터 F1경주처럼 풀액셀을 밟아 학습 서킷을 질주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엉덩이의 뾰루지를 짜내며 공부했다. IQ가 낮다고 생각하고 보통친구들보다 더 노력했다. 명문대 입학으로 가난의 한을 풀고 싶었으니 얼마나 의지가 강했을까.


현장 검증을 통해 돌변의 학습시간과 노력이 충분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통계적 유의성 운운하고 싶어서 최소 20명의 친구를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과 기억력의 부족으로 4명의 친구만 소개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돌변이 우주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노력에 비해 성적이 참 안 나왔다는 것이 가장 포인트다.


가장 여유로운 고1 때도 학기 중엔 하루에 6시간 이상. 방학 중엔 10시간 이상 공부했다. 어느 정도 그에 준하는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극악의 효율이었다.


위에서 소개한 4명의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얻고 훌륭한 대학에 간다는 경쟁심은 결단코 없었다. 돌고래인간은 사람과는 경쟁하지 않는다. 고요히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무속인 담임선생님의 점꾀처럼 우리 학년도 비밀독에서 많은 명문대생이 배출되었다. 돌변에게는 처참한 수능시험 성적표가 날아왔다.


고1 때 친구 욱형이란 친구가 있었다. 4차원소년인 그는 엉뚱한 말을 자주 했지만, 밉상은 아녔다. 솔직 담백한 스타일의 욱형이가 내게 한말이 기억난다. 정말 용감했던 그의 한마디....


너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데 노력에 비해 성적이 안 나오는 것 같아




열심히 공부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표를 보며 좌절만 하기에는 내가 너무 초라해지기에....

그리고 친구들과 경쟁해 봐야 나만 상처받을 것이 뻔하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의 속임수를 이용하여 적당히 넘기고 묵묵히 사는 습관을 갖게 된 것 같다.


계속되는 실패를 통해 배운 것


"남과 비교하지 않기!" 

"나만의 속도대로 가기!"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속도대로 가는 습관이 형성된 덕에 경쟁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됐다.

경쟁심에 약하기에 누구를 이기고 싶어 하지도 않고 이빨을 드러내지 않고 더불어 사는 법을 익혔다.

그래도 거북이처럼 열심히는 살아간다.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큰 재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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