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생각을 주체하지 못하고, 생각을 배 밑에 두는 것이 아니라 생각 안에 완전히 먹혀버리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잠을 조금 몰아내고.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라는 거, 무슨 뜻인지 알아?'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살짝 입술을 움직이다 말았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싶어 고개를 돌렸다. 내가 그럴 리 없으니까. 그런 오만한 생각으로 날카로운 생각의 날을 손으로 쥐어 꺾어내려 했지만 날을 쥔 손에서는 피가 배어 나올 뿐이다. 나의 반론을 비웃듯이.
잘한다는 말, 그런 말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들어서는 막연하게 허상만을 좇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지금 맴돌고 있는 현실과 꾸는 꿈은 너무나도 달라서 아예 잘못 산 것은 아닌가 싶어 전부 다 포기하고 딱딱한 땅으로 몸을 던지고 싶을 때가 많다. 어중간하게 잘하는 것에 안주하고 오만하게 생각했던 짧은 생각의 실에 미끼 없는 낚싯바늘이 매달려 돌아왔다. 충실하게 나를 아프게 한다. 빠지지도 않고.
생각이 폭이 좁고 글로 풀어낼 거리가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해 괴로움을 느낀다. 모든 것은 경험에서 오는 것이건만 나는 두려움의 등 뒤에 숨어 가며 그 흔한 여행 한 번 가보지 못했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가고 싶은 음식점이나 마시고 싶은 음료조차 마음대로 주문하지 못했다. 돈이 든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자칫 잘못 쓰면 걷잡을 수 없이 돈을 뿌려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래도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보는 것만은 참을 수 없이 좋아서 언제나 마음에 품은 타인만을 위해 지갑을 열 뿐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막연한 희망을 가슴 안에 품고 살아간다 해서 무엇이 바뀔까? 손을 놓고 있는 주제에 입만 산 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매일같이 불안에 떠는 글을 쓴다 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나의 우울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흙에 묻힌 풀뿌리만을 골라내고 있을 뿐이다. 여린 뿌리를 골라내고는 입안에 넣고 씹는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행동을 반복한다. 저것도 배고픔이라는 것을 느끼는 건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제대로 씹히지도 않은 풀뿌리가 구멍 안에 떨어졌고 얼마 가지 않아 도로 땅에 떨어져 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울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영양가 없는 행동을.
저녁 즈음에는 머릿속에서 또 새로운 소리를 들었다. 내가 어떤 결례를 범하고 어떤 상처를 입히더라도 결코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들었다. 어깨 언저리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손길을 느낄 수 있었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벌건 핏줄을 세운 눈이 등 뒤에 있다는 걸 알았다. 형태는 다르지만 내가 낳은 외로움의 목소리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애는 결국 나니까, 어떤 잘못을 해도 떠나지 않겠다는 일반적이지 않은 다짐을 할 수가 있었다.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왔다.
방학 중에는 여행을 가보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어디든, 무엇이든, 보고 듣고 느끼면서 글감을 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어서는 그 무엇도 새로울 것이 없었다. 같은 곳만 도는 것에 신물이 났고 그래서 가방을 챙겨 들어보고 싶었다. 많은 풍경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고 싶었다. 깨어나고 잠드는 것마저도 잊을 정도로 큰 행복을 찾길 원했다.
아니, 사실 행복을 찾는다기보다는 우울의 손이 더 이상 몸과 마음 어디에도 닿지 않길 바란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가능성 중독에서 벗어나 막연한 꿈의 형태를 빚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