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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 Nov 05. 2024

우리

우리.

우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포근한 이름이라 생각했다. 마음을 울리는 글을 써 내려가던 대학생.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커다란 나무 같았던 사람.


우리 씨와는 글을 썼었다. 한 단락 한 단락을 번갈아가며 썼었다.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 없는 글. 문자와 문장이 곱게 얽혀 하나의 부드러운 천을 짜내었다.


우리 씨는 기타를 좀 치다 말았다고 했었다. 그 말에 나는 집에서 뒹굴던 기타를 꺼내어 서툴게 연주했고 연습이 끝나면 우리 씨와 함께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씨는 뮤지컬을 좋아했다. 풋풋한 대학생의 향기가 거기에 있었다. 글을 쓰고 음악을 듣고 뮤지컬 관람을 즐기는 대학생이었다. 대학생이란 말에 감탄할 때마다 우리 씨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며 멋쩍게 웃곤 했지만 나는 몇 번이나 대단하다고 말의 방향을 바꾸었다.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너무나도 멋진 어른.



우리 씨는 뮤즈를 찾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

뮤즈가 무어냐고 물으면 좋아하는 사람의 애칭이라 했다. 뮤즈에게 마음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간절히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짚어내었다.


 그때만큼은 정말 어린아이와도 같이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웠다. 음, 저렇게 된다면 좋겠다.


나중에 찾아보니 뮤즈는 '영감을 주는 것'이라는 뜻이었다. 우리 씨에게 있어 사랑은 곧 영감을 주는 것이었나 보다.


우리 씨는 사랑을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침내 사랑하는 모습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었다.


"너도 언젠가 어른이 된다면 꼭 사랑해 봐. 사랑한다는 거, 너무 좋은 거야!"






그해 겨울―포근한 온기에 몸이 녹아가고 새해를 코앞에 남겨두었을 때, 우리 씨는 내게 손 편지를 쓰겠다 했었다.


좋아하는 노란색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둥근 글씨.

새해에 도착한 선물.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는 남아있지 않지만, 몇 문장은 아직도 기억 속에 둥지를 틀고 있다.


'너는 정말 정말 성숙해. 나보다 동생인데도 더 차분하고 성숙한 모습에 처음엔 많이 놀랐어.

너랑 얘기할 때마다 마음도 편해지고 많이 행복해. 또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네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성장할지, 난 정말 기대가 돼.

편지를 쓰면서 특별한 편지를 받아보고 싶다 했었던 네가 다시금 떠올랐어. 그 모습을 떠올리니 또 웃음이 나네. 부족하지만 이 편지가 너의 특별한 편지가 되어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 그리고 늘 많이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드문드문 떠오르는, 소중한 문장들.


아, 이제는 내가 우리 씨의 나이가 되었다.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우리 씨가, 여전히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와 함께하고 있길.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특별한 사랑을 나누며 자신만의 빛을 내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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