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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Aug 22. 2024

<희나리>와 <스토커>*

시대와 세대를 넘나드는 노랫말의 정서 

라디오PD를 준비했던 나는 꽤 오래 라디오를 들었고, 또래에 비해 음악 장르와 시대의 폭을 넓혀서 들어온 편이다. 강력한 메탈음악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장르는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며, 그래서 이번 글은 꼭 한 번 써보고 싶은 주제였다.


지금은 임영웅에 껌뻑 죽는 세대지만, 우리 부모님들이 한창이었던 시절에 흥했던 음악 장르는 아마 락(Rock)일 것이다. 소위 '밴드 사운드(Band Sound)', '그룹 사운드(Group Sound)'라는 표현이 더 잘 맞을 것 같다. 시원시원 내지르는 보컬과 강력한 일렉 기타 리프로 점철된 음악은 대중음악 흥행의 가늠자인 청소년층에 빠르게 젖어들어갔다.


신중현(과 엽전들)부터 시작된 계보는 산울림(1977), 송골매(1979), 들국화(1985), 부활(1985), 시나위(1986), 백두산(1986)까지 이어진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를 통틀어 당대를 주름잡은 밴드는 모두 락 밴드였으며, 가왕 조용필 역시,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지만 근간은 그룹 사운드(<위대한 탄생>)에 두고 있었다.


오늘 하려는 얘기는 이 얘기는 아니고;; 주제는 같은데 표현방식이 달랐던 노래 두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긴 서론은 구창모라는 보컬리스트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구창모, 내가 좋아하는 랩스타의 본명도 구창모이고, 한때 우리나라 야구계를 이끌어 갈 것으로 주목받았던 좌완 선발투수의 이름도 구창모다. 구창모라는 이름에는 어쩌면 슈퍼스타의 기운이 가득한 모양이다.


1980년대 대중음악의 흐름이 락에서 발라드나 트로트로 넘어가면서 많은 밴드의 보컬이 솔로로 전향하게 된다.


<희나리>는 솔로로 전향한 구창모 1집(1985)의 수록곡으로 그 해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중 하나였다. 그야말로 메가힛트쏭이다.



사랑함에 세심했던 나의 마음이 그렇게도 그대에겐 구속이었소
믿지못해 그런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헤어지는 이유가 됐소

내게 무슨 마음에 병이 있는것처럼 느낄 만큼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그대 외려 나를 점점 믿지 못하고 왠지 나를 그런 쪽에 가깝게 했소
나의 잘못이라면 그대를 위한 내 마음의 전부를 준 것뿐인데

죄인처럼 그대 곁에 가지 못하고 남이 아닌 남이 되어 버린 지금에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나의 마음은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 같소


이 노래가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1. 우선 노래가 좋고2. 노랫말이 무척이나 은유적이며, 3. 노랫말이 무척이나 무섭기...때문이다.


작중 화자는 아마 누군가를 짝사랑했거나,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심함으로 포장한 마음은 사실상 스토킹이며, 끝내 의심병까지 들고야 만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그런 쪽'에 가깝게 되어버린 사람은 결국 결별 혹은 접근금지 통보를 받고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가 한창 유행하던 시대는 


좋아하면 남자가 여자를 좀 따라다닐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만연한 시대였고, 모든 비난은 받아주지 않는 상대방(대개는 여성)의 몫이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스토킹을 전혀 범죄의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희나리>의 노랫말만 하더라도 '내가 너 좋아한 것 말고 무슨 잘못을 했는데'의 정서가 기반에 깔려있다. 요즘 기준으로 이 사람은 '죄인처럼'이 아니라 정말 '죄인'인데도 말이다.


물론 미성과 마성의 꽃미남, 구창모 선생님이 이런 노래를 불렀기에 문제없었는지도 모르겠다만 어쨌든 이런 노랫말로 가수활동을 할 수 있었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당시를 생각하면 시대유감이자 세대유감이다. 이 노래가 남자들로부터는 많은 공감을 얻었을 것이며, 화자가 구창모라는 이유만으로 여자들로부터는 많은 연민을 얻지 않았을까.






한 세대라 일컫는 30년이 지나, 비슷한 주제로 인기를 얻은 노래가 있다. 10cm의 <스토커>(2014)다.



나도 알아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난 못났고 별 볼일 없지
그 애가 나를 부끄러워한다는 게
슬프지만 내가 뭐라고

빛나는 누군갈 좋아하는 일에
기준이 있는 거라면
이해할 수 없지만 할 말 없는 걸
난 안경 쓴 샌님이니까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이렇게 원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바라만 보는데도
내가 그렇게 불편할까요 내가 나쁜 걸까요
아마도 내일도 그 애는 뒷모습만


이 노래가 정말 스토커 이야기라면 매장당했을 것이다. 작중 화자는 스토커가 전혀 아니다. 그냥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주제를 알며,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의 소심한 항변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에 기준이 어딨냐'는 정도다.


10cm가 남자들에게도 사랑받는 이유는 보통남자들의 공감대를 저격하는 노랫말 때문이다. 때로는 허세로, 때로는 능글맞게, 때로는 찌질하게 표현된 가사들은 단 한 번도 이성 간 혹은 연인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져본 적 없는 남자들의 눈물겨운 실화에 근간한다.


이 노래 역시 짝사랑의 아픔을 찌질하고, 궁상맞게 표현한 노래일 뿐이다. 앞선 <희나리>와 달리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공감을 얻을 수밖에 없는 노래다. 멜로디와 가사와 보컬의 삼합이 딱 들어맞기에, 10년 된 노래지만 10cm의 대표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굳이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라면, 권정열은 이 곡을 발매하기 5개월 전 옥상달빛의 김윤주와 결혼을 했다는 사실 정도?)


<스토커>의 이 남자가 1980년으로 건너갔다면 어땠을까. 아마 "에혀, 남자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고백 한 번 못해보고"라며 조롱받지 않았을까. 그때는 '내가 널 좋아한 것 말고 무슨 잘못을 했냐'고 따져 묻는 남자가 더욱 멋있게 보이던 시대였을 테니 말이다. (믿기 어렵지만 칠순을 앞둔 우리 엄마도 싱글일 때 스토킹을 당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스토킹'인 줄도 몰랐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보통남자의 기준이 바뀌었다.






하지만 무슨 노래를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희나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다. 따라 부르기는 좀 더 쉽고, 노랫말이 아름답(다 여겨지)기 때문이다. 요즘엔 더욱 '내 장점이 뭔지 알아? 바로 솔직한 거야!'라고 대놓고 알아듣게 말해줄수록 좀 멋없게 느껴지는 꼰대라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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