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점 맞는 게 나을 걸?
학창 시절, 공부를 대단히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학업 성적과 관계없이 내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공부는 왜 하는가
자문(自問)하지 않고, ‘해야 되나 보다’ 싶어서 한 것이다. 진짜 똑똑한 친구들은 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것인지 이유와 목적을 찾았을 것이고, 그 답을 얻은 후에야 공부를 하든 다른 길을 찾든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금 나와 같은 나이에 나보다 훨씬 큰 성공을 거뒀을 것이라 장담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묻지만 않았지, 공부는 참 하기 싫었다. 거, 시험 한 두 문제 좀 틀릴 수도 있지 정말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엄마 앞에서 나는 늘 모자란 아이였다. 그런 상황에서 반항심보다 향상심을 갖게 된 것은 참 다행이다. 그저 잘했다는 한 마디 칭찬을 받기 위해 틀리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이윽고 수능날이 다가왔다.
수시전형을 넣어둔 상태였지만 합격의 전제조건이 최소한의 수능등급 커트라인을 넘어야만 했기에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반면, 나보다 공부를 잘한 한 친구는 이미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을 한 상황이었다. 당시에도, 지금도 나는 그 친구가 수능 응시를 하지 않는 것이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응시를 하고 낮은 점수를 받는 것이 도움되는지 알지 못하겠다. 다만, 잊을 수 없는 한 마디가 생각났다.
빵점 맞아야겠다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빵점을 맞는 것도 그 친구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사람만이 0점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빵점 맞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공부를 못했거나 안 한 친구라면 오히려 절대 빵점을 맞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해서 풀든, 한 번호로 OMR 카드에 기둥을 세우든 확률적으로 몇 문제는 맞힐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비로소 0점을 맞을 수 있는 역설을 나는 보았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관성적으로 정답을 찍으려는 습성 때문에 0점을 맞지 못할 수도 있으니 더욱 신중해야(?) 한다)
수능이 끝나고, 나는 그 친구가 실제로 수능 0점을 맞았는지, 원래 실력대로 보았는지 결과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100점을 맞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0점을 맞을 수 있다는 깨달음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뚜렷이 각인돼 있다.
물론 깨달음이 거기서 그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수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삶은 결코 객관식 문항을 주고 선택하라는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언제나 주관식이었고, 논술형이었다. 다른 선택이 나은 선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삶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단순히 정답 같아 보이는 삶이 지루하고 재미없어 보여서 무작정 다른 길을 찍었다면 잘해야 20점, 30점밖에 못 받지 않았을까?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이왕 주목이라도 받으려면 0점이 낫지 않겠냐는 허무맹랑한 생각도 든다 ㅋㅋ
다른 길을 선택하고, 큰 대가를 얻은 삶은 결코 요행이 아니다. 빽빽하고 두꺼운 오답노트가 정답을 보장하듯, 정답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공부하고 노력한 결과다. 그래서 그들은 정답을 알지만 정답이 아닌, 자신만의 해답을 써내려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약에 우리 아들이 시험에서 100점 대신 0점을 받아온다면,
와 너 대박 똑똑하구나
애매하게 30점 맞느니 이게 낫다
너무 잘했어!!!
칭찬 세례를 퍼부어줄 작정이다. (이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