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보이는 얘기 좀 하지 말자고요!
일은 몰리는 사람에게만 몰리는 법이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소위 에이스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은 어떤 일을 맡겨도 다 잘하기 때문에, 그만큼 과부하가 걸리기 마련이다. 상급자 입장에서야 늘 공평한 업무분장을 머리로는 되뇌어도, 막상 긴하고 중한 순간에는 쓸놈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면 한 사람이 맡아야 되는 업무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럴 때 달랜답시고 한다는 이런 얘기, 많이 들어보셨을 것이다.
박 대리! 이번에 새로 맡는 그거,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어.
그냥 0.2M/M 정도만 투입한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티만 내줘
M/M: Man/Month로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업무량.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 등 입찰을 통한 사업 수주 시 제안서에서 해당 프로젝트에 얼마의 인력을 투입할 수 있을지 거론할 때 쓰인다. 개발업무 같이 일을 정량화할 수 있는 IT업계에서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내가 개발자나 개발 기획자는 아니지만, 코딩 업무의 양과 시간을 제 아무리 정량화할 수 있다고 해도 소수점 단위로 나눠서 정확하게 그만큼의 일만 할 수 있을까. 하물며 정량화할 수 없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저렇게 속 편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Man/Month라는 개념 자체가 비용 책정을 위해 불가피하게 만들어진 개념인데 멋모르는 사람들이 함부로 갖다 쓰고 있다.
일을 시키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하 직원의 M/M가 언제나 1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렇기에 평소 바빠봤자 0.6~0.7M/M인 직원에게 0.2M/M 업무 하나 추가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다.
M/M의 정의는 한 사람이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업무량일 뿐이다.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평균치'인지, '최대치'인지 알 길이 없다. 그저 한 사람이 한 달에 할 수 있는 일의 양을 주관적으로 객관화한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일을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마도 언제나 M/M는 1이지 않을까 ㅋㅋㅋ 이미 한 달에 할 수 있는 업무량은 언제나 1M/M인데 여기에 0.2M/M를 추가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일을 0.XM/M씩 받다 보면 실화로 M/M가 1을 넘어서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기존 일의 퀄리티도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야근으로 사람을 아무리 갈아 넣어도, 단순한 시간의 합이 퀄리티의 합과 절대로 같을 리 없다. 그래서 주장한다, 우리의 Man/Month를 소수점 단위로 쪼개면 쪼갤수록 그 일의 총합은 절대 1M/M가 될 수 없다고.
장담한다. 우리의 일은
0.2+0.2+0.3+0.3<1
늘 이런 식일 거다. 사실 심플한 이치다. 원래 내가 맡은 일이 세 가지였다면, 한 가지 일을 더 맡았을 때 그냥 일이 네 개가 된 것이다. 어떻게든 총합을 1M/M로 만들고자 이미 하던 일의 M/M를 조정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세 가지 일을 잘했으니 한 가지 더 부여한 것인데, 그렇게 되면 네 가지 일을 모두 망치고, 싸(4)가지만 없어질지도 모른다.
누군가 M/M를 핑계로 부담스럽게 일을 넘기려고 한다면, 이렇게 얘기해 보자.
헐~ 북극곰도 아니고 사람을 어떻게 찢어요?!
슬프게도 키보드 워리어일 뿐, 나 역시 이렇다 할 저항 한 마디 못하고 "넵" 봇이 되고 말겠지만. 어차피 너도 나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좀 더 담백하게 말할 수 없을까? 사람은 없고, 그 와중에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 이 일도 좀 맡아줄 수 없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