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소 Jan 11. 2024

두달 차, 대회에 나가다.

예선꼴찌, 16강, 8강. 

에페 10개월, 사브르 2개월 차,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에페를 하면서 대회를 나가보라는 권유는 여러 번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 결국 나가게 된 첫 대회였습니다.

미루던 이유는 실력의 부족, 부족한 시간, 장비의 부재 등등, 여러 이유를 만들어서 도망다녔습니다. 클럽 내에서도 항상 지는 실력인데, 이 실력으로 굳이 나가서 확인사살을 하기엔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사브르로 전향한 후, 경기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나보다 오래한, 신체능력이 훨씬 우월한 사람을 내가 비등비등하게 지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에 와서 알았지만, 상대는 나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착각에 빠져있었습니다. 스스로 잘하는 줄 알고 그렇게 대회에 신청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하라는 팡트 연습은 안하고, 복근운동, 유산소 운동을 하면서 말이죠. 


덕분에 다이어트에는 성공했습니다. 2개월만에 5kg을 감량하였고, 도복 핏도 예쁘게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급격하게 빠진 살은 프로틴 부작용으로 인해 붓기가 생겨 다시 찌기 시작했고, 의지가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체력도 쉽게 고갈되고, 경기 운영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대회 당일, 새벽 5시에 출발하여 7시에 도착한 경기장. 심장은 미친듯이 뛰고, 정신은 멍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에 코치님과 함께 장비검사, 간단한 터치 연습을 하고 나니 어느새 심판이 제 이름을 호명했습니다. 

손이 덜덜 떨리고, 와이어를 연결하면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엔 오직 '나간다' 는 생각 뿐. 저 멀리서 같이 운동하는 언니와, 에페 코치님, 원장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더 떨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경기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살면서 처음 만나본 사브르 왼손잡이에게 똑같은 곳만 똑같이 때리고, 똑같이 막히는 정말 웃기고도 슬픈 상황이 5점 동안 연출되었습니다 (예선전은 개인 5점 경기로 운영됩니다). 

전 아직 그 경기 영상을 가지고 있긴합니다만, 최근에 한 번 열어본 후 다신 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느린 나의 몸, 어디로 갈 지 뻔히 보이는 나의 팔, 긴장한 모습이 너무 잘 보이는 나의 움직임까지. 부끄러워서 다신 꺼내보고 싶지 않은 저의 첫 대회였습니다. 

예선전이 끝난 후, 다른 선수들이 경기 뛰는 모습을 한참이나 구경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쉬워서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도복도 급하게 직구로 구하고, 회사 휴무를 바꾸고, 보강운동도 해왔는데 결과는 예선 꼴찌였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그 후, 더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다행히 그 다음 대회에서는 예선 탈락은 피했고, 7위, 그 다음 경기도 7위의 성적을 받고 2023년을 마무리 했습니다. 

아직 많이 아쉬운 성적입니다. 더 잘하고 싶었고, 응원해준 분들께도 말하기 부끄러운 성적입니다. 그래도, 예선에서 아무것도 못했던 첫 대회의 제 모습보다는 많이 발전했다고 스스로 느낍니다. 

꾸준히, 열심히 전진한다면 언젠가는 더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날이 언젠가는 꼭 오겠죠. 




작가의 이전글 제과점의 일상 - 여기가 뭐하는 곳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