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뜨는 SNS에서 ‘주재원 와이프’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넉넉한 생활, 고급주거지, 가사도우미가 연상되는 이미지로 굳어진 경우가 많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주재원 와이프’가 아니었다.
남편은 장기 파견의 형태로 이곳에 오게 되었고, 일반적인 주재원에게 제공되는 기본적인 혜택이 우리에겐 없었다. 집은 제공되었지만 학비 지원은 거의 없었고, 짐을 실을 컨테이너조차 없어 다 버리고 와야 했다.
만약 그때 그런 사정을 더 일찍 알았다면, 과연 우리는 이곳 탄자니아에 오게 되었을까? 사실 남편의 탄자니아 파견 이전에 유럽 이주를 계획하던 나였다.
유럽이 아니라도 어디든 나갈 수밖에 없도록 나는 ‘안정적인 것’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탄자니아에서의 아이들 학사 일정을 기준으로 나는 다니던 회사를 정리했고, 서울의 집도 빠르게 비웠다. 이미 되돌리기 어려운 시점이었다.
비행기 수하물 규정에 맞춘 달랑 가방 다섯 개. 그것이 우리가 가져올 수 있었던 전부였다.
처음 살게 된 곳은 남편 회사 근처의 호텔. 정확히 말하면, 호텔 안의 아파트먼트형 숙소였다. 작지만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탄자니아의 구 수도인 다레살람(Dae es Salaam)은
서울의 한남동처럼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마사키(Masaki)’라는 동네가 있다. 좋은 집들이 있고, 치안이 좋아 대부분의 주재원들이 그곳에 모여 산다. 그만큼 생활비도, 월세도… 높다. 특히 월세만큼은 유럽물가이다.
처음엔 당연히 마사키로 이사하는 것도 고려했다. 하지만 짐이 거의 없어 새롭게 마련해야 할 물건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들 학교와의 거리도 도보로 다닐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도 아이들도 결국 차가 필요했다.
나의 로망이었던 끝내주는 주방을 가질 수도 아이들에게 각자의 방을 줄 수도 없었지만, 우리는 일단 호텔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남편은 회사까지 도보로 2~3분 거리. “한 사람이라도 편하면 되지”라는 말로 그렇게 시작된 호텔 생활.
그렇게 2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다. 처음엔 짧은 체류일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에서의 일상은 그렇게 오래도록 이어졌다.
주재원 가족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머무는 동안, 엄마의 눈으로 바라본 국제학교와 현지 생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