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인 프랑스의 출산율과 그 뒤의 현실적인 이야기 (1)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하루 이틀에 걸쳐 생긴 게 아니건만, 2020년대에 들어 그 심각성이 극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듯하다.
나 또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국가 소멸', '흑사병 수준의 위험' 등의 자극적인 문구들에 충격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고,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프랑스에 살고 있으니 양극단의 상황을 비교해 보고 싶은 연구자의 기질도 발현된다.
무엇보다도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나라는 상상만으로도 서글프다.
6월 한 달만 해도 내 주변에 두 가족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둘 다 셋째이다.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에는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프랑스의 사례가 한국에 전해줄 수 있는 메시지가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장치와 육아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자녀수에 따른 세금 감면 혜택, 양육비용 절감 및 지원금
프랑스에서, 특히 자녀가 있을 경우, 가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코티앙 파밀리알(quotien familial), '가족계수'이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가족계수는 부부의 총 월급 실수령액을 부양가족 수에 따라 결정되는 변수(n)로 나눈 금액이다.
여기서 n을 산정하는 방법은, 우선 부부는 1+1=2이다.
여기에 두 번째 자녀까지는 한 명당 0.5로 계산되기 때문에, 자녀가 둘인 우리 집의 경우 아빠 1+엄마 1+첫째 0.5+둘째 0.5으로 n=3이다.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 셋째부터는 0.5가 아닌 1로 계산이 된다.
그래서 자녀가 셋인 가족의 경우 아빠 1+엄마 1+첫째 0.5+둘째 0.5+셋째 1, n=4가 된다.
따라서 똑같이 총월수입이 6000유로인 부부의 경우, 가족계수를 계산해 보면,
자녀가 없으면 6000유로/2 = 3000유로,
자녀가 하나라면 6000유로/2.5= 2400유로,
자녀가 둘이라면 6000유로/3 = 2000유로,
자녀가 넷이라면 6000유로/5 = 1200유로가 되는 것이다.
이 가족계수는 우선 소득세 책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족 구성원 수가 늘어날수록 과세 가능한 가족계수 금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매년 내야 하는 소득세 또한 크게 줄어든다.
아이들의 모든 보육과 학교 관련 비용 또한 이 가족계수에 의해 결정된다.
파리의 공교육 기준으로 크레쉬(보육시설), 학교 급식, 방과 후 활동, 방학학교, 공립음악원(conservatorie) 등등의 모든 "요금표"는 가족계수에 따라 1-10단계로 나뉘어 있다.
다음은 파리의 학교 급식 요금표이다.
앞의 예시에서 자녀가 둘이고 가족계수가 2000유로인 경우 7단계로 책정되어 자녀 당 한 끼에 4.89유로를,
자녀가 넷이고 가족계수가 1200유로인 경우 5단계의 요금을 내기 때문에 한 끼에 3.62유로를 내는 것이다.
이밖에도 대중교통, 기차표, 여가활동 등에 '다인가족요금' (tarif famille nombreuse )이 적용되는데, 기차표의 경우 자녀가 셋이면 30%, 넷이면 40%, 다섯이면 5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묻고 따지지 않고' 나오는 지원금도 있다.
소득에 상관없이 임신 7개월 차에 2024년 기준 1066.30유로 (약 160만 원)의 "출생상여금" (La prime à la naissance)이 나온다.
"영유아 환영 혜택" (PAJE: La Prestation d’Accueil du Jeune Enfant) 지원금으로 소득 수준과 자녀수에 따라 아이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매달 한 명당 191.31유로 (약 28만 원) 또는 96.65유로 (약 14만 원)가 입금된다.
아이가 셋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돈 생각하고 셋째를 낳은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거 따져보니 셋째는 거의 공짜로 키우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네는 왜 셋째 안 낳아?"라고 물으니 순간 '어? 나도 하나 더 낳아야 하는 건가?'하고 깜빡 넘어갈 뻔했다.
2. 보육 인프라
가족계획에 있어 경제적 요인은 분명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무리 셋째는 공짜로, 넷째부터는 돈을 벌며 키운다고 해도, 부모가 육아에 쏟는 시간적, 정신적 자원을 생각하면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프랑스에서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촘촘하게 짜인 보육 인프라이다.
빠르면 3개월부터 크레쉬(영유아 보육시설)에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 반까지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
공립 크레쉬의 경우 경쟁이 치열하지만 자녀수가 많으면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셋째부터는 어렵지 않게 자리를 받을 수 있다.
보육도우미인 누누(nounou)를 고용하는 가족들도 많다.
누누는 한 번에 최대 네 명의 아이까지 돌볼 수 있기 때문에, 보통 두 세 가족이 한 명의 누누를 "공유"하고 한 집씩 돌아가면서 장소를 제공한다.
물론 크레쉬, 누누 비용 모두 소득과 자녀수에 따라 정부에서 차등 지원된다.
아이가 만 3세가 되면 의무공공교육 대상이 되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이는 유럽에서도 이례적인 경우이고, 한국, 미국, 캐나다, 스웨덴 등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내 친구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드물게 크레쉬나 누누 없이 아이를 키우던 부모들도 아이가 세 살이 되면 학교를 가게 되면서 일상의 큰 전환점을 맞는다.
오전 8시 20분에 학교가 시작하고, 오후 4시 30분 - 6시 30분 사이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되니, 프랑스 부모들 사이에 '이러나저러나 3년만 키우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보육 인프라는 출산과 육아가 일하는 여성의 커리어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기능을 한다.
아이를 맡길 크레쉬와 누누가 있으니, 엄마들은 의무 육아휴직 기간인 16주 (셋째부터는 26주)가 끝나면 곧장 일터로 복귀할 수 있다.
물론 원하면 총 3년까지 (셋째부터는 총 6년) 휴직을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주변 엄마들을 보면 늦어도 1년 내에는 복직을 하는 추세이다.
반대로 유연한 직장문화는 보육 인프라를 온전히 활용하는 데에 필수조건으로 작용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9시까지 출근이었는데 지문으로 출근계 도장을 찍어야 했다.
지각을 하면 근태 기록에 반영이 되니 가끔 아침 지하철에 문제라도 생기면 쫄리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면 6시 퇴근 시간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못해도 6시 15-20분까지는 예의상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고, 예고 없는 야근도 잦았다.
반면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근처 카페에서 모여 20-30분 커피 마시며 수다 떨고 출근하는 여유가 있다.
그리고 저녁 6시-6시 반까지는 대부분의 부모가 직접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학교가 없거나 오전 수업만 있는 수요일에 맞춰 부모 중 한 명이 주 4일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다.
수요일에는 점심시간 전에 아이를 픽업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스포츠나 음악활동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셔틀을 한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고들 하지만, 만약 내가 한국에서와 같은 직장생활 중이었다면 제아무리 아이들이 학교를 세 살부터 다닌대도 아이를 제시간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것부터가 어려웠을 것이라 종종 생각한다.
3. 부모 중심의 육아 문화
프랑스의 높은 출산율을 견인하는 데에 제도적 혜택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부모를 중심에 둔 육아문화이다.
내가 아이를 갖기 전 보고 들은 이야기들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세상의 중심이 아이로 옮겨와 보고 듣고 먹고 생각하는 것 모두 통째로 바뀌어 버리는 전개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임신 때부터 뭔가 조금 달랐다.
의사는 특별히 해라, 하지 말라 하는 것이 없고 그저 “엄마가 좋은 대로 해라"라는 말 뿐이었다.
모유수유 또한 선택사항이었고, 나는 모유수유를 원했기에 다양한 도움을 받았지만, 주변에 대부분의 엄마들은 출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유를 끊는 약을 처방받아먹었다.
이유식을 시작할 때도 소아과 의사는 슈퍼에서 파는 이유식을 추천해 주었다.
이유식이 끝나면 아이는 부모가 먹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
프랑스의 부모들, 특히 엄마들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나의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고 거기에 아이 하나를 태우는 느낌이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만국공통이지만, 프랑스 부모들은 본인이 편안하고 행복한 게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 굳게 믿는 듯하다.
내 주변의 프랑스 부모들은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철저하게 사수한다.
평일 밤에 춤을 배우고, 주말에 교외로 산악자전거를 타러 나가고, 휴일에 2박 3일 시간을 내 프리다이빙 여행을 다녀온다.
배우자와 돌아가면서 각자의 자유시간을 갖기 때문에 서로 불평은 없다.
부부만의 시간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정기적으로 부부만의 저녁식사나 여행을 계획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데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밸런타인데이에 식당 예약은 깜빡해도 베이비시터 예약은 미리 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우리 부부는 프랑스에 아무런 가족도 없고, 아직까지 베이비시터도 고용해 본 적도 없다.
나만 해도 내 아이들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에 심리적 장벽이 높은 탓이다.
갈급한 일도 아닌데 베이비시터를 쓰는 게 아직까지도 어색하고 무책임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런 우리의 사정을 아는 주변 프랑스 친구들은 늘 나무라듯 말한다.
엄마, 아빠 둘이 보내는 시간이 아이랑 놀아주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며 자신들이 아이들을 봐줄 테니 둘이서 어디라도 다녀오라는 것이다.
(대신 우리 부부는 둘째 주, 넷째 주 화요일에 점심을 함께 한다. 절대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무조건 비워두는 걸 규칙으로 정했다.)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듯 프랑스의 성공적인 출산장려 정책에도 분명 빈틈은 있다.
다음 글에서는 높은 출산율 뒤에 가려진,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