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관한 프랑스의 "3-6-9-12 규칙"
프랑스 아이들은 몇 살 때 첫 휴대폰을 갖게 될까?
답부터 말하자면 2020년 조사 기준 만 9세 9개월이다.
주변 가족들을 보면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인 10-11세가 되었을 때 휴대폰을 사주게 된다고들 한다.
스무 살 때 처음으로 통화와 문자만 되던 노키아폰을 가졌던 나와 비교하기엔 무리인 걸 알면서도, 열 살짜리 아이가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여전히 어딘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게다가 나의 첫째가 곧 여덟 살이 되지 않는가.
큰 전투를 앞둔 사람처럼 때로는 비장하고 때로는 조급하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동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관해 프랑스에서 가장 널리 통용되는 가이드라인으로 "3-6-9-12 규칙"이 있다.
프랑스의 유명 정신분석학자인 세르지 티세롱 (Serge Tisseron)이 2008년에 창안한 이 규칙에는 연령별 금지사항이 있다.
3세 이전, 모든 화면 금지
6세 이전, 게임기 사용 금지
9세 이전, 모든 인터넷 사용 금지
12세 이전, 혼자 인터넷 사용 금지
이후 티세롱 박사는 "3-6-9-12 규칙"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내용을 2013년 책으로 출간했다.
이는 프랑스 소아청소년 학회의 승인을 받아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프랑스 정부의 공식자료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나는 이 "3-6-9-12 규칙"을 지난해 파리 시청에서 열린 행사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파리 시청 내 모든 부서들에서 직원들이 나와 각자의 주요 업무를 소개하고 시민들의 요청사항을 듣고 질문에도 답하는 행사였다.
아동 보육과 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부스 앞을 지나갈 때 아래의 전단이 눈에 띄었다.
"Apprivoiser"라는 단어를 몰라 얼른 찾아보니 "길들이다"라는 뜻이었다.
화면을 길들인다니.
아이가 마치 반려견처럼 화면을 길들여 함께 살아가는 그림이 그려졌다.
육아에서 '화면'이란 TV와 휴대폰 앞에서 넋을 놓고 빠져있는 아이의 모습과도 같은데, 정말 우리 아이가 화면을 길들일 수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챙긴 안내서를 집에 와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3세 이전: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것이 아이의 발달을 돕는 최고의 방법"이다.
아이가 보지 않더라도 텔레비전을 켜놓은 것만으로도 아이의 학습에 해가 된다.
3-6세: 화면 시청에 대한 확실한 규칙을 부모가 정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는 침실이 아닌 거실에만 있어야 하고, 식사 중이나 자기 전에는 금지한다.
또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6-9세: 아이가 디지털 기기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부모가 게임기 설정을 관리한다.
개인정보와 이미지 보호에 관한 권리 및 다음의 "인터넷 3원칙"에 대해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1) 우리가 인터넷에 올리는 모든 것은 공공에 공개될 수 있다.
2) 우리가 인터넷에 올리는 모든 것은 영원히 남게 된다.
3) 우리가 인터넷에서 찾는 모든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9-12세: 아이가 휴대폰을 언제 가지게 될 것인지는 부모가 결정한다.
아이가 혼자서 인터넷 사용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부모와 함께 해야 하는지 부모가 결정한다.
아이와 함께 아이가 디지털 기기 사용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한다.
12세 이후: 아이는 혼자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부모와 함께 인터넷 사용시간을 정한다.
부모는 아이와 함께 다운로드, 표절, 포르노그라피, 희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밤에는 와이파이와 휴대폰을 끈다.
부모는 SNS 상에서 아이의 "친구"가 되지 않는다.
"3-6-9-12 규칙"의 핵심의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해 부모가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노출되기 이전에 미리 이러한 기기와 기술 사용의 위험성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4세, 7세가 된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3-6-9-12 규칙"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일단은 안심이 되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주 3-4회, 내가 저녁준비를 하는 동안 부엌에 있는 TV로 40분 동안 만화를 본다.
엄마, 아빠 휴대폰을 만지는 건 절대 금지이고, 주말에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등을 배우는 용도로 엄마, 아빠의 허락을 받고 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별 저항 없이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는 시스템이지만, '과연 언제까지?'라는 질문을 피할 수는 없다.
지난 주말, 같은 건물에 사는 아이 있는 가족들 모임이 있었다.
다섯 가족 아이들 중 가장 큰 열한 살 딸을 키우는 집 아빠가 이야기한다.
"지난주에 우리 첫째 생일파티를 했는데, 현관문에 바구니를 놓고 애들 휴대폰을 다 넣어두게 했거든. 딸 전화기 알람이 계속 울리는데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서 참느라 고생했어."
부모들은 너도나도 앞으로 닥칠 현실에 대해 고민을 토로한다.
"나는 18살 때까지 휴대폰 안 사주고 싶은데!"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웃음을 터뜨린다.
"그거 불가능할걸!"
나도 안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하지만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라는 양날의 검을 쥐어주기 전에, 이것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 나의 의무이다.
아이가 화면을 잘 길들이는 지혜로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함께 찬찬히 준비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