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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필 Apr 04. 2024

아이들 코 풀어 주는데 콧구멍 당 1유로?

프랑스 담임선생님의 유쾌하고도 뼈 있는 "4월의 물고기" 메시지


부활절 휴일이었던 4월 1일, 둘째 담임선생님께서 학부모들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셨다. 

프랑스 교육부에서 내려온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 하시니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다.


본 문서는 교사들의 가치를 다시금 인정하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작성되었으며, 

오늘부터 교직원의 임금 인상을 위한 첫 번째 조치가 시행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이에 따라 교직원이 무료로 제공하던 일부 서비스는 유료로 변경됩니다. 

아래에서 해당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십시오.


신발 묶기 (한 켤레당) : 1유로 (젖은 신발끈 추가요금 (한 개당) 0.50유로)

의상 착용 지원 (재킷 닫기 등): 1유로 

머리 다듬기: 1.50유로 (긴 머리 추가요금 - 어깨 아래) 

안경 청소 (한 렌즈당) : 1유로 

코 닦기 (한 콧구멍당) : 1유로 

토 : 식사에 따라 가격이 달라집니다...


매 월말에 아이의 가방을 통해 직접 청구서를 수령하게 됩니다.


세 번 정독하고 나서야 메시지 끝에 일렬로 늘어선 물고기 이모티콘들이 보였다.

프랑스에서는 4월 1일 만우절을 "Poisson d'avril", 4월의 물고기라고 부른다.


4월의 물고기가 되어 낚였다는 재미도 잠시, 메시지를 읽으며 스쳐 지나간 많은 생각들을 다시 붙잡아 보게 된다.


프랑스도 교사 처우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이고, 교사 파업도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르 몽드 (Le Monde)에 따르면 15년 차 이상 경력의 프랑스 교사들은 유럽 연합 평균을 밑도는 약 4만 불 연봉을 받고 있고, 이는 독일 교사 연봉의 반에도 한참 못 미친다.

반면 교사의 업무시간은 주변 유럽 국가 중 최고치를 기록해, 프랑스 교육부에 따르면 교사 중 절반은 주 43시간 이상을 일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기억하자, 여기는 프랑스 - 법적으로 주 35시간 근무시간을 보장하고 있다.)


그나마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정교사들은 사정이 나은 걸까.

선생님이 메시지에 나열한 일들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건 보통 앗셈 (ATSEM: agent territorial spécialisé des écoles maternelles)이라고 불리는 보조교사들이다.

담임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동안 다음 활동을 위해 책상을 세팅하거나,

미술 시간이 끝난 후 책상을 닦고, 의자를 다 책상에 올린 후 바닥을 청소하고,

아이들이 바지에 용변 실수를 하거나 토를 했을 때 닦이고 옷을 갈아입히는 일,

모두 앗셈 선생님들의 업무이다.

시에서 고용된 인력이기 때문에 임금과 복지 체계도 다르다.

정교사 대비 6-70%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지난 40년 동안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한 교직원의 임금은 실질적으로 하락했고,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들어 프랑스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압박과 공격적 언행, 늘어나는 행정 업무, 학습 장애 학생의 증가로 인한 어려움 등을 호소하고 있다.

교사 직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악화되면서 이는 신규 교사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2022년 신규 교사 채용에서 4000여 이상의 공석이 발생하자, 마크롱 대통령은 부랴부랴 신규 교사에 특별 수당을 주는 등의 방안을 발표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선생님의 익살스런 농담 뒤에는 교사들이 하는 일들을 당연히 여기지 말고 그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호소가 숨어있었다.

더불어 4세 아이들도 신발끈 묶기, 재킷 입기, 코 풀기 등은 스스로 할 수 있음을 믿고 맡겨달라는 선생님의 지혜도 넌지시 전해졌다.


"월정액 할인도 되나요?"라고 한 부모의 질문에,"네고 가능합니다"라는 답변을 남기신 선생님.

이렇게 유쾌하고 현명하신 선생님이 오늘도 내 아이의 하루를 풍요롭게 채워주고 계심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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