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였다. 글짓기 대회였는지, 그림 그리기 대회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곳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대회였는지, 무슨 상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상을 받았다’는 기억만은 또렷하다. 그것은 아마 그 상이 내게 대단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어떤 대회였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그 일을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이유는, 시상식 이후에 본 한 장면 때문이다. 같은 학교 친구도 그 대회에 참여했는데, 시상식이 끝난 뒤 상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머니께 혼나고 있었다. 내가 바로 옆에 있었지만, 그 어머니는 화를 멈추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 아이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 생각해도 설명하기 어렵다. 친구가 혼나는데, 이상하게도 나까지 억울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상을 받지 못한 게 그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어쩌면 아이를 충분히 준비시켜주지 못한 어머니의 책임일 수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장면은 이후로 내가 자라오며 수없이 보게 될 비슷한 장면들의 시작이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기대에 못 미쳤다고, 부모님의 실망이 두려워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들의 모습. 혹은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아이를 나무라는 부모의 모습. 그런 순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까지 숨이 막히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들은 내 부모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자라는 내내 나는 결과를 강요하는 부모와, 그 기대를 만족시킬 수 없어 위축된 아이의 모습을 너무 자주 봤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없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었다. 남들에게 자식을 자랑하고 싶은 욕망이었는지, 자신의 아쉬운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는 욕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아이의 관계와 행복이 희생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 그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나가 공부하고 직장을 잡으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돌이켜보면 대단한 성취는 아니었지만,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열심히 노력해 삶을 개척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온 걸까? 정말 잘 살아온 걸까?”
긴 고민 끝에,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그동안 최선을 다해 달려온 이유는 생존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가 선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느냐였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준에서 찾고 있었다.
그 순간, 어릴 적 상을 받지 못해 혼나던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의 실망을 두려워하던 아이들, 성적 때문에 아이를 몰아세우던 부모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곧 그 아이였고, 그 부모의 시선을 내 안에 품은 채 나 자신을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자각했을 때 느낀 후회와 절망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세워온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왜 그 누구도 나에게, 남의 기대가 아니라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이 마음을 뒤덮었다. 물론, 누군가는 분명 그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경쟁과 생존에만 매몰되어 그 말을 들을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때 받은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은 다짐한다.
그날 상을 받지 못한 아이를 나무라던 어머니처럼 살지 말자.
상을 받지 못해 고개 숙였던 아이처럼 나 자신을 탓하며 살지도 말자.
되돌아보면, 남는 것은 언제 어디서 어떤 상을 받았는가가 아니다.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힌다. 정말 오래 남는 것은 내가 진심으로 노력했던 순간, 잘 모르면서도 끝까지 헤매며 길을 찾아 나섰던 그때의 기억들이다.
오랫동안 잘못된 기준으로 살아온 내 삶을 반성하며, 동시에 그 덕분에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된 지금의 나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매일 다짐한다.
삶에서, 남이 주는 상처럼 사실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 않기를.
그저 나 자신에게 떳떳한 하루를 사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30년 뒤, 다시 내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남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자부심으로 내 삶을 평가할 수 있다면 내 삶에 더 이상 크게 바라는 것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