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아빠가 일하고 있던 다른 나라로 우리 가족이 함께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고, 다시 차로 한참을 더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아주 먼 곳이었다. 첫 번째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도시에선 유람선을 탔는데, 그 경험이 내게는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유람선에는 내 눈에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얼굴에 재산이 적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내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 식사를 주문하던 시간이다. 우리는 그저 메뉴를 보고 “이거 주세요” 한마디면 끝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어떤 음식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즐기고 싶은지를 웨이터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내가 앉아 있던 테이블은 웨이터가 금세 지나쳤지만, 그들의 테이블 앞엔 메모를 하며 꼼꼼히 요구를 받아 적는 웨이터가 있었다. 집에서 외식이라고 해봐야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 먹던 게 전부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그 모든 풍경이 참 낯설고 신기했다.
하지만 곧 두 번째 비행기를 타고 아빠가 일하는 곳으로 향하자,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완전히 달라졌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낯선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서툰 영어로 “택시 태워줄게”, “어디 가느냐”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 눈빛엔 우리를 어떻게든 태워보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어렵게 그들을 뿌리쳐야 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지내면서 몇 번 더 호객 행위를 하는 아이들을 만나야 했다. 그때 우리 부모님은 끈질기게 따라붙는 아이들을 귀찮아하기보다는 안쓰럽게 여기며, 때로는 한숨을 쉬기도 했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뭔가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어렴풋이 가질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짧았지만 의외로 편안했다. 그곳에서는 나와 동생 외에 다른 한국인 아이들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현지의 한국인 어른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예뻐해 주었다. 어린아이들이란 이유만으로 좋은 숙소를 마련해 주거나, 함께 놀러를 데려가 주기도 했다.
우리는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마련된 식당에서 자주 밥을 먹었는데, 그곳에 고용된 현지인 직원들은 정말 정성스럽게 우리를 돌봐주었다. 어릴 때 나는 밥을 흘리거나 수저를 떨어뜨리곤 했는데,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새 수저가 놓이고, 흘린 자리는 조용히 닦였다. 핀잔을 주기는커녕 귀찮은 표정 한번 짓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일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조용히 해내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그런데 의외로 그때의 일들이 다시 떠오른 것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였다. 미래를 준비하면서도 불안에 휩싸이던 시기였다. 어쩌면 석, 박사 유학을 하던 때보다, 대학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막막하고 두려웠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게도 좋은 기회가 찾아올지 고민하던 어느 날, 문득 그때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말이 꼭 진실은 아니라는 것.
기회는 처음부터 불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것.
나를 정성껏 챙겨주던 그 아주머니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유람선을 타는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만났던, 택시를 붙잡고 하루를 버텨내던 아이들 역시 자신들의 미래를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그날 내가 알아버린 세상은,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친 걸까, 나쁜 영향을 미친 걸까.
끝까지 순진하게 ‘열심히 하면 다 된다’고 믿었다면 더 열정적으로 살았을까?
아니면 훗날 그 믿음이 깨질 때 더 큰 실망을 맛봤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그때 느꼈던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여전히 세상을 긍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느리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세상을 온통 부정하며 염세적으로 살기엔, 아직 한참 남은 내 앞날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눈을 딱 감고,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노력이 모든 걸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이 오직 돈이나 지위로만 정의되는 곳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유람선의 부자들, 공항의 택시 소년들, 그리고 내 밥을 챙겨주던 현지인 아주머니들까지,
그들 모두 각자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