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 너머의 한국 교육

by 공책

나와 비슷하게 한국에서 자란 후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미국 이공계에서 일하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자라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이 일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 둘 다 잠시 생각하다가 같은 대답을 했다. “아니.”


말하자면, 우리는 한국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지금 오히려 외국의 이공계 현장에서 일하게 된 셈이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한국 교육 시스템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매년 대학 입시가 끝날 때마다 늘 듣던 말은 난이도 조절 실패였고, 미디어에서는 틈만 나면 한국 교육을 비판하거나 나름의 대안을 내놓았다. 어느새 교육에 대한 비판은 특별한 의견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늘어놓는 일종의 관습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 가만히 들어보면 그 비판들의 내용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과도한 입시 경쟁과 그로 인한 학업 부담이다. 사실 이 문제는 교육 탓으로만 돌리기엔 애매하다고 항상 생각해 왔다. 한국 사회는 경쟁 구조가 강해 교차 이동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다들 스무 살 즈음부터 승부를 내야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회 구조 속에서 교육이 경쟁을 만든다기보다, 경쟁이 교육을 밀어붙인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사교육이다. 사교육 때문에 부모들은 고통스럽고, 그만큼 계층 간의 격차가 넓어진다.


셋째는 입시 제도와 공정성에 대한 문제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바뀌고, 이제는 수시가 당연한 제도로 안착했지만 공정성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시험의 공정성을 원하지만, 대학은 학교 내신을 보려는 경향이 있으니, 이 간극은 당분간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넷째는 한국 교육이 진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시험 위주의 교육, 전인교육의 부재, 시대에 맞지 않다는 이야기.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다.


다섯째는 학생 인권과 교사 교권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하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 아닐까 싶다. 교육이라는 건 너무나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일이고, 또 사회 전체의 경쟁 구조와도 붙어 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교육이 다 다른데, 공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하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교육은 다양성을 감당해야 하지만, 동시에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싼 학비의 다양한 형태의 사립 중, 고등학교를 많이 세워서 선택권을 넓히면 계층 고착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반대로 모두에게 같은 교육을 하면 획일적인 교육이라고 비판한다. 결국 한국 교육은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두 방향의 요구를 모두 감당해야 한다.

어쩌면 그 모순 자체가 한국 교육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거기에 또 다른 비판을 더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한국 교육이 꽤나 괜찮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물론 나도 힘들었다. 수많은 시험과 교과서, 그리고 끝없이 쌓이는 문제집 앞에서 헤맸던,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힘들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그 체계 안에는 장점도 있었다. 너무 많은 비판 속에서, 그 장점들이 잊히는 게 아쉽다.


요즘 기사에도 많이 나오지만, 한국 출신의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각종 지표에서도 한국 이공계인들의 해외 진출은 도드라진다. 물론 어떤 기사는 이러다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약화된다라고 비판하지만, 조금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만큼 한국이 훌륭한 이공계 인재를 길러냈다는 뜻이다. 해외에서 한국인 엔지니어들은 실력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수많은 교육 비판 속에서도, 세계가 원하는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는 힘만큼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 힘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 보면 한국의 교육은 특히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는 데 강점이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세 가지를 떠올린다.


첫째, 한국의 수학·과학 교육은 단순 암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 중심으로 변화해 왔다는 평가가 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넘어오면서 시험의 방향이 바뀌었다. 수능은 배운 걸 그대로 외워 푸는 게 아니라, 개념을 이해하고 응용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그래서 수학의 정석을 아무리 통째로 외워도 수능 수리 영역에서는 고득점을 받기 어렵다. 개념을 이해하고, 그걸 실전에 맞게 활용해야 한다. 나는 이 변화가 한국 수학, 과학 교육의 진짜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분이 “수학도 다 암기야”라고 말하는 순간이 잘못된 공부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정말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수학은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의 훈련이 되어버렸다. 이공계에서 필요한 논리력과 응용력, 그리고 구조적으로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 한국의 교육은 상당히 탁월하다.


둘째, 한국 교육은 충분한 시간과 연습을 통해 아이들의 실력을 쌓아준다는 점이다. 이공계 분야는 시간의 축적이 중요하다. 당장 오늘부터 프로그래밍이나 데이터 과학을 공부를 시작해 본다면 알 것이다. 강의를 듣고 복습하고, 문제를 풀고, 수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한국의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해외에서는 한 기술을 수십 년 다루는 60대, 심지어 70대의 엔지니어가 드물지 않다. 그만큼 이공계 직업에는 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국의 교육은 그런 축적의 과정을 아주 일찍부터 구조화해 놨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 익힘책을 풀고, 중학교 때는 수학 문제를 노트에 풀게 하고 검사받아야 했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 대비 문제풀이 노트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물론 그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게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바로 이공계 분야에서 요구되는 꾸준한 시간의 축적 과정이었다. 쉽게 쌓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수학 실력이 한번 쌓이면 남들과의 분명한 격차를 만들어낸다. 이공계의 진짜 언어는 영어도 한국어도 아닌 수학이다.


셋째, 한국의 수학과 과학 교육 수준은 굉장히 높다. 요즘은 교육 과정이 조금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물리Ⅱ를 끝내면 바로 대학 일반 물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대학에 들어가 1학년 물리학이 어려우면 물리Ⅱ만 다시 보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이과 학생이 미적분을 이미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다. 심지어 로피탈 정리 같은 약간의 비밀스러운(?) 공식들도 고등학교 때 배웠다. 그래서 한국에 살다가 외국에 이주한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학 천재로 오해받는 이야기가 흔히 들린다. 그만큼 한국의 교육과정 자체가 단단하고, 대학 수준의 공부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수포자가 대거 생겼다는 비판도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난이도의 문제라기보다, 난이도가 일정하게 상승하지 못하고 어느 구간에서 갑자기 급격히 올라가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쓰다 보니 마치 내가 한국 교육 시스템을 찬양하는 모범생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지 않다. 나 역시 수없이 헤매고 힘들었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다만 비판 속에서도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건, 그 교육에도 장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수많은 학생들이 그 과정을 지나며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생각하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배운 것을 써먹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결국 한국 교육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가장 조용한 방법은, 거창한 말보다 그냥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한국 출신의 수많은 인재들이 전 세계에서 빛나고 있다.


나 역시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으로서, 내 일을 잘 해내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내 삶이 소중하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내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한국 교육이 길러준 힘의 한 단면을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노력에도 조금은 더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혹시 이 글이, 이공계라는 좁은 분야에 종사하는 한 개인의 시선에서 비롯된 과도한 일반화로 보이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또 내가 한국의 교육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오해받는 일도 피하고 싶다. 실제로 나 역시 한국 교육에 대한 여러 비판이 충분히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비판 속에서 교육이 성장한다고 믿는다.


다만 지나친 비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교육이 지닌 장점, 특히 이공계 인재를 길러내는 힘만은 잃지 않기를 바란다.


keyword
이전 27화평범하게 살고 싶은 눈에 띄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