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고 싶은 눈에 띄는 아이

by 공책

나는 가끔 혼자 앉아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쩌다 외국에서 엔지니어를 하며 살게 되었을까?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한국에서 취업을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는 것을 하지 않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이것은 운명일까? 아니면 내가 선택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아마 입학 첫날이나 둘째 날 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새로 산 캐릭터가 크게 그려진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조용히 교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 수업은 주로 시간표 보는 법과 요일별로 어떤 책을 챙겨 와야 하는지를 배우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수업을 듣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분명 내일은 월요일이 아닌데, 선생님이 내일이 월요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월요일 시간표대로 책을 가져오라고 하신 것이다. 착각하신 게 분명했다.

쉬는 시간에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내일은 ○요일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당돌한 꼬마였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선생님의 실수를 바로잡으려 했으니 말이다. 그런 말은 보통 두 가지 결과를 만든다.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미움을 사거나, 혹은 조금은 특별한 신뢰를 얻거나. 다행히 내 경우는 후자였다. 선생님은 순간 아차 하셨는지, 곧바로 교실 전체에 올바른 시간표를 다시 알려주셨다.


그때부터 담임 선생님은 나를 유독 신뢰해 주셨다. 1학년은 따로 반장을 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학급의 중요한 심부름을 도맡아 하곤 했다. 선생님이 나를 칭찬해 주실 때도 많았다. 당시 학부모들 사이에서 그 선생님은 ‘엄하다’라는 평이 많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혼난 기억은 거의 없고 칭찬만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덕분에 나는 학급에서 눈에 띄는 아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나는 늘 조금은 눈에 띄는 아이였다.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선생님들의 시선에 자주 포착되는 학생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학교에 방문했다가 선생님에게 이런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는 수업을 듣고 있으면 괜히 대충 할 수가 없어요. 저절로 긴장하게 돼요.”


한 분의 선생님도 아니고 두 분의 선생님께 엄마는 비슷한 말을 들었었다.


그 말이 칭찬이었는지, 반대로 나의 까다로움을 지적하는 말이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나를 평가한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있던 것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할 뿐, 그때도 “선생님, 내일은 ○요일이죠?” 같은 말을 툭 던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혹은 다른 아이들보다 까다롭다고 여겨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늘 무난하게 섞여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학급 앨범을 펼쳐보면 “저런 애가 있었나?” 싶은 조용한 친구들이 꼭 있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 반대편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눈에 띄는 아이’로 지내온 것에는 분명 장단이 있었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교사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그 관심이 칭찬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더 많은 훈육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관심이 결국 나로 하여금 주저하지 않고 나만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힘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길보다 내 마음이 가는 길을 택했다. 지금 외국에서 결국 살아가게 된 것도 그 연장선상일 것이다. 특별한 선택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남들이 모두 걷는 길보다는 나만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내 인생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느낀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수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히 그날의 장면이다.


“선생님, 내일은 ○요일이죠?”


만약 그때 그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범하게 섞여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자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인생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삶이 덜 흔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작은 질문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좋은지 나쁜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 내 인생의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꼬마가 선생님한테 가서 선생님의 실수를 지적한 것을 되돌아봤을 때 나는 애초에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아이로 자랄 수 없는 기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의 삶의 목표는, 엔지니어로서 나의 일을 성실하게 그리고 잘해나가며 오히려 조금은 평범하게, 남들 속에 조용히 섞여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잘 될지 사실 모르겠다.


어느 날 오랜 친구가 나에게 한 번은 너는 지금 사회성 있는 직설가 같다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친구 앞에서 한 번도 내 의견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 나를 직설 가라고 하는지 그때도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도 필요한 자리에서만 의견을 내고,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눈에 띄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향이 다시 나의 인생을 또다시 한번 내가 예상치 못한 다른 곳으로 이끌어 갈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하며 살고 있다.


그나저나 이 글을 다 쓰고 읽어보고 웃음이 나온다.

내가 이 글을 쓴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직설 같은 말이 하나 떠올랐다.

"야, 진짜 평범해지고 싶은 사람은 이런 글도 안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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