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의 온도, 그 시절의 교육

by 공책

중학교 때였다. ‘특별활동’이었는지 ‘특기적성 활동’이었는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각자 반을 떠나 흩어져 다른 활동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보통 몇 주에 한 번씩, 등교부터 하교까지 하나의 활동만 하는 날이었다.


이 특별활동은 어떤 부서에서 활동할지를 고르는 것부터가 꽤 흥미진진했다. 밴드부나 방송반처럼 원래 소속된 부서가 있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해진 여러 부서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했다. 부서마다 정원이 정해져 있어서, 각 반에서 많아야 몇 명밖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름만 봐도 따분해 보이는 부서가 있었고, 반대로 제목만으로도 가장 먼저 선택하고 싶어지는 부서들도 있었다.


문제는 언제나 인기가 집중되는 부서였다. 결국 어떤 아이들이 그 부서에 갈 수 있느냐는 가위바위보로 결정되곤 했다. "가위바위보 해!”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면 우리는 전력을 다해 손을 폈고, 이긴 아이는 원하는 부서를 차지했다. 가위바위보를 계속 지다가는 본인이 원하지도 않고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없는 부서에 배정되어 남은 시간 동안 아무 관심도 없는 활동을 해야 하는 비극(?)을 맞을 수도 있었다.


내가 갔던 부서는 '보드게임부'였던 것 같다.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뭔가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 부서는 보드게임의 원리를 배우거나 만들거나 하는 부서가 아니었다. 철저히 그냥 보드게임을 하는 곳이었다.


특별활동이 있는 날이면 나는 학교에 가지 않고, 곧장 약속된 보드게임 카페로 향했다. 그 보드카페에 수십 명의 중학생이 입장했고, 우리는 하루 종일 그곳에서 눈치 없이, 제약 없이, 하고 싶은 보드게임을 우리 마음대로 골라서 실컷 했다. 공짜로 주는 음식도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다양한 보드게임을 해봤다. 몇 가지 게임만 반복하면 금방 질리기 때문에 규칙도 낯설고 뭔지도 모르는 게임을 들고 와서 매뉴얼을 읽고, 게임을 익혔다.


한마디로 완전한 놀이의 시간이었다.


학교 활동이 있는 날이니 자연스럽게 용돈도 조금 더 받을 수 있었고,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더 놀다가 집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 부서를 맡았던 선생님은 우리 학교 영어 선생님 중에 한 분이었는데, 굉장히 착한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왜 그런 방식을 택하셨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집단으로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건 통제도 어렵고, 교사 입장에서도 피곤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학교에는 ‘아이스링크부’였는지 ‘스케이트 부’였는지도 모를 부서도 있었는데, 그 부서 역시 그날 하루는 링크장에 가서 실컷 스케이트만 타며 놀다 오는 부서였다.


물론 그 활동들의 본래 취지는 학생들이 각자의 특기나 적성을 발견하고 흥미를 키우는 데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그냥 원 없이 놀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활동들이 나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우르르 게임을 하고 서로 규칙을 지키며 보드게임을 이기기 위해 눈치작전도 세워야 했다. 비록 특기 적성을 발견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전인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그 역할을 다 했다.


요즘 세대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이상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지금 교사가 학생들을 단체로 보드게임카페에 데리고 간다고 하면, 아마 선뜻 허락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교육을 시도하려는 의지는 있었지만, 모두가 어설펐던 시절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어설픔마저도 우리 시대만의 따뜻한 교육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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