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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Jan 24. 2024

옥스퍼드 초엘리트 - 사이먼 쿠퍼

정치인들의 흥미로운 학창 시절 이야기들

인상적인 구절 다섯 가지


1.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한다.


2. 내가 졸업할 무렵 옥스퍼드는 교수 대 학생의 비율이 세계 최고였지만, 그럴듯한 언변으로 허세를 부리는 방법 외엔 아무것도 배울 게 없었다. 


3. 하버드의 다양한 수업이 부과하는 총학습량은 옥스퍼드보다 훨씬 더 방대했다. 읽기 과제 분량만 일주일에 1000페이지를 초과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4. 브뤼셀은 종종 영국에 지시 사항을 내려보냈는데, 그러한 상황 자체가 옥스퍼드 보수당원들이 갖고 있던 특권의식, 즉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누구도 그들에게 명령하지 못했다. 규칙은 다른 계층에나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사적인 삶, 금융 거래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에서의 최대한의 자유를 누렸다.


5. 그가 내 방을 나설 때, 나는 대학이 그에게 제공한 교육에 대해 유감을 느꼈다. 우리는 영국의 정치 엘리트를 양성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려왔지만, 우리가 존슨을 위해 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그에게 진실성을 가르쳤을까? 아니다. 우리가 그에게 지혜를 가르쳤을까? 아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르친 걸까? 재치 있고 기발한 연설을 하는 방법뿐이었을까? 나는 소크라테스라도 제자들에게 진실한 미덕을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거라는 핑계를 들며 나 자신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린 시절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품의 아이였다. 궁금한 게 있으면 꼭 만져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간혹 크고 신기한 기계를 가지고 수리기사 아저씨들이 집에 올 때면 그 아저씨가 잠시 한눈을 팔기를 방문 뒤에 숨어 기다리다가 그 도구들을 꼭 내손으로 만져보고 했다. 그리고 이런 성격 때문에 아찔한 큰 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 같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전선을 꽂기만 하면 기계가 동작하는 벽에 있는 구멍 두 개, 즉 콘센트가 너무 신기했다.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그 구멍 사이즈에 꼭 맞는 물건을 하나 찾아냈다. 바로 쇠젓가락이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쇠젓가락을 콘센트에 집어넣는 일을 벌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끔찍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천만 다행히도 나는 큰 사고나 후유증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 사건은 나에게 한 가지를 남겼다. 궁금한 것을 만져보고, 하고 싶은 것을 실행해 봐도 죽지 않는다. 고통을 감내할 자신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봐도 된다. 이 생각은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를 형성하는 하나의 바탕이 된 것 같다.


어떤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나가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하나의 강력한 의견은 어린 시절의 경험, 집안 배경, 그리고 받은 교육과 같은 외부적인 요소들에 의해 한 인간이 형성되고 그러한 방식으로 살아나간다는 의견이다. 강인한 의지로 자신의 배경을 극복하거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특출 난 재능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형성한 성격과 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를 돌아봐도 그렇다. 교육열이 높은 한국사회의 평범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서 나는 어릴 때부터 항상 공부에 전념하는 것을 옳다고 여겼다. 그렇게 열심히 학원을 다니다 보니 수학, 물리학을 좋아하게 됐고 그렇게 내가 미래에 무엇을 할지 결정했다. 만일 내가 다양한 특기 적성과 예체능 교육을 어려서부터 시키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내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대다수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심지어 미국에서 교수를 하거나 직장을 다니다가 한국의 교수로 임용된 교수들 밑에서 공학을 배웠다. 영어를 배우고 큰 세계를 보겠다는 핑계로 부모님 돈을 써가며 20살 시절 해외를 다녀보는 호사도 누렸다. 그래서 나는 유학을 가겠다는 결심을 쉽게 했다.


유학을 온 학교는 산업계에 필요한 인재를 배출하는데 힘쓰는 학교였다. 방학이 되면 미국 기업체에 인턴을 나가는 학생들이 넘쳐났다. 나는 큰 고민 없이 졸업직후 미국 산업계로 향했다. 만일 대다수의 졸업생이 교수가 되는 다른 학교에 유학을 갔다면 나는 지금쯤 교수지망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니 나의 모든 것도 내게 주어졌던 배경을 설명하지 않으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에서는 80년대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풍경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영국의 정치인들이 어떻게 교육받고 성장했는지, 어떻게 그들의 학창 시절이 지금 영국 정치인들의 가치관과 정책들을 형성했는지 설명한다. 과거 옥스퍼드 대학은 학생을 어떻게 가르쳤으며, 그들은 어떤 것들에 시간을 쏟았는지, 학교의 활동들은 어떻게 조직되었고 운영되었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어떠한 계급이나 서열등이 있었는지도 시시콜콜하게 모두 털어놓고 있다. 한국에 이런 책이 나온다면 아마 80년대 서울대학교의 클럽활동이나 수업, 교우관계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국회나 정부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러한 정책, 가치관을 형성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영국에 살거나 영국의 정치로 인해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게 꼭 유쾌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영국의 정치에 받는 영향이 미미한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유명 정치인들의 학창 시절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이다. 교수와 학생이 직접 만나서 하는 튜토리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라던가 학생들 사이의 집안 배경에 따른 서열이야기에서는 영국이란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더욱 궁금하게 한다.


궁금해진다. 영국이라는 나라가.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거는 못 참고 꼭 경험해 보는 그 습관. 다섯 살 무렵 쇠젓가락을 콘센트에 집어넣어 보는 경험을 통해 더강해진 그 습관이 나를 꿈틀거리게 한다. 나는 미국이 궁금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왔고, 독일이 궁금해서 독일에서 두 번씩이나 인턴을 했다. 궁금해하지 않고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불행하지는 않았겠지만, 삶에서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끼면서 살았을 것 같다.


영국 사회 궁금하다.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미래에 기회가 있다면 한번 가서 일해보고 싶다. 책으로 엿본 영국과 실제로 살아보는 영국은 어떻게 다를까? 나에게 영국을 체험하는 기회가 언젠가는 올까?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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