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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Nov 17. 2024

아웃라이어-말콤 글래드웰

내가 참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다. 이제껏 여러 번 읽었지만 또다시 한번 읽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1만 시간의 법칙으로도 잘 알려진 책이다.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저 누구나 1만 시간만 훈련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개인의 노오력을 강조하는 책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실제로 이 책은 전혀 그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누군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회와 문화적 유산이 주어져야 한다는, 다시 말해 운이 좋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요약하면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공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회를 받아야 한다. 1만 시간 동안 훈련받을 기회가 필요하며 (1만 시간의 훈련양을 쌓기 위해서는 대략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훈련받은 전문성이 발휘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받아야 한다. 이는 아주 특별한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이다. 둘째, 우리 모두는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배경에 따라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았다. 이 또한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의 예를 적절하게 들면서 성공과 실패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결국 기회와 유산이라는 행운의 산물임을 풀어낸다.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로는 무작정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허황된 거짓을 늘어놓기보다는 세상은 불공평하며 기회를 갖는 것은 선택받는 소수라는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받은 기회들과 받은 문화적 유산, 동시에 내가 받지 못한 기회들과 문화적 유산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에서 기회들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무엇에 1만 시간을 쌓았을까? 20여 년 전 나는 과학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시작으로 그 후 10년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이공계 엘리트에게 주어지는 교육을 받았다. 수학, 과학, 공학 이런 것들에서 나의 재능을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 이후에 대학원에 진학하면서는 전력전자로 나의 진로를 정하고 좋은 환경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미국에서 전력전자 분야에서 일을 하면서 전력전자라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을 기회를 받았다. 


이렇게 나는 20년을, 다시 말해 2만 시간이라는 시간을 썼다. 누구나 흔하게 받는 기회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도 행운이 따랐다. 


내가 받은 문화적 유산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한국에서 교육열이 치열한 부모님에게서 자랐다. 지금은 약간 변했다고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만 해도 무조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선이었다. 열심히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받은 긍정적 문화적 유산은 학업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자세와 포기하기 않는 끈기 정도일 것이다.


물론 내가 받지 못한 기회들도 많다. 우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서 1만 시간을 채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때 받은 엘리트 교육은 교과서와 과제가 주어지고 그것을 잘 배우고 익히기 위해 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얻은 기회 또한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취업을 잘하기 위한 기회였지 내가 평생동안 해야 할 일에서 쌓아야 할 전문성을 집중적으로 쌓을 기회는 아니었다. 사실 내가 정확히 무슨 일에서 전문가가 되어볼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최근에서야 할 수 있었으니 나는 아직까지 내가 가져야 할 특화된 전문성에서 1만 시간을 채울 기회를 아직 받지 못했다.


그리고 1만 시간을 채웠으면 그것을 빛나게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할 텐데 사실 그것 또한 나에게 오지 않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인공지능을 공부한 친구들과 내 처지를 비교하면 더욱 와닿는다. 내가 대학원을 진학하던 10년 전만 해도 머신 러닝 등과 같은 인공지능을 쓰는 연구들이 아주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분야를 선택한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은 지금 10년간 쌓은 1만 시간으로 아주 높은 연봉을 받으며 AI연구를 하는 기회를 받고 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전력전자라는 분야를 택한 나는 평범한 엔지니어로 그들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문화적 유산의 측면에서도 나는 받지 못한 것이 있다. 미국에 와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취업을 하면서 더욱더 절실히 느낀 것인데 나는 서열관계가 뚜렷하고 상명하복 문화가 팽배한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윗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내 생각대로 행동해서는 안되며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 또한 제지되는 사회에서 오랜 시간 살았다. 그러다 보니 지도교수나 나의 상사에게 부드럽게 이야기하면서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의견을 설득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내편으로 만드는데 늘 부족하다. 아직까지도 나의 태도는 윗사람에게 복종하거나 혹은 반대로 마치 반항하듯이 내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가 더욱더 빛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전력전자라는 넓은 분야 안에서도 DC-DC 컨버터라는 것을 나의 전문영역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종류의 컨버터는 전기차, 휴대폰, 데이터 센터 등등 전력을 쓰는 거의 대부분의 기계에서 사용되는 컨버터이다. 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좋고 그래서 즐거운 마음으로 1만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이 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가 지났으니 앞으로 8년을 불철주야 노력하면 1만 시간이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8년 후 혹은 시간이 더 흘러 어쩌면 DC-DC컨버터에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부족해서 나의 가치가 지금의 AI 전문가의 가치만큼 올라가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오지 않더라도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1만 시간 동안 훈련받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리고 그렇게 전문가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가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눈팔지 않고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분야에서, 내가 나의 전문성이라고 특성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1만 시간을 부지런하게 그리고 치열하게 쌓아 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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