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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엔지니어 Feb 18. 2024

트러스트 - 에르난 디아스

인상적인 구절 다섯 가지


1. 그들은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자신들의 결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그들 모두가 내 아버지에게 있던,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베벨이 글로 옮기고 싶어 하는 확신이라는 걸 알았다.


2. 나는 우울하게 술잔을 들여다보는 그 두 사람을 보고 당혹감에 몸을 떨었다. 겉만 번드르르한 그들의 말. 소년 같은 진지함. 결정이 정말로 어떻게 내려지는지 이들이 알았다면, 진정한 권위의 목소리가 얼마나 조용조용한지 들을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어떤 형태로든 진짜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불가능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3. 목에 상처가 난 것 같은 분노. 가슴에 멍이 든 것 같은 격분. 베벨은 내게 이러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 적이 없었다. 자기 제안을 고려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었다. 그냥 집을 빌리고, 내게 즉시 그리로 이사하라고 했다. 혼자 산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기는 했으나, 내가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이리저리 명령에 따라 움직여진다는 건 모욕적이었다. 그렇더라도 그런 기회가 제시된 불쾌한 방식을 이유로 기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허영심 어린 동시에 어리석은 일로 보였다.


4.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직장에서든 사생활에서든 무수히 많은 남자들이 내 아이디어를 자기 것인 양 내 앞에서 되풀이해 말하는 경험을 했다-처음에 그 생각을 떠올린 사람이 나라는 걸 내가 기억하지 못할 것처럼 말이다.


5. 나는 끈적임 원칙 + 거미줄 구조를 A와 무수히 여러 번 의논했다. 그는 내 설명을 따라오는 척하거나 인내심을 잃었다. 내 잘못이다. 수학을 설명하는 데는 늘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로써 A의 적개심이 더 강해졌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시절에 나는 여러 초중고 학생들의 개인 과외를 하며 돈을 벌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 유학을 나왔으니, 과외 교사를 한 것이 내가 유일하게 해 본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은 공간 부족 문제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한 과외 학생의 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툭 던졌다. 아니 공대생들은 그냥 다른 지역으로 보내버리면 되지 왜 서울에 놔둬야 하냐고, 그러니 공간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그러더니 "아, 선생님도 공대생이죠" 하면서 나에게 급하게 사과를 했다. 그 과외 어머니가 나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대생, 혹은 공대출신들. 그러니까 하루종일 기계만 보는 사람들이 굳이 좋은 공간과 좋은 장소에서 공부하고 일할 이유가 없다는 일반적인 한국 사회의 편견, 그들은 세상과 떨어져서 기계만 봐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편견들이 자기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것일 것이다.


내가 유학을 가기 직전 했던 과외학생의 아버지는 내가 공대 대학원 유학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나를 정말로 최선을 다해 말리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에 확신을 가진 나조차도 흔들릴 정도로. 좋은 전문직을 해야지 공대 나와서 아무리 공부 잘해도 사람대접받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그가 경험한, 혹은 그가 보아온 엔지니어의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마음만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에 온 뒤로는 모든 게 정반대로 뒤집어졌다. 어딜 가든 공대를 다닌다고 하면 똑똑한 학생이라고 칭찬을 해줬다. 실제로 엔지니어는 같은 대학을 졸업한 다른 학과에 비해 같은 회사를 들어가서도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걸 나는 미국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모든 곳에는 엔지니어출신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회사에 높은 사람들의 다수가 엔지니어출신인 것은 물론이고 기업가들도, 창업을 통해 기업가로 성장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엔지니어출신이었다. 


그렇게 미국에 오고 나서야 나는 한국에서 공대생이라는 틀이라는 것으로 내가 묶여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기술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하고, 무언가를 창조해 내고, 원한다면 큰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엔지니어에 대한 다른 시각은 많은 부분이 사회 구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서양 세계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곧 새로운 기업의 탄생이었다.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기술 분야를 창조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가 탄생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기술을 아는 자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왔다. 반면 한국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업이 탄생했고 경제가 성장했다. 정부 투자를 받고 많은 설비에 투자를 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선진국에서 해온 것을 따라잡았다. 그 가운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재벌, 은행, 그리고 관료였다. 엔지니어는 그저 시키는 대로 밤낮없이 일을 하면 되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번 사람들의 인식이라는 것이 생기고 나면 그것은 바꾸기가 무척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특정 사람들을 구별해서 그들의 한계를 정해두고 집단의 특성으로 개인을 판단 내리는 것은 역사적으로 모든 시대에 걸쳐 그리고 모든 곳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 책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하다. 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에는 누군가가 지은 소설로, 두 번째는 남편의 자서전으로, 세 번째는 자서전을 쓴 작가가 쓴 글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인의 일기로써 네 번이나 조명한다. 그 과정에서 이 부부의 아내가 어떻게 죽은 것인지, 어떤 정체를 가진 여성이었는지 우리가 간절하게 알고 싶어 하도록 흡입력 있는 문체로 쓰였으며,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추론해 보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결국 나온 결말은 약간의 충격을 가져다준다. 이 책에 나오는 그 누구도 예상 못한, 나름 열심히 추리해보고자 했던 나도 추리할 수 없었던 진짜 그 여자의 모습은 그저 능력 있는 남편의 착한 아내가 아니라, 실제로 남편을 성공으로 이끈 능력 있는 여자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면 유명인의 아내는 어떠해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깊이 박혀 있고 그 틀로 사람의 한계를 규정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다 보면 느끼는 것은 모든 집단에는 경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정 집단을 묶어 통계를 내며 다른 집단과 비교하는 것은 많은 곳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것이 단지 통계학적 경향성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아시아 사람들은 체구가 작다는 것은 이미 통계적으로 나와있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아는 유명 아시아인 운동선수들 중에는 뛰어난 피지컬과 운동신경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말해 통계학적 경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특성과 기량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타인을 대할 때 이러한 편견을 지우고 그 사람을 온전히 보는 것이 늘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볼 때 타인의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편견이 만연한 이 세상에 나를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건 나 스스로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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