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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Jul 23. 2024

농사 한 번 해보실래요?
군포 뿌리민본농장 그룹우프

우프는 친환경농가에서 하루에 반나절 정도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활동이다.

호스트농장의 여건 등을 고려해 대부분 2~3명의 우퍼들이 1~2주간 활동을 하며 호스트들의 철학과 경험, 그리고 농사일을 배우게 된다. 그룹우프는 주말을 이용해 여러명이 함께 농가에 가서 일손을 돕는 활동으로 단순 일손돕기에서 나아가 호스트들의 농법 및 농업에 대한 담론과 철학을 공유하는 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난 6월 29일 경기도 군포 뿌리민본 농장에서는 무려 우리팀을 포함해 12명이 참여해 그룹우핑을 했다.     


풀과의 전쟁농사근()이 부족하다

오늘 하루를 복기해본다.

풀과의 전쟁에서 져버린 팔 ㅠㅠ

한 단어로 ‘오바’했다.

풀에 베이고, 긁힌 팔뚝을 하고 집에 가니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  “아빠. 무슨일이야?”

나:  “아빠가 오늘 풀하고 싸웠어.”

와이프:  “딱 봐도 졌구만.. 왜 오바를 해. 자기 땅도 아닌데, 뭐하러 그리 열심히 했어?”


사실 뭐 그리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소싯적 낫질도 조금 해 봤고, 그 작은 평수의 밭 조금 풀 벤다고 뭔 일 있겠냐 싶었지만... 농사일을 조금만 도우면 허리랑 허벅지가 땡겨온다. 

아~ 아직도 농사근이 부족하구나. 땀에 푹~젖은 채로 집에 왔더니 귀농할 생각은 접으라고 구박을 한다.

매번 농사일을 빙자한 우프 마실을 댕겨왔다가 이번에는 조금 밥값을 한 것 같다.     


농사를 경험하다

“자 오늘 모였으니 간단하게 설명하고 농사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할 일이 많습니다. 풀 사이 사이에 아직 수확하지 못한 마늘을 캐고, 밭을 만드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하니 서둘러 작업을 하고, 마지막으로 콩까지 심겠습니다.”

경기도 군포 뿌리민본 농장에는 10명의 우퍼들이 참석해 상반기 마지막 그룹우프를 진행했다.

정년 퇴직 후 농사에 관심을 가지고 큰 용기를 내서 첫 우프 활동을 시작한 분, 친구와 함께 그룹우프를 처음 신청한 여성 우퍼들, 3~4곳의 우퍼 활동을 해 본 숙련된 우퍼 분들 등 다양한 우퍼들이 참여했다. 이번 그룹우프는 수도권에 가까운 지역, 그리고 윤승서 호스트의 인기 덕분인지 상반기 그룹우프 최대 인원이 참가했다. 

챙이 넓은 모자, 농사에 적합한 장화, 엉덩이 의자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우퍼들은 마늘을 캐고, 가슴 높이까지 올라온 풀을 베는 작업을 진행했다. 꽤 많이 쌓여 있는 풀들은 농장 한 켠에 쌓아 놓은 것이 아니라 밭 만드는 작업의 핵심 재료가 된다.     

풀 속에 숨어 있는 마늘을 캐고, 이후 남은 풀들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빈자(貧者)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농법뢰이핏 

“풀 구덩이 농법, 뢰이핏이라 명명한 이 농사방법은 아프리카의 자이핏, 미주지역의 테라프레타, 유럽의 이중 경운, 무경운, 퇴비 등의 기술을 결합시킨 농법입니다. 이 농법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 전수한 농법으로 저비용, 그리고 지역의 부산물을 활용하는 순환농법입니다.”

윤승서 호스트의 농법의 핵심은 가장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환경문제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흙을 살리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농약이나 화학비료, 유박비료나 영양제 없이도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이 가능하다. 


네모난 구덩이(가로, 세로 깊이가 모두 한 삽 길이, 약 30cm)를 파고 바닥에는 축분이나 인분, 그것이 없을 때는 냇가에 쌓여 있는 부엽토를 넣어준다. 이후 아주 많은 양의 풀을 넣어주는 것이 핵심인데, 마늘을 캐고 정리한 잡초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구덩이에 들어갔다. 이후 발로 꾹꾹 밟아 단단하게 만들고 그 위에는 재, 토기, 숯 부스러기를 뿌린다. 구덩이는 60~120cm 간격으로 계속 만들어 밭을 만들면 양분 공급은 물론이고 통기성도 좋아지고, 구덩이 내의 수분 보유력 덕분에 별도의 관수시설 없이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어설프게 뢰이핏을 만들었다. 부엽토를 넣고, 그 위에 걷어낸 잡초를 꽉꽉 밟아서 넣는다. 토양의 물리성이 좋아지고, 저비용으로 도전할 수 있는 농법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몇 개 있다. 

첫 번째 작물은 구덩이에 심는 것이 아니라 밖에 심어야 한다.

두 번째 구덩이 모양이 V나 U 모양이면 안되고 반드시 Ц 네모여야 한다. 입구가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면 안된다. 

세 번째 잡초가 자라면 베어서 뢰이핏에 넣는다.

네 번째 풀, 낙엽, 숲의 흙, 부엽토, 작물 잔사, 짚, 나무 가지, 썩은 나무, 종이 등 다 좋다. 갈색을 아래에 넣고 초록색을 위로 넣는 것이 좋다.     


그 남자는 남다르다

윤승서 호스트는 대한민국 외교관 출신으로 아프리카 빈곤지역에서 친환경+자연농법을 전파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전통양가 태극권의 8대 전인이기도 해서 그룹우프를 할 때나 주말에는 사람들에게 태극권을 가르치기도 한다.

윤승서 호스트가 아프리카 농업개발과 뿌리민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뙤약볕이 쏟아진 오전 농사일을 마무리하고 윤승서 호스트의 코이카 사업, 아프리카 농업 개발, 뢰이핏과 수직 연못, 토종 종자와 전통농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현재 뿌리민본(www.ppuri.co)이란 단체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코이카 사업의 일환으로 아프리카에 자립농사 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선진국의 원조를 기다리게 만들 게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살아갈 수 있는 자립기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자립하는 농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며, 토종종자를 지키고 전통농업을 유지해야 합니다.”

윤승서 호스트의 가슴 뜨거워지는 강의를 마치고 군포 대야미에서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 분들의 농사 이야기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직접 빚은 막걸리가 오전 농사일의 고단함을 개운하게 씻어냈다.

토마토와 바질, 마늘과 올리브유로 만든 영양밥, 감자전과 샐러드, 그리고 직접 빚은 3종류의 막걸리가 준비됐다.


장마철이라 비가 올까 걱정을 했지만, 작업을 마치는 오후 4시까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 그룹우프에 참가한 우퍼들은 농사일을 제대로 경험하고, 그룹우프를 마무리했다.     


PS/ 1. 윤승서 호스트가 운영하는 뿌리민본(http://ppuri.co)에는 정말 많은 자료들이 있다.

여러 권의 책과 동영상이 있어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다. 흙을 살려 비용을 낮추고 자립을 돕는 농사, 

주민들에게 직접적 도움이 되는 적정기술 보급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참조하시기 바란다.


2. 대야미역에서 같이 퇴근했던 우퍼들이 물었다. “다른 곳들도 이렇게 힘들어요?”

“아니요. 이렇게 힘들지 않아요~^^” 나만 힘든게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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