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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희 Apr 28. 2024

다락능선을 좋아하지만 Y계곡은 우회합니다.

한 때 북한산의 장엄함에 반해서 북한산 봉우리와 능선을 찾아다녔었다.

처음 백운대에 올랐을 때 절벽 옆 암석을 걷는 짜릿한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 암석 제일 꼭대기에 올래 발아래 세상을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찾아다닌 칼바위능선, 형제봉, 문수봉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비봉능선, 영봉……북한산 때문에 서울이 살만하다고 느낀 시절이었다.

오를 때마다 감탄하는 북한산

나는 같은 북한산국립공원이지만 도봉산은 정이 가질 않았었다. 이십 대 초반 올랐던 기억만 있는 도봉산은 가고 싶다는 마음도 들지 않았고, 그나마 사람 없는 한적한 오봉에 오르는 것에 만족했었다.

도봉산 오봉


작년에 이십 년 만에 도봉산 신선대에 올랐다. 제일 대중적인 마당바위길로……이상하게도 힘이 들었고 마당바위 앞에서는 멀미하듯 주저앉아버렸다. 한숨 쉬고 다시 가파른 길을 지나 신선대에 올랐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다락능선을 통해 포대능선과 만나 신선대로 올랐고, 지루할 틈이 없는 코스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암릉을 오르면 산책로 같은 능선길이 나오고 또 암릉이 나오고 눈을 돌리면 어디나 절경이었다.

 

나는 오늘도 이 다락능선을 오른다.

팔과 다리를 다 써야 하는 이 코스가 정말 좋다.

마당바위 코스에 비해 등산객이 적은 것도 마음에 든다.

아직 와이 계곡 아닙니다.


이 코스의 끝에는 암릉의 끝판왕 Y계곡이 있다. 수직으로 내려갔다가 수직으로 치고 올라가는 이름만으로도 후달달한 도봉산 와이계곡……나는 이번에도 우회한다. 가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저 꼭대기에서 멘털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이 의문은 올라봐야 사라지겠지만, 아직은 용기가 없다. 그래도 괜찮다. 많이 아쉽지 않았다. ‘이거 해야 돼’라고 하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

표지판이라도 찍어보자. 작년겨울.


우회길 끝에서 숨을 돌린다. 커피 한잔 마시며 바람을 느낀다. 아. 정말 좋다. 정말 많이 좋다.

늦은 오후의 자운봉과 선인봉


신선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바람이 내 몸을 씻어준다. 아. 정말 좋다.


마당바위 쪽으로 내려온다. 해가 늦게 지니, 조급하지 않아 좋다. 아들이 장난을 치길래 “장난치지 마!”라고 했더니 지나가던 등산객이 “장난치게 두세요. 나중에 꼭 히말라야 가라!”한다. 후후.

마당바위에선 드문드문 각자가 늦은 오후의 도봉산을 즐기고 있다.


4월의 산은 참 경쾌하다.

나뭇가지처럼 생긴 작고 작은 곤충도 바쁘게 움직이고

나무들은 잎을 반짝이느라, 꽃을 피우느라

나 같은 뜨내기 등산객은 사족보행을 하면서도 이 모습에 취하느라


모두가 도봉산을 즐겁게 한다.

오늘 도봉산에 오르니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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