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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l 22. 2024

시간은 흐르는가?


  시간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철학자나 작가들도 많은 언급을 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의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시간은 두 번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라고 했고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변화가 생긴 이상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철학자 칸트도 “시간은 동시(同時)를 막기 위한 도구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모두 시간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지요.


  쉼보르스카는 시간과 끝은 두 번은 없다고 했지만, 시작 전에 다른 끝이 있고, 끝 이후에 다른 시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작에서 끝이 오고, 또다시 시작되기 때문에 시간은 흐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나 그 농도나 심리적 체감은 개인이나 상황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것이지요.


  물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물리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빅뱅 우주론이 등장하기 전에는 과학자들은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빅뱅 우주론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오늘날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시간의 흐름은 엔트로피의 증가, 즉 ‘무질서도’의 증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인간의 속도 내에서만 시간화된다’고 주장하면서, 시간은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찰나에 불과한 생을 사는 인간이 인식하는 시간의 부분이 우주의 질서에서 의미는 없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우주에서의 시간은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염홍철의 새마을 인문학> 161-163 참조)


  그러나 저처럼 지구라는 협소한 공간에 사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균일하고 공평하며 지나간 과거는 고정되어 있고 미래는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저 인간적인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특히 과학자들이 얘기하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항상 느끼고 있는 마음의 시간이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약속하면 약속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 시간은 너무 더디게 갑니다. 그런데 막상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은 총알처럼 빨리 지나가지요. 좋은 일을 기다릴 때는 시간은 느림보 걸음이고, 생길 일이 많을 때는 시간은 날개를 달았고 힘든 노동을 할 때에는 시간에 쇠뭉치가 달립니다. 마음의 시간으로 청년의 시간당 속도는 50킬로미터, 노인은 시간당 100킬로미터, 임종을 앞둔 환자의 하루는 일반인의 1분입니다.


  시간은 오직 신만이 조종하지만, 우리는 마음의 시간에 영향을 받고 삽니다. 다시 쉼보르스카의 시로 돌아가면 “… 시간이 닿는 저 너머까지 / 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건 찰나의 순간 / 지속되기를 모두가 그토록 염원했던 / 지상의 무수한 시간 중 하나”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순간‘들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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