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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홍철 Jul 23. 2024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녹스는 것 "



  우리나라의 노인(65세 이상) 인구는 19.2퍼센트로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20퍼센트가 넘으면)의 진입이 코앞에 왔습니다. 따라서 여기저기서 나이 든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제 경험에 의하면, 이분들을 대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한 부류는 늙어가면서 욕심이 더 많이 생기고 미움도 수그러들지 않으며 고집도 더욱 세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늙음으로써 보이지 않던 부분이 보이게 되고 이해와 배려가 많아지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자는 정서적으로 초조하고 불안해하며 소외된 심정을 느끼는 분들일 것입니다. 후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늙음이 축복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늙고 고독한 고집쟁이로 사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축복의 세월로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젊었을 때에 비해 상대적으로 목표를 향해 허겁지겁 달릴 필요도 없고, 놓치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버릴 것은 버리고 나눌 것은 나누면서 산다면 젊었을 때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고 가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법정 스님은 평소 “죽음은 삶 속에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녹스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법정 스님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알려진 이해인 수녀님은 죽음은 이쪽 강에서 저쪽 강으로 건너가는 것인데 저쪽 세상에는 어머니를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고 하였습니다. (<염홍철의 아침편지> 199-201 참조)


  성경에는 ‘죽음 뒤에 복이 더 있다’든지 죽음은 ‘수고를 그치고 쉰다’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티베트의 어느 고승은 탄생은 육체의 옷, 마음의 옷, 감정의 옷을 입는 과정이라면 죽음은 몸과 마음의 요소들을 전부 벗는 과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언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언제 죽었는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삶의 마지막 과정으로서의 죽음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서 살아있는 것, 그것이 바로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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