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파괴를 바라는가

헛소리 모으기 11. 은밀한 파괴 욕구

by 모두다

얼마 전 Youtube에서 신기한 동영상을 봤다.

어느 거대한 구조물(발전소 굴뚝이나 창고 같았다)을 배경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언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었다. 다들 구조물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 그 구조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들 있었다.

잠시 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그 구조물이 산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굉음과 먼지를 흩뿌리며 붕괴하는 구조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다들 환호를 지르며 기뻐하고 있었다. 발파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동영상이었다. 그렇게 커다란 구조물이 몇 번의 폭파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광경도 신기했고, 그 광경을 보며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도 신기했다. 새로 건설되거나 건축미가 돋보이는 건물도 아니고, 도심에 발길이 닿기 쉬운 곳에 위치한 건물도 아닌, 평범한 건물이 붕괴되는 것을 보기 위해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이 특히 그러했다.

하긴 발파 같은 건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구경거리를 보고자 모여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보며 환호를 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진귀한 구경을 해 감탄하는 정도의 반응이 아니었다. 무언가 그것에서부터 쾌감을 느끼는 듯한 반응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즐겁게 만들어주었을까? 무언가 파괴되는 광경이 사람들에겐 쾌감을 안겨준다는 것은 뭔가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다. 파괴나 붕괴 같은 명사는 뭔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 단어들은 사실 물리적 상태를 나타낼 뿐, 어떤 가치를 내포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반면 질서와 조화와 같은 단어는 긍정적으로 들린다. 누군가 ‘질서와 조화를 이루겠다.’고 하면 다들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파괴하고 붕괴시키겠다.’고 하면 다들 휘둥그레진 눈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에겐 파괴를 바라는 어느 본성과도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다.



chris-anderson-BefmnpXPZ80-unsplash.jpg Copyright 2018, Chris Anderson

내가 동영상에서 본 구조물을 분명 매우 거대한 물체였다. 그런 거대한 것을 무너뜨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다행히도 거대한 규모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직접 행해볼 수 있는 파괴적 행위는 존재한다. 도미노와 같은 놀잇거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도미노는 본래 숫자 눈이 새겨진 골패를 가지고 짝을 맞추는 일종의 게임이다. 게임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중국과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 도미노를 말하면 사람들은 십중팔구 골패를 줄 세워 늘여놓고 쓰러트리는 놀이를 떠올릴 것이다. 짝맞추기 게임의 이름이었던 도미노란 명칭은, 사각형의 조각을 쓰러트리는 놀이를 의미하는 데 더 많이 쓰일 만큼 의미가 변질되었다. 그만큼 도미노 조각으로 하는 본래의 게임보다, 조각 쓰러트리기 놀이를 즐기는 비중이 더 커진 셈이다.


도미노 놀이는 어찌 보면 참 희한한 놀이다. 우리가 접한 많은 놀이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어떤 도전에 성공함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류의 유희이다. 그러나 도미노는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띤다. 도미노는 최종적으론 조각들을 쓰러트리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놀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그 작은 조각들을 잘 세우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몇십 개의 도미노를 쓰러트리지 않고 세우는 것만 해도 꽤 쉽지 않다.

도미노 놀이는 그렇게 많은 조각을 성공적으로 세우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처음 시작이 되는 조각을 밀어 넘어트리는 것, 그리고 연쇄작용을 통해 마지막 조각이 넘어지는 것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도미노 놀이의 본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조각을 세우는데 들어간 시간과 노력에 비교하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르고 쉽게 행해진다.

몇 시간동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쌓은 도미노 조각들은, 몇 분 만에 한 번의 손짓만으로 쓰러지고 만다. 이렇게 과정과 결과를 비교해보면 도미노 놀이는 참으로 효율이 낮은 놀이라고 할 수도 있다.


4355354.png World Domino Collective 2023 Youtube 채널 캡쳐본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도미노 조각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엄청난 만족감을 얻는다. 기나긴 시간에 걸쳐 쌓은 수많은 도미노 조각들이 한 번의 막힘도 없이 모두 우수수 쓰러지면 환호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쓰러진 형형색색의 도미노 조각들을 통해 그림을 연출하는 등의 예술적 분야로 발전하기도 했다. 결국 도미노 놀이의 본질은 파괴하는 것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도미노 놀이의 재미가 이것에 국한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고, 타인과 협력하는 것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도미노는 정말 희한한 놀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쾌감을 느끼는 것 파괴 행위가 도미노 놀이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파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쾌감은 다른 분야의 유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인류는 오랜 기간동안 다양한 스포츠를 즐겨왔다. 개중엔 현대에 와서 발전된 것도 있지만, 아주 머나먼 과거부터 존재한 스포츠도 있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스포츠를 꼽으라면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들이 꼽힐 것이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 대표적인 것이 달리기와 싸움이다.


Panathenaic_Amphora_Sprinters.jpg 판아테나이아 암포라에 묘사된 달리기 선수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화(Lascaux Caves)에는 무려 기원전 15,000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다.¹ 이 그림에는 전력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서로 뒤엉켜 레슬링을 하는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딱히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움직임이다 보니 스포츠로도 가장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육상과 격투기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에서도 메인 종목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다.²

달리기가 스포츠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 수 있고, 그중에서 승자를 골라내기도 쉽고, 규칙이 복잡하다거나 경기장을 조성하기 어렵다는 등의 걸림돌도 없다. 어린 아이들끼리도 달리기 경주를 개최할 수 있을 만큼 육상 종목은 원초적이다.

하지만 격투기 종목이 스포츠로 발전한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다. 갖가지 부상부터 심하면 중상과 죽음까지도 각오해야만 나설 수 있는 것이 격투기란 종목이지 아닌가?

의학기술이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 제대로 된 방어구와 안전한 경기장도 없이 누구 한 명이 일어서지 못할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것은 여지 간한 동기가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참가했다가 불구라도 되면 당장 내일의 생존조차 보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당시 격투기 종목에서 이기는 것은 명예로운 일로 칭송받았다고 한다.³ 승자는 부와 명예를 얻고, 반대로 패배자는 자신의 명예를 실추하게 된다. 당연히 그런 명예는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과 시민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싸움에서 이긴 사람을 칭송한다는 것은 언뜻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이다.


joel-muniz-lUK16p_JtCM-unsplash.jpg Copyright 2017, Joel Muniz

하지만 이러한 기조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격투기 종목은 매우 다양하다. 각 격투기마다 리그도 존재하고 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당장 몇 주 앞으로 다가온 2024 파리 하계올림픽만 하더라도 권투, 레슬링, 유도, 태권도 총 4개의 격투기 종목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다.

프로 복서인 타이슨 퓨리(Tyson Fury, 1988~)는 작년 프란시스 은가누(Francis Ngannou, 1986~)와의 경기에서 5,000만 달러의 대진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⁴ 흥행 수익을 제외한 단순 대진료만으로 말이다.

일반인은 몇 년이 걸려도 손에 쥐어보기 힘든 막대한 금액이다. 그만큼 격투기 종목은 그 시장도 크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한 격투기 종목에서 챔피언이 된 사람에게 우리는 찬사를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하기까지도 한다. 하나의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올랐다는 것에 경외감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 작용하기라도 하는 걸까?


우리는 ‘폭력은 나쁜 것이다.’라는 명제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폭력은 용인돼선 안된다거나, 폭력은 정당화할 수 없다는 등, 폭력을 죄악시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그런 폭력을 겨루는 종목인 격투기는 정작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폭력은 나쁘다고 하면서, 폭력으로 다른 사람을 쓰러트리는 격투기는 좋아한다고? 그러고 세상에서 가장 폭력 행위를 잘하는 격투기 선수들에게 명예와 찬사를 보낸다고?

규칙과 스포츠의 틀에 절제되고 있으니 격투기의 폭력은 용인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격투기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KO 장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결국 격투기가 우리에게 선사해주는 쾌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자명하다.

진정으로 우리가 폭력을 싫어한다면 선수가 KO 되는 장면을 보며 거부감과 혐오감을 느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KO 장면에 흔히 “통쾌한”이라는 부사를 붙이곤 한다.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을 끔찍하다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째서일까? 우리는 폭력은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는 격투기 선수들을 우상으로 여기고 선망하기라고 하는 걸까? 보편적인 도덕관념과 현실과의 괴리는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폭력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이런 스포츠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폭력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비디오 게임이다.

당신이 열렬한 게이머라면 잠시 진정하시길. 비디오 게임이 폭력성을 키운다든가 하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니까.

오늘 날 비디오 게임은 하나의 산업을 이룰 만큼 막대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2023년 작년의 비디오 게임 산업의 규모는 1,84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⁵ 얼마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2024 e스포츠 월드컵은 종목 수만 해도 20개에다가 총 상금은 6,000만 달러에 달한다.⁶

게이머들은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게임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돈과 시간이 부족할 정도다. 심지어는 내가 게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게임 하는 것을 시청하는 스트리밍 산업도 각광받고 있을 정도로, 비디오 게임은 확고한 인기를 확보하고 있다.


그런 비디오 게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는 무엇일까? 꽤 어려운 질문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게임 플레이 인원에 따른 랭킹과, e스포츠 상금에 따른 랭킹을 살펴보기로 했다.

다음은 가장 대중적인 게임 유통 플랫폼인 Steam의 게임 주간 랭킹이다. 5위에 위치한 Steam Deck은 휴대용 게임기의 접속 프로그램이므로 이를 제외, 11위를 포함한 상위 10개의 게임을 살펴보자. 이 중 5개는 슈터 장르의 게임이다. 이 게임들은 모두 총기를 격발하여 적을 쓰러트리는 것을 주된 플레이 요소로 갖고 있다.

57575.png Steam 주간 판매 순위, 2024.07.09~2024.07.16

이 인기순위는 단순한 우연일까? 2023년 게임별 e스포츠 리그 상금 랭킹을 보도록 하자. 상위 10개 게임 중 6개의 게임이 슈팅 장르의 게임이다. 수많은 비디오 게임의 장르들 중에서도 특히나 슈터 장르의 인기가 엄청난 것 같다.

68876.png 2023년 e스포츠 상위 10개 종목(https://www.esportsearnings.com/history/2023/games)

슈터 장르의 비디오 게임은 과거부터 그 인기가 엄청났다. 특히 Wolfenstein 3D(1992), DOOM(1993), QUAKE(1996)등으로 시작된 FPS(First-Person Shooter) 게임의 인기는 3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오늘날 가장 인기 있는 FPS 시리즈 중 하나인 Call of Duty 프랜차이즈는 거의 매년 새로운 게임을 내놓고 있다. 그 시리즈의 정식 타이틀 작품만 하더라도 무려 24개나 된다. 라이벌 시리즈라고 불리는 BATTLEFIELD 시리즈는 17개의 작품을 출시했다. 웬만한 게이머도 이 모든 시리즈를 다 즐기기는 어려울 정도다.

내가 위에서 말한 FPS도 슈터 장르 중 하나의 하위분류에 불과하다. 2D, TPS, 루트 슈터, 밀리터리 장르까지 합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의 게임들이 있다. 그리고 이 수많은 게임들이 출시되고 지금까지도 서비스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슈터 장르를 즐기는 사람들의 수요가 존재하기 덕분이다. 게이머들이 무언가를 쏘고 파괴하는 것을 즐긴다는 사실은 자명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유저들이 슈터 장르 게임에서 얻는 주된 쾌감은 적을 쓰러트리는 데에 있다. 멀리 있는 적을 일격에 쏴죽이는 사격 솜씨, 폭파무기로 인해 흔들리는 화면과 함께 공중으로 치솟는 적의 시체, 급박한 상황에서도 매우 빠른 반응속도로 보여주는 멋진 플레이 등은 플레이어는 물론이거니와 그 플레이를 구경하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적을 쓰러트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게임의 궁극적인 재미 역시 이것에 있다. 이는 비단 슈터 장르 게임만의 특성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League of Legends(2009), DOTA2(2013) 등으로 대표되는 MOBA 장르, World of Warcraft(2004), Elden ring(2022), Final Fantasy 시리즈, Grand Theft Auto 시리즈와 같은 RPG 장르, 한국에서도 인기 있었던 Starcraft(1998)가 속한 RTS 장르, Tekken과 Street Fighter 시리즈의 격투 게임 장르 등의 여타 장르의 게임들에서도 적과의 교전이 주된 게임의 콘텐츠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게임들도 있지만, 적을 쓰러트리는 류의 게임이 더 많은 인기와 타이틀 수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게이머들이 이것에서 재미를 느낀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glenn-carstens-peters-0woyPEJQ7jc-unsplash.jpg Copyright 2017, Glenn Carstens-Peters

게임 내의 폭력과 파괴는 참으로 오묘하다. 그것을 즐기는 플레이어는 분명히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단순한 컴퓨터 그래픽이며 개발자가 만들어둔 일종의 연출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그 연출이 사실적일 것을 요구한다.

게임 내 파괴의 연출이 사실적이고 정교하며 디테일하면, 플레이어는 그것에 감탄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현실과 비슷할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 개발사들은 이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온갖 최신 기술과 고급 인력을 투자한다. 그리고 이 기술력을 100%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게임 기업과 소비자는 몇백만 원에 달하는 고급 그래픽 카드를 구비해둔다.

이러한 게임 산업의 추세를 보면 나는 게이머들이 게임과 현실의 장벽이 무너지기를 바라기라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부터 VR 기술이 주목받는 것도, 기존의 게임에서 선사해줄 수 없었던 ‘실감’이란 요소를 VR 기술은 구현해 낼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게이머들은 현실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게임에서 구현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많은 게임에서 나타나는 파괴라는 요소 역시, 현실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대리만족을 선사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라면 우리가 이 정제된 폭력과 파괴라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게임의 폭력성이 현실로까지 확장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게임은 현실과 유사해야 하는 동시에 현실과는 괴리가 있어야 한다는 이상한 모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대로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현실성을 찾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임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면 도리어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즐기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정제된 폭력이다. 즉 플레이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준으로만 만들어야지, 정제되지 않은 현실의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버려서는 안 된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Manhunt(2003)라는 게임이다.

이 게임은 범죄자인 주인공을 조종해 각종 살인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주된 콘텐츠이다. 게임의 주제 자체부터가 꽤나 폭력적이다. 때문에 이 게임은 출시하기 전부터 많은 언론과 기관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맞고, 몇몇 국가에선 판매금지 처분마저 당하게 된다.

물론 게이머에겐 이러한 비판이 너무 과하고 괜한 걱정에 불과한 것이었고, 도리어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효과를 낳을 뿐이었다. 하지만 게임이 출시된 후론 게이머들 역시 이 게임에서 등을 돌리게 된다. 게이머들이 게임속에서 마주하게 된 것은 그들이 바라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이머들 역시 이 게임이 잔인할 것이란 건 충분히 인지하고 플레이했으나, 게임 속의 폭력은 너무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다. 클로즈업되는 살해 장면,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공포에 떠는 등 실제로 범죄를 당하는 것 같은 캐릭터들의 반응, 온갖 흉기와 장치를 통해 제공되는 다양한 살해 방법 등이 게임 내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러한 요소를 접한 플레이어들은 쾌감 대신 불쾌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자신이 플레이하는 것은 게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한 게임의 폭력이 게임 밖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과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임 속에선 자신의 플레이가 이 모든 폭력을 유발된다는 것이 불쾌감을 일으키는 요소가 되었다. 덕분에 Manhunt는 소수의 매니아들의 수요만 충족하게 되었다.


maxim-hopman-PEJHULxUHZs-unsplash.jpg Copyrght 2020, Maxim Hopman

Manhunt 시리즈의 개발사가 만든 Grand Theft Auto 시리즈(이하 GTA)도 그 폭력성으로 악명이 높다. 하지만 GTA 시리즈의 폭력은 Manhunt만큼 자세하고 사실적이지 않다. 그리고 그 폭력이 많은 게임 플레이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게임 캐릭터가 길거리에서 총기를 난사하면 시민들이 도망치지만, 그 피해는 금방 복구되고 게임 플레이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신작인 GTA5(2013)에선 직접 캐릭터를 고문하는 미션이 등장하는데, 플레이어 중엔 이에 불쾌감을 느끼고 해당 미션을 플레이하고 싶어하지 않는 게이머들도 있었다. 총을 쏘고 폭발을 일으키는 것엔 아무렇지 않아 하던 이들이, 고문에는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언뜻보면 이상하기도 하다. 그만큼 게이머들은 지나치게 사실적인 폭력엔 도리어 불쾌감을 느낀다.


‘폭력성’이라는 요소만 두고 보았을 땐 Manhunt보다 더 폭력적인 게임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들의 폭력은 상대적으로 비사실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Mortal Combat 시리즈이다. Mortal Combat 역시 그 폭력성 때문에 논란의 중심이 된 게임이다. 하지만 Manhunt와 다른 점이 있다면 폭력의 묘사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격투 게임인 Mortal Combat 시리즈는 ‘처형’(Fatality)이라는 고유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화려한 특수 모션과 함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잔인한 연출이 나오며 적 캐릭터를 쓰러트리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의 연출은 슬로모션까지 활용하며 신체 장기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줄 정도로 잔인하다.

하지만 그 묘사가 묘하게도 비사실적이다. 예를 들면 사이보그가 열광선을 난사하며 적을 쓰러트리는 등의 연출이 나온다. 물론 그 묘사는 충분히 잔인하지만, 그것을 보고 현실에서의 범죄를 떠올리기란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이 게임의 팬들은 이 연출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지, 불쾌해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덕분인지 이 시리즈는 총 12편이나 출시되었으며, 매 시리즈마다 어떤 처형 시스템 연출이 등장할지에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결국 소비자들이 원하는 폭력과 파괴는 사실적이나 지나치게 사실적이지는 않은, 그 명확하지 않은 영역에 한정된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결국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있을 수 없지만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그것을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현실과 망상의 간극에 위치하여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으로 말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교훈과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인간은 다양한 예술을 향유해왔다. 그리고 파괴에 대한 욕구 역시 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게임에 한정되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2부에서 계속)




각주

¹. https://archeologie.culture.gouv.fr/lascaux

². Miller, Stephen G, Ancient Greek Athletics, Yale University Press, 2004

³. https://olympics.com/ioc/ancient-olympic-games/wrestling

⁴. https://www.thesun.co.uk/sport/23445264/tyson-fury-francis-ngannou-purses/

⁵. 한국콘텐츠진흥원, 2023 글로벌 게임산업 분석과 2024년 주요 이슈 전망, 2003

⁶. https://esportsworldc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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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2018, Markus Spis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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