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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영 earyoung Jan 11. 2024

새해 목표가 물구나무서기라고?

자기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30대 직장인에게

2023년 몸과 관련해서 세웠던 목표가 있다. 바로 ‘살람바 시르사아사나’ 성공하기. 머리서기라고도 불리는 이 자세는 어깨와 등, 그리고 코어 힘이 필요한 자세로 요가 ‘뉴비’들의 도전 1순위 자세이기도 하다. 처음 요가원에 간 날, 낯선 산스크리트어 구령을 들으며 옆사람들을 곁눈질하고 있는데 ‘시르사아사나’라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다같이 물구나무를 서는 걸 봤을 때의 충격이란.


당시 나는 8년차 직장인으로, 소위 말하는 청년기, 성년기 과업을 완수한 후 지독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참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대학생 때는 취업을 하기 위해서, 취업한 후에는 업무에 능숙해지고 고과를 잘 받아 승진을 하기 위해서 바빴는데 이제 더 이상 해낼 과업이 없다는 느낌에 방황하고 있었다. 얄팍하고 진부하지만 MBTI를 빌어 스스로를 소개하자면 ENTJ '그 잡채'라고 생각했는데, 도전해야 할 목표를 잃은 나는 카우치 포테이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가원에 등록한 후로 나의 목표는 머리서기 성공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비슷한 자세도 하지 못했다. 한 발을 매트에서 떼는 것도 힘들었다. 발을 떼려고 하면 매트에 거꾸로 대고 있는 얼굴에 피가 잔뜩 쏠리고 목이 당장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아파왔다. 몇 달 간의 카우치 포테이토 생활로 인해 평소보다 살이 많이 쪘고, 운동을 하지 않아 근육은 0g에 수렴했기 때문이었다.


헬스장에 다니며 근력운동을 하는 게 가장 맞는 처방이었겠지만, 몇 년 전 PT를 받으며 (나름) 극한의 다이어트를 한 후 헬스장은 내게 지옥 같은 공간이 된 지 오래. 시간이 흘러 그 때의 운동강박, 식단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건강한 정신을 되찾은 데다가 이제야 내게 꼭 맞는 운동-요가!-을 찾았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그래서 웨이트나 필라테스 같은 보조운동 없이 그냥 매일 연습하기로 했다. 요가원에서 하는 수련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자기 전에 10분 아니면 5분이라도 꼭 머리서기를 연습했다. 매트가 없으면 없는 대로 이불 위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기 귀찮은 날에는 잠옷 차림으로 꼭 머리서기를 하고 잤다. 처음에는 비포&애프터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매일 사진과 영상을 찍었었는데 점점 귀찮아져서 달력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런데 이게 뭐라고 점점 중요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술을 먹고 와서도 도장을 채우기 위해 머리서기를 연습하고 잤다. (모가지가 부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한 발씩 매트에서 뗄 수 있게 된 후에는 벽이나 냉장고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차올리는 연습을 했다. 간신히 차올린 다리를 벽에 대고 있다가 한 발씩 허공으로 떼는 연습을 했다. 너무 불안하면 동거인에게 다리를 잡아달라고 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목이 부러질 듯 아파오면 연습을 중단했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후, 살람바 시르사아사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내게로 왔다. 어느 날 벽에 기댔던 다리가 가볍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떼어보니 허공에 잠깐 머물러 있었다. 반신반의하며 다시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벽에 기대지 않고도 허공에 다리를 띄울 수 있었다. 살짝의 반동을 이용하긴 했지만, 뭐. 그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이탈리아 피에몬테 여행 가서도 머리서기를...


그때부터는 1분, 2분 동안 자세를 유지하는 연습을 했다. 같은 요가원에 다니는 분들은 10분 부동도 끄떡없이 해내곤 했다. 그리고 머리서기를 한 채로 가부좌를 짜거나 다리를 뒤로 내려 우르두바다누라사나로 변형하는 드롭백까지 해내는 도반님들도 있었다. 나는 아직 2분 부동도 힘들고, 완전히 안정적인 자세를 찾지는 못해서 변형 자세까지는 연습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2023년 2월 처음 요가원에 가서 눈이 휘둥그레졌던 내가, 이제 다리를 번쩍번쩍 들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


싱가포르 여행 가서도 머리서기를.. (요가클래스를 들었다)


Practice makes perfect. 진부하지만 진실이고 진리이다. 연습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그리고 머리서기에 성공한 나는 조금 달라졌다. 작은 목표를 많이 세우는, 머리서기에 성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대학교 입학, 대기업 취업 등 '있어 보이는' 목표만이 진짜 목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80년 어쩌면 100년을 살아야 하는 인생 여정에서, 작은 목표들을 여럿 세우고 성취하는 경험이야말로 살아갈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2024년에는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일명 활 자세 성공을 목표로 매일 연습할 것이다. 그리고 2025년에 또 잔뜩 신나고 고양된 채로 이런 글을 한 편 더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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