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까지 어른 호소인일 줄은 몰랐는데
서른넷이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모공이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냈고 깊어진 팔자주름 옆에 툭 튀어나온 심부볼이 마치 심술보처럼 보였다. 의학의 도움이라도 받아볼까 마음먹고 피부과를 예약했는데 결국 취소했다.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뭐 그런 이유는 아니고. 그냥 가까운 병원에 다녔는데 이번에는 좀더 알아보고 가려고 한다. 와중에 홈케어 기기를 주문하고 요즘 핫하다는 화장품을 어렵게 구하는 등 일련의 소동을 벌이고 난 뒤에, 문득 허무한 마음이 들어서 옛 사진을 꺼내봤다. 보기 싫은 여드름을 가리려고 두껍게 파운데이션을 칠하고 진한 눈화장을 한 나. (지금은 화장을 거의 하지 않지만 그때는 스모키 메이크업이 유행이었다.) 사진은 언제나 그때 그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20대 초반, 나는 아무한테나 애정을 갈구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며 감정기복이 심한, 한마디로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때 만나던 친구들은 나에게 조울증이 있는 것 같으니 정신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때 내 병명은 조울증이 아니라 ‘어른 되기 싫어’증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어른이 된다’는 개념이 좀 생소하다. 19살 12월 31일까지는 어른이 아니다가 1월 1일이 되면 갑자기 어른이 된다는 게. 어른이 곧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스무 살에게 어른 딱지를 붙이는 건 너무 가혹한 게 아닌지. 사실 나는 지금도 “집에 어른 계세요?” 하면 “아니오.(건장)” 할 것만 같은 ‘마음만은 스무 살’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어른’이라는 단어에 바라는 게 많다. 주변에 나이 든 사람들 중 어른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은 손에 꼽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 밥벌이를 한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유아기를 거쳐 누구나 사회에 발을 들인다. 집이든, 학교든, 회사든 다른 사람과 부딪혀야 하는 곳은 모두 사회다. 사회생활을 통해 좋든 싫든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인식하게 된다. 이 데이터가 쌓이기 전에는 사회생활이 마음같지 않다. 하지만 일단 경험이 쌓이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자신에게 달렸다. 세상이 본인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전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 어른은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비록 혼자 있을 때는 ‘집에 어른 안 계시는데요’하는 어린이 호소인들일지라도.
어른이 되려고 무진 노력을 하는 나조차도 몹시 자기중심적으로 굴고 나서 후회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어른은 계속 노력해서 유지해야 하는 상태 같은 것이다. 다행히도 피부과에 다니는 노력 정도로 어른이기를 유지할 수 있다.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감정과 마음부터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정말 쉬운 방법이 있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기를 쓰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내 마음을 알 수 있다. 정말 화가 났던 일도 하루가 지나고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보면, 결국 다른 이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방어기제 때문에 그토록 화가 났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만약 아무리 일기를 써도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남의 탓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각자의 기분 좋아지는 레시피를 꺼낼 때다. 내 경우에는 심박을 160 이상으로 올릴 수 있는 운동(보통은 러닝이나 아쉬탕가 요가)을 하고, 그동안 건강을 생각해 참았던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목욕탕에 가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피부과에 전재산을 주어도 이미 커져버린 모공을 줄일 수는 없다. 술 취해 화장한 채로 잠들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사우나에서 죽쳤던 결과인 것이다. 결국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살아온 날들의 총합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언제나 내가 틀리고 저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땐 스스로를 괜찮은 상태로 되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삶의 방향을 잡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피부과 예약은 영영 취소해야겠다. 피부 좋은 할머니보다는 어른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스무 살 때, 마음 속 정원에 씨앗을 뿌렸다. 앞으로도 매일 물을 주다 보면 언젠가 커다란 나무를 마음에 품은 멋진 할머니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