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갈팡질팡 자연임신을 곁들인
난임병원에 다녀왔다. 사실 두번째였다. 첫번째는 작년 초였다. 재미삼아 산전검사를 하러 갔는데 그닥 재미있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 남편의 정자 중 정상정자가 1%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질 거면 당장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라고 의사는 말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재미삼아 한 검사였기에, 우리는 시험관 시술은커녕 이제까지처럼 열심히 피임을 했다. 달라진 건 가끔 남편을 고자라고 놀리면 남편이 꺄르르 웃다가도 문득 속상한 표정을 지어서 더 웃겼다는 것 정도…?
그리고 어제, 두번째로 난임병원에 간 것이다. 이유는? 임신이 정말로 되지 않아서. 7월부터 피임을 하지 않았다. 9월부터는 배란테스트 후 배란일에 맞춰 ’숙제‘를 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니지만‘ 막상 임신이 되지 않자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배란테스트를 해야 하는 것, 생리전증후군의 많은 증상이 임신 초기 증상과 겹치는 것, 스테로이드 주사 한 방이면 씻은 듯 나을 염증인데 ‘혹시 몰라서’ 자연 치유될 때까지 몇 주 동안 미련하게 아팠던 것 등등.
작년에 보고 거의 2년만에 만난 의사는 흰머리가 늘었고 말수는 줄어든 모습이었다. 병원에 간 이유는 충분한 상담을 통해 적절한 도움을 받기 위함이었는데, 서릿발처럼 차가운 모습에 말도 제대로 못 붙여보고 뒷걸음질쳐 나왔다. 나팔관 조영술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내 말을 의사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일축했다. 자연임신을 몇 달 더 시도해보고 인공수정을 할지 말지 결정하고 싶었는데 시험관 시술이 아니면 안 된다며 오늘 당장(!) 시술을 받고 가라고 했다. 인공수정도 안 된다며. 그러면서 18만원짜리 피검사를 처방하길래 그냥 안한다고 했다.
사실 나는 시험관 시술에 거부감이 있다. 첫째, 그 정도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제 힘으로 수정도 할 수 없는 기형 정자를 갖다가 꼬리 자르고 약 치고 핀셋으로 억지로 난자 안에 집어넣어서 만든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초의 시험관 시술은 1978년 미국에서 실시되었다는데, 78년생이면 아직 노년도 채 되지 못했다.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확실치 않다는 뜻이다. 두 번째로 우리 난임은 내 문제가 아니라 남편 문제인데 왜 내 몸에 호르몬 주사를 놓아가며 고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공평하지 않고 억울하다. (개인적인 의견이니 시험관 시술에 긍정적인 분들은 그냥 지나가시면 된다.)
병원을 나와 한동안 멍했다. 사실은 임출육을 원한 적 없었다.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배로 낳지 않는다면 육아는 한번 해볼만도 하다고 생각했지만 임신과 출산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아이를 원하는 남편을 설득하다 안 되면 남편 몰래 피임약을 먹어야 하나,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데 왜? 왜 난임병원에 제 발로 두 번이나 찾아가서 실험쥐 취급을 자처하고 있는 걸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람 버글버글한 주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요즘 육아, 라는 얇은 신간을 선 자리에서 다 읽었다. 책에는 항상 답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리 책을 읽어도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솔직하게 말하는 글도 별로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임출육의 장점은 뾰족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그냥, ’그 충만한 행복‘에 대해서 뜬구름만 잡는데 이건 뭐 ’너도 당해봐라‘하는 공갈이 아닌지 의심만 커질 뿐이다.
그러니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그 영역을 안 되는 걸 되게 하면서까지 뛰어들어봐야 하는지. 똥을 찍어 먹어봐야 똥인 줄 아는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그 책의 한 문장이 자꾸 생각난다. 경제적 부담만 없으면, 그러니까 사회적 공동 육아가 가능한 국가들-주로 북유럽-에서는 아이를 낳은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그것보다 높았고, 개인이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모두 가지는 국가들에서는 반대라는 것이다. 말인즉슨, 돈과 양육만 해결되면 아이가 있는 편이 무조건 행복하다는 거 아닌가? 그걸 누가 모르나?
문제는 내가 노르웨이나 핀란드 같은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미혼이나 딩크가 유니콘보다 귀하다. 둘째 심지어 셋째를 낳는 경우가 그보다 훨씬 흔하다. 육아 관련 복리후생이 무지하게 좋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해도 월급을 그대로 받을 수 있고, 난임휴직도 눈치보지 않고 쓸 수 있으며, 생후 13개월부터는 사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데 이 어린이집은 추첨제도 아니고 무조건, 100% 들어갈 수 있다. 게다가 돈을 단 한 푼도 낼 필요가 없다고 한다.(소풍 갈 때 도시락도 어린이집에서 싸준다.) 팀원 10명 중에 4명이 육아휴직을 들어갔던 지난 2년 동안 허리가 휘도록 땜빵했던 걸 생각하면…이 회사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결정은 극도로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자, 돈과 양육이 해결됐다. 그래서 아이를 갖고 싶었나 보다. 게다가 작년 12월 친한 친구를 시작으로 주변에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임신과 출산을 했다. 친구들이 임신하거나 출산을 하고 나니 이제 같이 놀 사람이 정말 남편밖에 남지 않았다. 출생률이 그렇게 낮다는데 내 주변은 왜 이런지. 아이를 낳지 않으니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는다. 회사에서는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 복리후생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돈과 양육이 다시 문제가 된다. 또, 친구들의 임출육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었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된다. 원래 인연은 오고 가는 것. 한때 가까웠다고 해서 영원히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 경제적으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가 더 문제가 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하교 후 사교육을 시킬 수밖에 없다. 이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비용을 그대로 저축하거나 투자하면 은퇴 즈음에는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아이를 갖는 데 실패하거나 포기했다고 치자. 아이를 갖기에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되었을 때, 그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계속된다. 애초에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어리석었던 것 같다. 차라리 에라 모르겠다, 주사위를 던진 다른 사람들이 멋져 보일 지경이다. 나는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4년 내내 고민을 하고서도 말이다. 일단은 동네에 괜찮은 산부인과를 찾았다. 거기서 매달 배란초음파를 보고 자연임신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시험관 시술 없는 난임일기라니 팥 없는 붕어빵 같지만…요즘은 슈크림 붕어빵도 인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