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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Sep 20. 2024

소주와 아메리카노의 조화에 대하여 (하)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와 사적일 수도 있는 주량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해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않자 오 씨가 뚜껑을 깐 소주 한 병을 내밀며 마시라고 했다.


“이 일이 맨 정신으로는 못하는 일이여.“


시체 보관실은 사무실 안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책상 2개가 단촐하게 놓여있는 사무실 반대편의 두텁고 견고한 문을 열자 냉기가 도는 시체 보관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색의 서랍들이 가득했다.


“저 안에 네가 닦아드려야 할 분이 있어. 일단 묵념부터 해.”


망자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 한다며 엄숙하게 진행된 절차 이후 오 씨는 킬킬 웃으며 서랍 하나를 끄집어냈다. 기괴하고 신경을 긁는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잠든 창백한 시신 한 구가 나타났다. 아버지가 눈을 뒤집고 넥타이를 맨 채 쓰러져있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아아, 아버지.


 “요새는 시대가 시대인만큼 이런 일을 직접 하는 병원도 거의 없고 이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아. 용케 붙었는데 벌써 포기여?”


오 씨는 질끈 눈을 감았다 뜨는 내게 한소릴 하더니 한 병 더 마시던가,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화난 것 같이 무뚝뚝한 얼굴로 시체를 꼼꼼히 닦았다.


창백하고 핏기도 없는 이제는 사람이 아닌 것. 그걸 아는데도 내가 손을 대면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눈을 뜨곤 허리를 일으켜서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 것만 같았다.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 심장박동이 귓가에서 요동쳤다.


“그러고 서 있기만 할거면 기절이나 하지 말고. 여기서 기절하면 머리통 깨지니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곤 또다시 오 씨는 말없이 시체를 닦았다. 소주를 몇 병이나 마셨더라. 그래도 3병은 깐 것 같은데 빌어먹을 정신이 왜 이렇게 또렷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아들들이 준 넥타이니 좋은 날 메야겠네. 아이고 내 새끼들.”


어디선가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의 승진 소식을 듣고 동생 윤수와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아서 고급스러운 진보라빛 넥타이를 아버지께 선물해 드렸던 그 날. 목에 넥타이를 건 아버지는 거울을 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나와 윤수를 숨 막힐 정도로 껴안아주셨었다. 그리고는 셔츠 깃 아래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바싹 넥타이를 조여 매곤 허허 웃으셨다.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아버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도대체 당신은 뭐가 그리 힘드셨나요. 가족과 세상을 등질만큼.


아버지도 가족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전 누군가가 이렇게 닦아주셨겠지. 눈앞의 시체가 아버지라고 생각하자 저절로 손이 갔다. 또 울고 있었던 건지 오 씨는 내 행동이 의외라는 듯 무서워 하는 표정도 아니고 슬픈 표정으로 닦는 놈은 또 처음일세,라고 말했다.


며칠 뒤 영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는 또다시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여전히 커피의 씁쓸함과 신맛에 적응이되지 않아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고, 덕분에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아버지랑 단 둘이 살고 있다고 영은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반장이라서 씩씩하고 활기차게 반을 이끌기에 잘 사는 집 아이인 줄 알았었다. 아버지가 몇 년째 투병생활 중이라 학생 때는 기초수급자 비용을 받으며 지내왔다고 말했다. 자선단체의 도움과 함께.


나는 뭐가 꼬여서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오만한 판단이었음을 깨닫자 부끄러워졌다. 그런 상황임에도 맑고 밝은 아이였으며 내색하지 않고 있었기에 미처 알지 못했다.


영은 졸업 후 연락이 끊긴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원금을 통해 아버지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고 급하게 정리하고 떠나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성인이 된 후 돈을 벌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지내는 동안 틈틈이 동화를 썼는데 반응이 좋았고 투고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동화작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삶에 여유가 생기니까 네가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동창들을 다 찾아서 연락했다가 윤혁이 통해서 소식 들었어.”


이윤혁. 장지날까지 따라와 준 고마운 친구였다. 철이 들며 만화가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 유일하게 응원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는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일단 닥치는 대로 일해야지,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고는 누구랑 똑같은 소리 한다던 녀석이 떠올랐다.


“윤혁이랑은 연락하고 지냈어?”

“아, 서울에서 우연히 지나가다가 만났어.”

"그 녀석, 좋은 녀석이지.”


얼마 남지 않은 아메리카노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제법 입 안에 감기는 씁쓸함이 익숙해져 가는 것도 같았다.


오로지 돈을 버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낮에는 만화를 그려 공모전에 도전하고, 저녁시간이 되면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 후 새벽이 되면 대학병원으로 향해 오 씨 아저씨와 함께 영안실의 시체를 닦고 다시 해가 뜰 무렵 집으로 돌아와 두세 시간 자고 일어나 만화를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듯 살았지만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의 감정과 삶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와 윤수를 위해 살아가는 게 당연했으니까. 술도, 친구도, 여가생활도 다 포기한 채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동안 계절은 바뀌었다.


.


어김없이 목례를 하고 말없이 시체를 닦는데 어디선가 아버지가 말하는 것 같았다.


“경수 네가 고생이구나”


그날 따라 오 씨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더니  네 이야기 좀 해봐라, 라며 화두를 던졌다. 생각해 보니 그와 일하는 동안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오 씨 아저씨가 뭘 하던 사람인지, 이 사람은 어쩌다가 시체 닦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가족은 있는지 아는 게 없었다.


명색이 동료라고 하면서 당장 내일부터 그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을 테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오 씨는 다시 소주병을 나발로 들이켰다.


 “젊은 나이에 짐이 많구나. “


빈 병을 궤짝에 넣어놓고 오 씨는 말을 이어갔다.


“사는 게 뭣 같다고. 먹고살기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야. 정상에서 단꿈 꾸는 것도 잠깐이지. 평생을 발 구르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거라고 그게. 나태해지는 순간 추락하는 거야. 건실하게 지금처럼만 하면 좋은 날 올 거다. 사업한다고 여기저기 손 벌여서 내 돈이 아닌 걸로 큰 일 하려고 하지 말고…. 내 말은 돈을 좇아서 살진 말라고.”


말을 마친 오 씨는 내 어깰 가볍게 툭툭 치더니 잠깐 쉬고 오겠다며 영안실과 이어진 작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가 윤수와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말. 돈을 좇으며 살진 말라는 그의 위로에  암담했던 처지가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는 내게 술을 권하지 않았다. 소주 몇 병을 비워도 적응이 어렵던 오래전과 달리 이제는 딱히술을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일하기 시작했다.


여러 시체를 닦을 때마다 매번 아버지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무마시키고 싶었던 걸 지도 몰랐다. 여전히 아버지의 마지막 잔상은 내 머릿속을 부유하곤 했다. 119를 부른 이후에도 아버지에게 다가가 목에 걸린 넥타이를 끌어낼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뒤집어진 눈동자는 탁했고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았으니까.


“넌 하여튼 이상한 놈이야.”


오 씨는 이 일을 하면서 술 대신 여유롭게 커피 마시는 것도 이상하고 시체 상반신을 집중해서 닦는 것도 이상하고 그냥 청춘을 다 포기한 채 기계처럼 일만 하는 나란 녀석이 이상한 놈이라고 했다. 이런 놈은 처음 봤다면서. 이제는 그 말에 그냥 하하 웃을 줄 아는 여유도 제법 생겼다.


어느덧 까마득히 먼 일로 느껴지는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


오랜만에 만난 영은 윤혁이와 사귀고 있다는 이야길 들려주었다.


“잘 됐네! 축하해.”


영이에게 호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게는 일 외에 다른데 신경을 쓸 여유도, 환경도 없었으니까.

두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더 이상 아메리카노는 씁쓸하지 않았다. 이제는 아메리카노쯤은 소주 한궤짝처럼 익숙하게 마실 줄 아는 어른이 된 걸지도.


아르바이트는 전부 그만두었다. 대학병원의 경비직 합격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계약직보단 정규직으로 일해야한다며 여러차례 면접을 권해준 오씨 아저씨 덕분이었다.


동생은 이번 시험에 떨어졌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노량진으로 들어가서 일 년만 더 기회를 달라는 동생에게 아무 말 없이 고갤 끄덕여주었다. 이제는 버틸 수 있다.


첫 출근날.


거울에 서서 근무복을 갖춰 입고 넥타이를 조여 맸다. 넥타이를 조여 맨 순간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적당히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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